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희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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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한해의 끝에서

2004.12.27 10:01

오연희 조회 수:325 추천:62

화장실 안에서 문을 빼꼼히 열고는 큰 소리로 " 엄마 화장지 좀…." 하던 얄미웠던 딸이 화장실 휴지가 떨어졌다며 미리미리 새것을 갖다 끼워 넣는다. 산더미 같은 빨래 세탁해서 거실에 늘어 놓으면 어느새 차곡히 개어 놓기도 한다. 필요하면 당당하게 돈을 달라고 하더니 이젠 조금 미안해 하는 기색을 보이면서 손을 내민다.

엄마가 화가나서 나무라면 같이 흥분 해서 엄마를 열받게 하던 아들이 "엄마 왜 그러세요?" 하고 영감 같은 저음의 목소리로 엄마의 흥분을 가라앉히며 은근한 제동을 건다. 그냥두면 하루종일이라도 잠을 잘만큼 잠꾸러기인 녀석이 아르바이트 스케줄에 맞춰 이른 아침 스스로 일어나 챙기고 나가는 뒷모습을 보면 콧등이 시큰하다. 그러고 보니 아들 볼에 뽀뽀할 때 느껴지는 수염의 촉감이 작년보다 조금 더 뻣뻣해진 것 같다.

엄마 아빠만 부르면 모든 것이 해결되던 때가 언제였던가 싶게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과 감정을 자제하는 모습이 조금씩 보인다. 자녀의 철 들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 만큼 흐뭇한 일이 어디 있으랴. 하지만 이렇게 부모의 품을 점점 벗어나는 구나 싶은 생각이 들때면 마음이 아릿해지기도 한다.

이해도 며칠 남지 않았다. 몸은 분주하면서 생각은 참 많아지는 시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한해를 돌아보며 그 선택은 정말 잘한 것이었어 하는 뿌듯함도 있겠지만 더러는 가슴을 치며 후회하는 일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참으로 많은 일들을 경험하고극복하고 해결해 가면서 한 해의 끝에 다다랐다. 그런데 우리가 건너왔던 시간들 속에서 마음대로 되어주지 않은 것 중에 하나가 자식교육일 것이다. 많은 모임에서 대화에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인 것을 보면 우리 한국 부모님들이 얼마나 자녀 교육에 마음을 쏟고 있는지 짐작이 가기 때문이다.

학교교육 가정교육 종교교육 등등…자녀를 반듯하게 키우기 위한 이 모든것들이 무엇을 위해서 필요 한지를 생각해 본다. 성공한 인생을 위해서일까? 무엇이 성공일까?

성공한 삶이란 "건전한 생각을 가지고 가치있는 일을 하며 즐겁게 사는것" 이라는 오래전에 어디선가 본 글이 필자의 마음에 남아있다.

성공한 삶을 누리는 자녀로 키우기 위해서 말로만 모든 책임을 끝낼수 있다면 교육만큼 쉬운 것이 없을 것이다. 말로만이 아니라 부모가 걸어온 삶으로 가르쳐야 하기에 자녀교육은 참으로 어려운 것이리라. 이세상에 완벽하게 정직하고 착한 부모가 있을까. 완벽한 부모인 것처럼 과장해 봐야 얼마나 먹혀 들어갈까.

결국 우린 모두 부족하지만 노력하고 있고 그리고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밖에 없다. 참 신기하게도 부모가 변해가는 것을 가장 먼저 눈치채는 것이 자녀들이다. 종종 전화 목소리만으로도 자신들을 향한 부모의 심적인 상태를 알아낸다. 마찬가지로 자녀가 건전한 생각을 품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면 작은 변화에도 감격하는 부모가 되어 보자.

목표를 자녀의 능력보다 너무 높이 두면 부모나 자식이나 참 피곤해 진다.

기대에 부응하고 싶지만 끝없는 부모의 기대에 반감을 느끼게 되고 결국 눈에 보이지 않는 거리감이 생긴다. 우린 모두 자신의 모습 이대로 인정해 주고 사랑해주는 누군가를 만나면 편안해짐을 경험한다. 모든 인간 관계가 그렇듯이 편안한 사람에게 마음을 열게 되는 것은 부모 자식간에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부모와 자식 그 사랑하는 생명과의 놀라운 인연 당연히 좋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사연들이 의외로 많다. 한해를 돌아보며 혹시 부모자식 간에 반목의 시간이 있었다면 깊은 애정의 눈빛과 함께 사랑 한다고 그리고 지나쳤던 그 일은 미안 하다고 말해보자.

새해를 맞는 기쁨이 배가 될것이다.

ohyeonhee@hotmail.com

신문발행일 :2004. 12.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