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희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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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공부 못하고 싶어서 못하나요?

2005.06.21 05:23

오연희 조회 수:392 추천:56


주위를 둘러보면 똑똑한 자녀를 둔 가정이 참으로 많다. 참 부럽다. 이렇게 부러운 마음이 가득한 날은 은근히 불평의 말투가 나도 모르게 튀어 나온다.

누구네 집 아이가 공부를 너무 못해 고등학교 졸업이 힘들 지경이라느니 혹은 마약이나  
갱 관련 사건에 개입이 되어 그 부모님들 애간장이 다 녹고 있다느니 이런 온갖 안 좋은 소식을 들을 때면 내 아이를 향하는 눈빛이 어쩐지 촉촉하고 부드럽다.

정말 다른 어느 누구와도 비교하는 일 없이 내 아이의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한결같은 태도로 자녀를 대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 중 하나가 비교 당하는 것이다. 그 점에 있어서는 어른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이웃의 소식을 전해주려는 것인지 아니면 넌 왜 그 모양이냐는 비교성 롤 모델을 제시하려는 것이지 의도를 잘도 알아 차린다. 자신의 일이 잘되어 갈 때는 문제가 안 되던 말도 자신의 처지가 갑갑할 때는 아주 예민하게 받아들인다. "so what?" 하면서 내뱉는 말속에 불평이 가득하다. 어떻게 말이 더 나가다 보면 자녀들과 심각하게 부딪치는 일도 생긴다.

자녀와 아무 문제 없다고 장담할 수 있는 부모가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사람 사이에는 아무 문제가 없을 수가 없다. 부딪친다는 것은 모든 인간 관계에서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뭔가 잘 해보겠다는 생각이 없으면 부딪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문제는 크고 작은 갈등을 해소해 나가는 과정의 미숙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필자는 엄마 아빠와 대화하는 것을 편하게 여기지 않는 자녀들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언어소통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자기 자식 잘 되라고 하는 남의 자식 잘된 이야기에 부담을 갖게 되어 관계가 소원해 지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공부 못하고 싶어서 못하나요? "좋은 직장 안 갖고 싶어 안 갖나요?" "애인 없고 싶어 없나요?" 아이들도 할 말이 참 많다.

필자의 이웃은 자신의 딸이 공부도 운동도 뛰어나 딸 이야기를 할 때면 늘 그 얼굴에 행복감이 환하게 번져왔다. 그런데 자랑스런 그 딸이 명문대학에 진학했다가 일년 만에 공부도 운동도 모두 바닥으로 떨어져 결국 집으로 돌아왔다.

친구들과 밤늦게 까지 몰려 다니는 등 자포자기의 행동을 서슴치 않던 딸을 보며 처음엔 너무도 속이 상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이가 가졌을 그 절망감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려 오더라며 충고의 말을 던지고 싶은 자신의 감정을 달래가며 일년동안 아이가 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고 한다.

깊은 좌절감에 빠져있던 딸이 방황의 시간을 끝내고 가까운 커뮤니티 칼리지에 등록해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며 한층 철든 딸의 모습에 콧등이 시큰해 진다고 한다. 또한 이렇게 낮아져보니 자녀로 인해 힘들어 하는 부모님들의 아픔이 너무 가까이 보인다며 모든 것이 감사할 뿐이라고 고백했다.

괜찮은 대학에 진학했다가 일 이년 만에 학교를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알고 보면 의외로 많다. 물론 너무 의존적으로 키운 부모 탓 일수도 있고 최선을 다하지 않은 자녀 탓 일수도 있다.

누구 탓을 해 봐야 바뀔 상황이 아니라면 사랑으로 감싸 안아야 되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 아닐까 싶다. 두려움이나 괴로운 감정을 누군가가 알아주면 사람은 용감해지고 희망을 품게 된다고 한다.

가정이란 실패해도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곳 비난 받을까 하는 두려움이 없이 상처와 아픔을 내 놓을 수 있는 곳이 진정한 가정의 의미일 것이다.

그렇다면 혹 우리의 가정이 가장 많은 비난의 장소가 된 적은 없었는지 생각해 본다. 가족에게 인정 받는다는 것이 세상적으로 성공한 사람임을 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세상에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고 인정해주는 단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조물주가 주신 선한 심성이 파괴되어 저질러지는 참담한 사건들이 훨씬 줄어들 것이다.

ohyeonhee@hotmail.com
신문발행일 :2005. 06.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