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희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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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알지못할 슬픔

2003.08.07 03:05

오연희 조회 수:275 추천:55

10 여년 전 나의 가족이 미국에 첫발을 디디고 살게 된 시골엔 조그만 한인교회가 하나 있었다. 미국교회의 한 쳅터를 빌려 예배를 드렸고 부엌은 미국인들과 같이 사용했다. 한국인과 관련된 대부분의 행사는 교회에서 치뤄졌고 행사 후엔 미국식당을 사용했다. 미국인들이 참으로 친절하게 대해줬지만 식당을 사용한 후엔 김치를 비롯한 한국음식 냄새 때문에 언잖은 소리를 듣기가 일쑤였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한국인들의 내 교회를 갖고자 하는 소망은 커지게 되었다. 다행히 그곳에 일찍이 터를 잡고 사시는 한 분의 적극적인 지원과 여러 사람의 정성이 모여 폐허가 된 허름한 건물을 하나 사게 되었다. 원래 교회를 다니던 교인뿐만 아니라 전혀 다닌 적이 없는 한국인들까지 모두 나와서 그 폐허 같은 건물을 예배를 드릴만한 장소로 만들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개조해 나가기 하기 시작했다.

여자들은 돌아가며 국수나 비빔밥을 만들어 오고 남자들은 건물 안을 수리하고 그리고 건물에 딸린 오렌지 밭을 주차장으로 만들기 위해 나무를 자르느라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하지만 모두의 얼굴에선 우리만의 것을 갖는다는 기쁨으로 가득 차 즐겁기만 했다.

한국인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한국인과 결혼한 외국남자들까지 힘닫는데까지 도움을 주었다. 오 육십 명 정도의 교인들 중엔 외국인과 결혼한 한국부인들이 여러 명 출석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그 도시 근교에 육군 부대가 있어서 미군과 결혼한 한국부인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은 백인과 결혼했지만 그 중엔 멕시칸과 결혼한 분도 있었고 또 흑인과 결혼한 분도 몇 명 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 두 부인은 남편이 흑인이었는데 나와는 이웃에 살고 있어 그 댁에 방문할 기회가 잦았다. 그런데 그 두 가정을 가보면 남편들이 어찌나 부지런히 집안을 잘 가꾸는지 감탄하곤 했다. 그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 정원을 가꾸고 주말이면 자신의 자동차나 집안 밖의 부실한 곳을 찾아 고치기를 즐기는 가정에 충실한 전형적인 미국남편들이었다. 그리고 바쁜 중에도 자신의 자녀들이 피아노나 바이올린을 배울 수 있도록 열심히 데려다 주고 데려오곤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어느 날 나의 아들이 몸살로 아프다고 했더니 당장 자기 집에 가선 약을 찾아 가지고 왔다. 그리곤 빨리 완쾌하기를 바란다며 염려하는 그의 모습이 얼마나 정겹던지 참 좋은 이웃을 둔 것에 깊은 감사의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내가 느끼기에도 그랬지만 그 한국부인의 이야기에 의하면 자신의 남편 자랑 같지만 참으로 성실하고 생각이 반듯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 남편들은 가정을 소중히 여기고 집안을 요모조모 잘 가꾸면서 열심히 살아가는 그저 흔히 보는 이웃 아저씨 였었다.

한국교회에 행사가 있는 날은 그야말로 한국인들의 동네 잔치 같은 분위기가 되었다. 외국인과 결혼한 한국부인들은 남편과 함께 나와 예배를 드리기도 하고 때로는 한국교회에 주요직책을 맡아서 열심을 다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 당시 난 이 교회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를 하고 있었는데 한국인부인과 외국인 사이에 태어난 흔히 우리가 말하는 혼혈자녀들을 한국교회의 주일학교나 여름성경학교에 보내왔다. 이들 혼혈아들의 수가 늘어나다 보니 영어에 불편이 없는 주일학교 교사가 필요하게 되었다. 나를 비롯한 한국부인 몇 명이 가까이 있는 대학에 다니면서 영어를 배워 부족한 데로 열심히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나중엔 외국인과 결혼한 한국 부인들이 영어권 아이들을 위해서 봉사하게 되어 더욱더 분위기가 활발해 졌다. 그녀들의 외국인 남편들도 여러모로 도와주었는데 특별히 흑인 남편들은 아이들을 데려오고 데려다 주는 일을 감당해주어 참으로 든든하고 감사한 마음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흑인이 한국여인과 평범하게 사는 것을 본 것이 흑인에 대한 나의 첫 경험이었다.

