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희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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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욕하는 부모

2005.02.09 17:17

오연희 조회 수:463 추천:57

어릴적 필자는 두살 터울의 언니랑 엄청 다투면서 자랐다. 그 날도 티걱태걱 하다가 화가나서 "가시나야" 라고 말해 버렸다. 언니는 벌떡 일어 나더니 벽장문에 붙은 누런 종이 앞으로 갔다. 그리고 내 이름 밑에다가 가위표 하나를 더했다.  
난 약이 올라서 "가시나야"를 마구 뱉어 버렸다. 딸 넷 중 가시나를 가장 많이 입에 담은 댓가로 어떤 벌이 주어 졌었는지 기억나진 않는다. 종이를 벽장문에 붙여 욕한 사람의 이름에 가위표를 하게 한 것은 좋지 못한 말은 입에 담지 않기를 바라는 부모님의 아이디어가 아니었을까 짐작해 볼 따름이다.

욕이라고 알고 있는 몇 개의 단어는 흉허물 없는 친구 사이에 오가는 정겨운 호칭으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저런 말도 있었나 싶을 정도의 온갖 욕들이 난무 하는 요즘엔 가시나란 말을 가장 큰 욕으로 알았던 어린시절이 그립다.

가끔 욕인지 일상 용어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거친 말투를 가진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대화 장소나 분위기에 따라 텉털하다거나 화통하다거나 외향적인 성품이라서 그렇다며 좋게 해석하기도 한다.

고달픈 이민생활에서 온갖 어려운 상황에 부딪치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욕이 튀어 나온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욕이라도 실컷 퍼 부어 풀릴 속이라면 욕도 큰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면서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할 말을 다 토해 낸다고 하여 결과가 더 좋아지지 않음을 경험할 때가 참으로 많다. 화가 담긴 언어속에는 감정이 이성위에 오기 때문일 것이다.

할 말을 가슴에 꾹꾹 눌러 놓으면 마음의 병이 되니 풀고 살아야 된다는 정신 분석학적인 의견도 있다. 그러나 홧김에 내 뱉은 말 때문에 되돌아오는 인격적인 손상과 회복 불가능한 인간 관계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자녀들이 알게 모르게 부모의 그런 모습을 보고 있다는것을 염두에 두어야 될 것 같다. 부모의 좋은 점만 닮으면 좋으련만 어쩜 그리도 내 스스로도 싫어하는 나의 나쁜 행동을 쏙 빼 닮는지 모르겠다.

천성도 그렇지만 평소의 나의 좋지 않은 말투나 습관이 내 아이들에게서 나타날 때는 정말 아찔하다.

부모의 말투가 거친경우 자녀들의 말투 역시 험한 경우가 많다.

오래전 필자가 꽃꽃이를 배우러 다닐 때 만난 또래 아줌마가 있었다. 초보생인 필자는 수반에 꽃을 꽃고 있는 귀티가 흘러 넘치는 아름다운 그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화 중 들려준 그녀의 사연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녀는 욕이라고는 모르는 젊잖은 가정에서 자랐다. 형제나 친구들 사이에서도 성격 좋다는 말을 수없이 들었다. 그런데 중매로 고위 공무원직에 있는 남편과 결혼을 했는데 살고보니 어찌나 욕을 잘 하는지 결혼 생활 몇 년하고 나니 이젠 자신이 남편보다 욕을 더 잘한다고 했다. 남편과의 말다툼에서 이길려면 더 잘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자신이 이렇게 변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무엇보다 조그만 아들 녀석도 부모의 말투를 닮아 간다며 속상해 했다.

욕도 적절하게만 사용하면 위트와 웃음을 자아내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글자만 떼어놓고 보면 분명 욕인데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친근감이 드는 말도 있다. 그런 말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일상적인 말투가 거칠다면 우리 자신과 자녀들을 위해서 더 나아가 좀 더 부드러운 사회 분위기를 위해서 순화시키도록 노력해야 될 것 같다.

무엇보다 마음에 분이 가득할 때 상대를 자극하지 않으면서 본인도 평안을 도모할줄 아는 성숙한 어른의 모습을 갖춰가면 좋겠다.

ohyeonhee@hotmail.com



신문발행일 :2005. 02. 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