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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현장엿보기]사랑의 매

2003.07.12 16:02

오연희 조회 수:309 추천:64

사랑의 매


가끔 식당에서 식사를 할 때면 손님들 사이를 마냥 휘젓고 다니는 어린 아이들을 보게 된다. 자녀들이 다른 사람들의 식사 분위기를 망쳐놓는데도 애들은 다 그렇게 크는 거라는 듯이 ‘나 몰라라’하는 모습을 볼 땐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한다.

가능하면 매를 들지 않고 자식을 키우고 싶은 마음이야 어느 부모인들 다르랴마는 때로는 사랑의 매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매에 감정이 지나치게 실리게 되면 자녀나 부모 모두 마음에 큰 상처를 받을 수 있고 혹여 부모에 대한 반감이 생길 수도 있다. 더구나 미국에서의 체벌은 자칫 법적인 문제를 야기할 있기 때문에 자녀에게 매를 들 때는 더욱 주의해야 한다.

남매를 키우는 필자도 결코 잊지 못할 가슴 아픈 기억이 하나 있다.

미국의 한 시골도시에서 살 때 아들은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필자는 그 도시에 하나밖에 없는 한인 교회의 주일학교와 한국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작은 교회에서 여러 가지 일을 맡다 보니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갖게 됐고 당연히 아이들도 모범이 되길 바랬다.

여름성경 학교가 열리던 어느 무더운 여름날, 한 교인의 아들과 내 아들 사이에 싸움이 일어났다. 사연인즉 교회에서 선물로 준 연필을 내 아들이 빼앗아 갔다는 것이었다.

표정을 살펴보니 주위의 아이들도 내 아들이 그런 걸로 알고 있는 듯 했다. 전후 사정을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은 채 아들을 집에 데려와선 정말 엄청나게 때렸다.

아들의 몸엔 맷자국이 심하게 났다. 감정이 너무 실렸던 것 같아 괴로웠지만 교회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입장을 생각하면서 마음을 달래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남편이 퇴근해 돌아왔는데 아들은 그 때까지도 서럽게 울고 있었고 이를 이상하게 생각한 남편이 아들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다.

아들 말을 다 들은 남편은 진상을 알아보려 그 교인 집에 찾아갔고, 내 아들이 빼앗아 갔다던 연필을 교인의 아들이 갖고 있는 것을 확인하게 됐다. 결국 그 쪽 아이와 어머니의 사과를 받았다.

아들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심하게 매를 들었던 일로 인해 난 몹쓸 엄마가 되고 말았다.

요즘도 어쩌다가 손을 올려 때리는 시늉을 하면 아들은 힘센 팔로 내 팔목을 꽉 잡고는 씨익 웃는다. “어어… 말로 하세요.”

무조건 오냐오냐 받아줘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버릇없는 자녀로 만드는 것은 곤란하다. 매를 대지 않는 것이 꼭 민주교육은 아니라고 본다. 하지만 내 자녀를 믿어주고 끝까지 그들의 말을 들어주는 인내심 역시 가져야 할 것이다.

필자도 어렸을 때 어머니한테 매를 맞은 경험이 있다. 때로는 억울하게 맞은 적도 있었으리라.
그러나 한번도 부모님을 원망하거나 나쁜 마음을 품은 적은 없다. 그 시절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난하고 불편하게 살았고 자녀 수도 많은지라 자초지종을 다 밝혀가면서 자녀를 다스리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평소에 부모님들이 우리를 얼마나 염려하고 사랑하는지 알고 있었기에 그 때의 매가 사랑의 매로 추억에 남아있다.

하지만 여기는 미국땅.

매를 들지 않아도, 사랑과 칭찬의 말만 하고 살아도 어디서든 반듯하게 자신의 위치를 잘 지켜나가는 우리 아이들로 클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리고 그런 자녀를 키우는 지혜로운 부모가 될 수 있으면 더욱 좋으련만.

이메일 문의 ohyeonhee@hotmail.com
입력시간 :2003. 04. 07 14: 22
2003년 4월 8일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