오연희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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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엄마를 부탁해

2010.10.14 11:10

오연희 조회 수:9222



신경숙[-g-alstjstkfkd-j-]엄마 잃어버린 이야기다. 아니다 엄마의 삶 속에 녹아있는 모든 엄마의 일생이다. 아니다 진정 귀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아가는 세상모든 자식들의 가슴을 갈퀴로 훑어 낸 모진 이야기다. 과거를 살려내는 기억력과 사건마다의 섬세한 심리 묘사, 탁월하다.
신경숙의 이름에 걸맞는 책이라고 하기에는 미진한 느낌이다.



남기고 싶은 구절들 모음



한여름 오후에 전해진 다급한 동생의 목소리는 안쪽이 얼지 않은 얼음판을 디뎠을 때처럼 쩡 소리를 내며 그의 일상에 균열을 일으켰다.

아내의 손은 무엇이든 다 살려내는 기술을 가졌다.

개는 쥐약을 먹고 똥통에 빠져죽기도 하고 무슨 까닭인지 구들 안쪽으로 기어들어간 것을 모르고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가 누린내에 구들을 들어내고 죽은 개를 끌어낸 적도 있었다.


텃밭에 씨를 뿌리면 다 솎아 먹기도 벅차게 푸른 새싹들이 아우성을 치며 올라오고

가지를 모종하면 여름이 지나 가을까지도 보라색 가지가 지천이었다.

우리는 인자 자식들한테 아무 쓸모 없는 짐덩이요이, 늙은이가 있는 집은 현관문 바깥서부터 알아본답디다. 냄새가 난다 안혀요. 그리두 여자는 어찌어찌 지 몸 챙기며 살더마는 남자는 혼자 남으면 영 추레해져서는 안되겠습디다.

지하철이 남영역에 멈췄다가 다시 출발하는 순간 어떤 충격이 당신의 머리를 강타했다. 그 충격을 확인해보기도 전에 돌이킬 숭 벗는 지독한 잘못을 저질렀다는 절망이 당신의 뇌를 후려치고 지나갔다. 당신의 심장박동 소리가 그 순간 당신 귀에 들릴 만큼 커졌다.

열 일곱의 아내와 결혼한 이후로 오십년 동안 젊어서는 젊은 아내보다 늙어서는 늙은 아내보다 앞서 걸었던 당신이 그 빠른 걸음 때문에 일생이 어딘가로 굴러가 처박혀버렸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일분도 걸리지 않았다.

당인이 죽은 뒤에 아내의 손이 마지막으로 당신의 눈을 쓸어주고, 자식들 앞에서 당신의 식어가는 몸을 닦아주고 그 손으로 수의를 입혀주기를.

아들 앞에서 딸 앞에서 며느리 앞에서 소리를 지를 수도 울 수도 없던 분노인지 뭔지 모를 치받침으로 인해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쏟아졌다.

애덜 고모가 그 쌩한 얼굴로 부신 약을 더 먹는다냐!

논에 덕석을 깔고 홀태질로 나락을 훑던 때였다.
덕석: 추울 때에 소의 등을 덮는 멍석
홀태질: 곡식을 훑어 떠는 일 을 의미하는 전라도 사투리

집이란 참 이상하지. 모든 것은 사람 손을 타면 닳게 되어 있는데 때로 사람 곁에 너무 가까이 가면 사람 독이 전달되어오는 것 같기조차 한데 집은 그러지 않어. 좋은 집도 인기척이 끊기면 빠른 속도로 허물어져 내려. 사람이 비비로 눙치고 뭉개야 집은 살아 있는 것 같어.

어머니는 마치 노래를 부르듯 내가 이 세상에 오기 전부터 존재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끝도 없이 들려주셨다. 나는 가만히 어머니의 말을 받아 적을 때도 있었다. 잘못도 없이 인생이 곤두박질치는데도 삶을 내려놓지 않고 꿈을 기르고 사랑을 번식시키는 것으로 매번 한 발짝씩 앞으로 나아갔던 사람들이 지닌 비밀들은 곧 나의 소설이 되기도 했다.

