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희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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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평생을 지배하는 한마디

2005.03.16 09:46

오연희 조회 수:382 추천:61

그 아이가 초등학교 육학년때 육이오 전쟁이 났다. '어머니 말씀 잘 듣고 집 지키고 있어' 아들의 머리 쓰다듬어 주시고 한강 건너 남쪽으로 떠나신 아버지.

남겨진 가족은 고생을 견디다 못해 신주처럼 소중하게 아끼던 재봉틀로 쌀 한 보따리
바꾸어 아버지 찾아 서울로 향했다. 그 아이는 쌀보따리를 짊어지고 어머니는 어린 동생 둘을 데리고 뒤따라 오셨다. '무겁지내가 좀 져줄게' 젊은 청년 이 나타났고 아이는 '아저씨 감사해요'라며 쌀자루를 맡겼다. 앞서가는 청년의 발걸음은 빨랐고 뒤따르는 어머니는 늦었다. 갈라지는 길이나왔다.'아저씨 여기 내려주세요. 어머니를 기다려야 해요' 들은척도 안했다. 그아이는 그냥 주저 앉았다. 어머니를 놓칠수는 없었다. 한참후 울고 앉아있는 아이에게 다다른 어머니가 '쌀자루는 어디갔니?' 물으셨다.

'어머니 놓칠까봐…'아이의 대답에 창백해진 어머니 얼굴. 한참후 아이의 머리를 껴안고 '내 아들이 영리하고 똑똑해서 에미를 잃지 않았네'셨고 간신히 구해온 새끼손까락 만한 삶은 고구마를입에 넣어주시면서 '내 아들이 영리하고 똑똑해서 아버지를 볼 낯이 있지'하시면서 또 우셨다. 그 위기에 생명줄 같았던 쌀을 바보같이 다 잃은 아이를 영리하고 똑똑한 아들이라고 칭찬해 준 그 어머니에게 기쁨이 되어 드리고자 그 아이는 공부를 했다.

그 칭찬의 한마디가 평생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 아이의 지주가 되었다. 그 아이는 고 박목월 시인의 장남인 박동규 서울대 명예교수이시다. 위의 글은 "얘야 착한게 잘못은 아니란다"라는 제목의 그분의 자서전적 에세이 줄거리이다.

'어머니 놓칠까봐….' 라는 아이의 대답에 창백해진 그 어머니의 얼굴이 떠오른다. 필자라면 그런 상황에서 얼굴만 창백해졌을까?잘못한 것을 지적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상황을 잘도파악한다. 그런데도 굳이 잘못을 짚고 넘어갈 때가 있다. 칭찬은 더더구나 쉽게하지 않는다. 남을 쉽게 믿는 착한 자녀를 보고 흐뭇해 하기는 커녕 손해만 보고살까봐 조바심한다.

필자의 아이들은 미국의 시골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다.

어느날 가까이 지내던 이웃 엄마가 자신의 딸이 대통령상을 받았다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미국 온 지 2년 만에 미국 대통령 사인이든 상장을 받아왔으니 그딸이 얼마나 대견해 보였겠는가. 상장을 멋진 액자에 표구를 해서 거실 가장 잘보이는 곳에다가 걸어놓았다. 그런데 얼마후 필자의 딸도 대통령상을 받아왔다. 알고보니 다른 이웃아이도 마찬가지였다. 프리지던트라는 말에 흥분해서 왜 그 상 받았는지는 알아볼 생각도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받아온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알아 볼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 더 솔직한 고백이다.

미국학교는 상도 참 많다. 이달의 학생이라고 상장도주고 스티카도 준다. 드라이브를 하다보면 차 뒷 쪽에 학년마다 받았는 이달의 학생 스티카를 몇 개 씩 붙이고 다니기도 한다. 한번도 상을 받아오지 못하는 아이가 있다는 사실과 그 아이들 속에 내 아이가 있 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상장 하나 하나에 얼마나 감격하고 칭찬 해야 할 일인지 모른다. 내 아이가 잘하는 것을 당연한 일이라고 여기는 이상 칭찬에 인색해 질수 밖에 없을 것이다.

영어든 한국말이든 칭찬과 관계된 단어는 참 많다. 칭찬은 말을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 모두를 정말 행복하게 만든다. 칭찬 받은 적이 없는 아이가 남에게 풍성한 칭찬의 언어를 사용할 것을 기대할수는 없을 것이다.

ohyeonhee@hotmail.com

신문발행일 :2005. 03.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