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희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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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한국의 풍속도

2005.04.04 09:19

오연희 조회 수:297 추천:60

필자는 최근 한국을 다녀왔다. 오랜만에 네 자매가 친정집에 모여 종일 이야기 꽃을 피우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밤이 되자 필자가 어린 시절부터 살아 온 친정집은 웃풍이 심해 샤워할 엄두가 나지 않아 핑계김에 모두 함께 찜질방을 가게 되었다.

동네 찜질방엔 사람들로 가득차 있었고 PC방 식당 매점 운동실 휴계실 마사지실 사우나실 그리고 건강에 좋다는 각종 찜질방 등등…온갖 시설이 잘 갖춰져 있었다. TV에서는 가수를 초청해서 무대를 꾸민 서울의 어느 최신형 찜질방을 소개하는 장면이 방영되고 있었다. 가족이 함께 즐길수 있는 최적의 장소라는 해설과 함께.

자정이 넘으니 가족과 함께 온 듯한 어른들은 많이 돌아가고 틴에이저로 보이는 아이들이 찜질방에서 주는 간편한 차림으로 편안하게 앉거나 누워 이야기도 하고 잠도 자는 모습이 보였다. 유난히 북적대는 PC방을 들여다보니 게임과 웹서핑에 빠진 아이들로 분위기가 후끈했다.

사람이 별로 없는 몇 개의 찜질방 안에는 남녀 학생들이 거의 포옹하듯이 드러누워 속닥거리는 모습도 간간이 보였다. 중학교 교사인 필자의 여동생이 그 아이들에게 얼굴을 바짝 들이대고 쳐다보면 슬며시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기곤 했다. 가르치는 입장인 동생은 온통 중고등학교 학생들이라며 요즘 한국에는 이들을 유혹하는 세가지의 방 즉 PC방 노래방 찜질방이 문제라며 정말 걱정스럽다고 했다. 거의 24시간 영업을 하기 때문에 밤에 모인 학생들 사이에서 불미스러운 일들이 일어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사람은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나를 만나자고 하는 사람도 만나고 싶은 사람도 없는 삶은 참 삭막할 것 이다. 가끔은 자신의 슬픔과 아픔을 나누고 어려운 문제를 털어놓고 싶은 마음이 통하는 누군가가 필요할 때가 있다. 우리 자녀들 역시 그럴 것이다. 공유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은 사람과 시간을 보내는 기쁨은 어른이나 아이나 다를바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도 어린시절 친구랑 이야기 하다가 밤을 새우는 것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른다. 학교 운동장에 드러 누워 별을 세어가며 밤이 깊어 가는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었던 기억들이 별보다 아름답게 남아있다.

허구헌날 만나면서도 어찌그리 할말이 많았던지 헤어지기가 아쉬워 친구가 우리집까지 나를 데려다 주고 또다시 친구집까지 데려다주곤 했다. 그러다가 자정 통금 사이렌 울릴 시간이 가까워지면 서둘러 집에 돌아 오거나 한쪽 부모님의 허락 아래 친구나 필자의 집에서 잠을 자곤했는데 그 때의 달콤했던 기분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돈독한 우정이란 특별한 만남 속에서 이루어지기도 한다. 밤하늘의 별을 헤며 깊어가던 우리 시대의 우정과는 다른 이 시대가 허락하는 환경 속에서 우리 아이들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밖에서 밤을 새는 것을 편안하게 여길 부모는 없을것이다. 집에만 머문다고 안심할수도 없는 환경이다. 마음만 먹으면 휴대폰과 인터넷을 통해서 또 다른 관계속으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찜질방 노래방 PC방 휴대폰 그리고 인터넷 세상이 미국에 사는 우리 자녀들에게도 절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에서 붐이 일고 있는 것은 한국인이 많이 사는 미국 곳곳에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건전한 동기로 만들어진 좋은 시설이나 첨단 기술이라 할지라도 상술이 앞서고 그리고 여러모로 힘든 현실의 탈출구가 된다면 악용될 소지도 다분히 있다.

우리의 자녀들이 이 모든 것을 적절하게 사용하고 또 자제 할 수 있도록 유도 해야하는 것이 어른들의 몫으로 남는다.

ohyeonhee@hotmail.com

신문발행일 :2005. 04. 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