그 후에 LA의 흑인폭동 사건이 났다. 난 먼저 그 한국부인들의 흑인 남편생각이 났다. 사람 나름이지 흑인이라고 모두 그렇게 폭동을 일으키는 폭군들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TV 화면에 나타난 그들의 만행을 보다 보니 흑인은 무지막지한 인간들이라는 부정적인 생각으로 바뀌어져 갔다. 그러나 뭔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억눌린 서러움이 있었겠지 하는 일말의 동정심이 늘 내 가슴에 남아 있었다. 아마도 그것은 오래 전 그 부인들의 성실한 흑인남편들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느 한국 분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흑인을 겪어보지 않아서 너무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 한국 분은 LA흑인 폭동 때 자신의 비즈니스에 막대한 타격을 가했던 흑인의 실상을 이야기하면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참으로 개인적인 경험이 다르니 입에서 나오는 말도 달라질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새로 이사온 동네는 LA중에서도 대체로 한인들이 많이 사는 곳이다. 미국땅이라고 하지만 한국식당, 노래방, 당구장, 사우나 해서 그야말로 불편한 것이 없을 정도로 한국인이 살기에 편리하다 얼마 전 미국온후 처음으로 사우나탕엘 가게 되었다. 그곳에 카운터 보는 한국 할머니가 뭔 말끝에 깜둥이가 많은 동네는 안 좋은 동네라고 했다. 흑인이라는 말은 그냥 백인, 동양인, 흑인 이런 식으로 피부색깔로 구분하는 어감이 들었는데 “깜둥이”라고 하니까 참 기분이 묘했다. 행여나 흑인과 결혼했던 오래 전의 그 부인들이 들으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서 였는지 나도 모르게 주위를 둘러보게 되었다.

얼마 전엔 이사온 새집에 전화 연결한 것에 문제가 생겼는지 세 개의 선 중에 하나가 작동을 하지 않아 SBC 전화회사에 연락하여 기술자를 보내줄 것을 요청했다. 나 혼자 집에 있었는데 아주 새까맣고 쪼고만 흑인 남자가 허리엔 줄줄이 연장을 매달고는 나타났다. 새까만 피부에 머리를 숨 쉴 구멍도 없이 쫑쫑 땋아선 얄궂게 생긴 모자를 하나 뒤집어 쓴 광대 같은 모습이 참으로 우스꽝스러웠다. 까만 피부에 유난히 반짝이는 크다란 눈이 한국살 때 시골에서 보았던 소의 선한 눈빛을 닮았었다.

외국인들이 오면 늘 겪는 일이지만 그 흑인남자도 신발을 신은 채로 집안에 들어오려고 했다. 그냥 둘까 하다가 이사오기 전에 새 카펫으로 쫙 깔고 들어왔는데 안되겠다 싶어 신발 좀 벗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알았다며 자신의 차있는 데로 뚜벅뚜벅 걸어나갔다. 조금 있으려니 신발 위에 덧 신을 수 있는 하얀 비닐 버선을 들고 들어왔다. 나도 얼마 전부터 저런 버선을 하나 구비해놓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참이라 반가워 “너 정말 좋은 것을 가지고 있구나! 그런 버선은 어디서 사면 되냐? “ 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어디서 파는지는 모르고 원래 SBC엔 이럴 때를 대비해서 버선이 늘 준비되어 있다고 했다.

하여튼 기분 좋게 신발건도 해결되었지만 여자 혼자 집에 있으려니 참 어색하고 조심스러웠다. 다행히 조금 있으려니 이웃에 사는 늘 나에게 다정하게 대해주시는 김선배께서 오셨다. 그분을 뵐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남을 배려하는 마음 씀씀이와 맑고 밝은 심성을 보노라면 존경심이 저절로 일어나게 하는 그런 분이셨다. 그녀는 이사한 후 첫 방문이라며 예쁜 액자랑 방금 구운 도넛을 한 상자 사가지고 오셨다.

김선배께선 밖에서 일하는 그 흑인 남자를 보시곤 우리 이 따끈따끈한 도넛을 저 흑인이랑 함께 즐기면 어떻겠냐고 물어오셨다. 내가 좋다고 반겼더니 큰소리로 그를 불렀다. 열심히 일하고 있던 그 흑인은 너무도 황송한 표정으로 쭈삣 거리며 들어왔다. 내 집의 다이닝 룸 식탁에 셋이 오순도순 앉아 맛난 도넛을 나눠 먹었다. 그 흑인의 얼굴 표정엔 진한 즐거움이 송글송글 피어 올랐다.

참으로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그때의 그 한국부인들과 흑인남편들의 모습이 떠 올랐다. 그들을 생각하다 보니 알지 못할 슬픔이 밀려온다. 우리도 이 이국 땅에 살면서 때로 서러운 감정에 부딪치게 되는데 우리의 서러움과는 또 다른 그들의 슬픔. 지금은 어디 사는지 모르지만 아주 많이 많이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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