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희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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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애들은 몰라도 돼!"

2005.10.24 07:21

오연희 조회 수:705 추천:61

요즘은 많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성에 대해서 입에 담는 것은 그 자체가 한 개인의 고매한 인격을 손상시키는 것쯤으로 여겨져 온 것 같다. 입에 담는 것을 삼가 해 왔던 만큼 우리 자녀들에게 솔직하게 말해주는 것에도 익숙하지 않다.

기독교적 관점에서 인간의 성은 신의 축복과 선물이라고 한다. 성에 대한 올바른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이 말을 얼마만큼 가슴으로 받아들일까?

필자세대는 대부분 부모님과 성에 대한 대화를 편안하게 나누는 분위기에서 성장하지 못했다.

사춘기 시절 뭔가 아는 척 하며 떠벌리던 친구의 성에 대한 지식도 나중에 보니 거의가 잘못된 것들이었다.

그래도 다들 결혼해서 잘사는걸 보면 "애들은 몰라도 돼!" 라던 어른들 말씀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필자의 아이들이 미국에서 초등학교 다닐 때 성교육을 위한 특별 강의가 있다며 부모 동의서를 가져왔다.

그런 것은 학교에서 알아서 하면 될 텐데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사인을 해 준일이 있다. 다녀온 아이들에게 뭘 배웠냐고 물었더니 남자와 여자의 각각 다른 생리적인 신체구조를 배웠다고 했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이런저런 지식이 더해지긴 했지만 아이들 몸의 성장 속도만큼 따라주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어느날 필자의 딸이 생리를 시작하고 그 뒷처리가 미숙하여 도와 주느라 아들 눈을 피해서 엄마와 딸이 쑥덕쑥덕 하고 있으니 아들은 뭔가 싶어 귀를 바짝 세웠다.

누나는 동생이 알까 봐 이리저리 피하고 아들은 더더욱 끼어 들고 싶어 하다 보니 집안 분위기가 아주 묘해졌다.

안되겠다 싶어 아들을 앉혀놓고 필자가 알고 있는 범위 안에서 여자의 몸에 대해서 적나라하게 말해 주었다. 그 다음부터는 또 그 날이 왔나 보다 하는 표정으로 둘이서 쑥덕 거리든지 말든지 통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런 단순한 생리현상에 대한 지식만 가지고 점점 더해지는 우리 자녀들의 성에 대한 욕구나 호기심을 충족시킬 수는 없는 일이다.

더구나 어른들이 우리 아이들의 자연스런 욕구나 심리를 자극해서 돈벌이를 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아들이 중학교 다닐 때 였다. 예상 밖의 전화요금 고지서를 받고 자세히 들여다보니 이상한 전화번호에 요금이 엄청나게 붙어 있었다.

아들에게 캐물었더니 학교에서 한 백인친구가 이 전화번호를 돌리면 굉장히 재미있는 것을 알게 된다며 꼭 해보라고 번호를 주더란다. 재미있다는 그 묘한 뉘앙스에 끌려 번호를 돌렸더니 자동응답기가 나와서는 몇 번을 눌러라 하고 다시 그곳에 가면 또 다른 번호를 눌러라 하고 여러 번 돌아다니다 보니 시간만 자꾸 가고 정작 재미있다는 곳까지는 가보지도 못하고 끊고 말았다는 것이다.

성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 관심을 운동이나 다른 쪽으로 기울여 보면 어떻겠냐고 한마디 했다.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엄마 저도 그 생각을 했어요. 그래야 겠어요."하는 선에서 끝났던 적이 있다.

필자는 컴퓨터 사용을 많이 하는 편이다. 필자의 친구 이름을 도용한 음란사이트 안내 메일이 스팸메일 차단 장치를 뚫고 들어온다. 이 사이트에서 저 사이트로 옮겨가는 중간에 야한 장면이 불쑥 나타나기도 한다.

닫힘표를 크릭 해도 닫히기는 커녕 또 다른 장면이 뜨도록 장치해 놓은 곳도 있다. 우리 아이들도 쉽게 경험하는 일일 것이다. "애들은 몰라도 돼!" 가 아니라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알아지도록 되어 있는 세상이다.

그런데 그런 사이트에서 가르쳐주는 성지식은 오로지 '성행위' 에 관한 것이다. 서로에게 진실하지도 성실하지도 떳떳하지도 않은 관계인 그들은 보이기 위한 연기를 하고 있다. 혹시 이런 것을 보고 우리 아이들이 성에 대해서 다 알고 있다는 듯이 행동하는 것은 아닐까.

"부모와 자녀가 성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은 미리 보험을 들어두는 것과 같다" 고 한다.

쉬운 일이 아니지만 조심스럽게 다가가 보면 우리 아이들의 고민도 보일 것 같다.

또한 성이 한 순간의 즐거움만 주는 그런 가치 없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긴 시간을 함께 웃을 수 있는 밝고 아름다운 것으로 인식시키는 교육 과정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ohyeonhee@hotmail.com



신문발행일 :2005. 10.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