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희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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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사랑은 오래참고"

2003.06.23 14:25

오연희 조회 수:755 추천:59

사랑은 오래참고

오연희

믿음을 가진 가정이거나 아니거나 상관없이 집안거실 벽에 "사랑은 오래 참고…"로 시작되는 성경의 고린도전서 13장의 사랑에 관한 글이 걸려있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오늘도 이웃의 어느 가정을 방문했더니 바로 그 유명한 사랑장의 글이 큼직하고 멋져 보이는 프레임으로 표구한 액자가 벽에 걸려 있었다.
“사랑은….” 으로 시작되는 그 글을 읽을 때마다 고개를 깊이 숙이고 싶은 그런 엄숙함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 한마디 한마디를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구절구절들이 내 가슴 깊숙이 큰 찔림이 되고 만다.
솔직히 누군가 나에게 그 글과 같은 사랑을 실천해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다 보면 잠시 뿌듯한 행복감에 젖어 든다. 그러나 그 글은 우리가 누군가에게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음성임을 곧 깨닫게 된다.
그러나, 난 “사랑은 오래 참고…” 첫 구절에서 그만 백기를 들고 만다. 난 결코 오래 참지 않는다. 가끔 참기도 하지만 참는다기 보다는 어디 두고 보자는 맘을 품고 벼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흠짓 하곤 한다. 화를 내고 돌아서서 후회는 곧잘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화내기를 반복하고 만다. 겉으론 너그러운 척 하지만 질투심은 얼마나 심한지 나의 속이 당장 드러나지 않기에 얼마나 다행한지, 또한 지탄을 받지 않고도 회복할 기회까지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우리가 늘 접하는 드라마나 영화의 가장 주된 주제는 역시 사랑이 아닐까 싶다. 진정한 사랑 이야기에 감격하는 것은 이 시대에 사랑을 지켜나가기가 그만큼 힘들다는 뜻일 거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드라마나 영화 속의 사랑은 그처럼 아름답고 숭고하고 때론 열정적인데 만약 실제 생활에서도 그 순간을 지속적으로 지켜야 한다면 얼마나 많은 스토리가 “사랑” 이라는 이름으로 남을 수 있을까?
난 아주 드물긴 하지만 어려운 사람을 도울 때가 있다. 물론 그렇게 하는 것도 쉬운 결정은 아니다. 그런데 내속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알량한 동정심에서 나온 순간적인 착한 감정에서 나온 것임을 알게 된다. 왜냐면 난 지속적으로 그 사람을 도울 생각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진정한 사랑은 순간적으로 끝나는 그런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사랑” 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어도 부끄럽지 않은 그런 길을 가고 싶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사랑은 시기하지 않으면 사랑은 자랑도 교만도 아니한다고 한다. 그러나 늘 욕심과 감정이 앞서다 보니 “사랑” 이라는 이름 앞에 고개만 수그려진다.

2003년 4월 3일(목)7면 기사실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