어머니는 당신이 해준 이야기들이 나를 통해 세상의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지기를 바란다는 것을.

신경숙 소설이 늘 그 전체에서 뿜어내는 친밀성의 자장에 감싸여 본 독자라면 깊이 고개가 끄떡여지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엄마의 음성이 그 문책의 시선으로 소설의 표명에 노출되지 않은 것은 단지 형식적인 소설적 장치의 문제일 수 없다. 그 호명과 문책의 시선은 엄마의 몫이되, 엄마가 그 몫을 거절함으로써 텅 비어버린 자리였던 것이다.

수화기 줄을 타고 흐르는 눈물은 그리고 우리에게도 온다.
그 눈물은 인간이라는 생명의 골짜기를 하염없이 적셔온 누대의 그것 일 터이다.

엄마의 실종을 계기로 ‘잃다’와 ‘잊다’ 가 같은 말이었음을 뼈아프게 깨닫는다.

너는 그는 당신은 엄마를 한번도 그이가 지닌 인간의 존엄 위에서 대하고 생각한 적이 없다’ 는 지경까지 몰고 간다.

어느 곳이나 지난 세월의 흔적이 유장하게 펼쳐지는데도 너는 아무것도 마음에 담지 않았다. 지금도 너는 무언가에 푹 싸여 있는 듯한 원형 광장에 늘어선 성상들에 눈길을 주지만 너의 눈은 어디에도 머물지 않는다.

감사함을 아는 분의 일생이 불행하기만 했을 리 없다고

엄마가 곁에 있었을 땐 깊이 생각하지 않은 엄마의 사소하고 어느 땐 보잘것없는 것같이 餘技기도 한 엄마의 말들이 너의 마음속으로 해일을 일으키며 되살아 났다.

엄마를 아는 사람들에 대한 항의와 엄마를 잃어버린 너 자신에 대한 혐오가 밴 외침이었다.

엄마를 이해하며 엄마의 얘기를 들으며 세월의 갈피 어딘가에 파묻혀버렸을 엄마의 꿈을 위로하며 엄마와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내게 올까.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엄마의 일생을 사랑한다고. 존경한다고.

내가 엄마로 살면서도 이렇게 내 꿈이 많은데 내가 이렇게 나의 어린시절을, 나의 소녀시절을, 나의 처녀시절을 하나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는데 왜 엄마는 처음부터 엄마인 것으로만 알고 있었을까. 엄마는 꿈을 펼쳐볼 기회도 없이 시대가 엄마 손에 쥐여준 가난하고 슬프고 혼자서 모든 것과 맞서고, 그리고 꼭 이겨나갈 밖에 다른 길이 없는 아주 나쁜 패를 들고서도 어떻게든 최선을 다해서 몸과 마음을 바친 일생이었는데. 난 어떻게 엄마의 꿈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을까.

아, 봄날 새싹들처럼 정신없이 솟아나는 이 기억들을 어디서 멈춰야 할지를 모르겠네.

갑자기 쏟아져 내린 빗방울에 돌돌돌 말리던 흙방울들. 바람부는 늦가을 밤이면 옆 마당의 감나무 잎새들이 수수수 떨어져 이 마당을 휘저으며 날아다녔네. 밤새 마당에 낙엽들 쓸려 다니는 소리를 듣기도 했네. 눈 내리는 겨울 밤에 바람이 불면 마당에 쌓인 눈이 마루까지 들이치기도 했다.

지금은 이리 얼어 있어도 봄이 되면 담장 쪽으로 밀어붙여진 꽃밭 근처가 다시 소란스러워지것제. 바람이 엄청부네. 마당의 눈이 바람에 돌돌 말려 쓸려 다니네.






2010. 10.13 기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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