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희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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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한국인

2006.05.22 13:05

오연희 조회 수:1038 추천:191


지난 3월 첫 주 교회에서 3.1절 기념예배를 드렸다. 예배가 끝난 후 애국가를 부르는데 울컥 목이 메이고 눈물이 핑 돌았다. 어느 분께 말씀 드렸더니 나이 드는 증세라고 한다. 맞는 말 같다. 애국가를 부르는 동안 부모님 생각을 시작으로 한국에서의 지난 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점점 길어지는 이민의 세월과 함께 나라사랑의 마음이 조금 생긴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미국 와서 미국식 교육만 받아 온 우리 아이들은 어떨까.

내 나라 국경일을 알고 있기나 할까. 돌이켜보니 미국공부 따라가기에 급급해 한국역사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던 것 같다. 늦었지만 뭔가 해야 될 것 같은 생각이 번쩍 들었다. 마음이 급해졌다. 집에 오자 마자 아이들에게 편지를 썼다.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우리는 어디에 살든 이날이 무슨 날인지 정도는 알아야 할 것이다. 1910년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들의 노예처럼 살았단다. 우리말도 쓰지 못하게 하고 같이 모여 토론할 수 있는 정치적 자유를 빼앗는 등...한국사람을 일본사람으로 만들어 그들의 심부름꾼으로 만들려고 했었단다." 를 시작으로 파고다공원 독립선언서 낭독 유 관순 여학생의 만세운동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줄줄이 써서 이 메일로 보냈다.

"3.1절에 대해서 대충은 알고 있었어요" 라는 답을 받기는 했지만 좀더 자세히 알게 되었을 것을 생각하니 뿌듯했다.

그런 일이 있은 며칠 후 아들과 함께 코리아타운 나갈 일이 생겼다. 프리웨이를 드라이브 하다가 'Dosan Ahn Chang Ho Memorial Interchange'라는 팻말을 보았다. "도산 안창호가 누군지 아니?" 로 운을 뗐다. 집에 와서 웹사이트를 뒤졌다. 도산 안창호 선생님의 생애와 업적에 관한 자료를 찾아냈다.

너무 길어 중요한 구절에 노란 하이라이트를 쳐서 아들에게 읽어 보라고 주었다. 엄마의 의도를 알아차린 아들은 '못 말려…' 하는 표정으로 비싯 웃었다.

4월 초 필자는 중국을 다녀왔다. 그곳에 살고 있는 조카의 안내로 여러 명소를 둘러 보았다. 그런데 이런 일이 있은 직후 여서인지 중국 속의 한국의 흔적이 가장 큰 의미로 다가왔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그날 상해에 있는 '대한민국임시정부청사'가 있다는 좁은 골목길로 들어섰다. 3층 벽돌집 입구에 걸린 '대한민국임시정부유적지'라는 명패를 보니 비장한 기분이 들었다. 표를 파는 1층에서 유적지의 역사를 담은 비디오를 틀어 주었다. 역사의 현장에 와 있다는 감격에서인지 유적지 주위의 낡고 초라한 분위기 탓인지 가슴이 울렁이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당시 쓰던 가구 서적 사진들이 잘 전시되어 있었고 우리나라 전 대통령들의 다녀간 흔적들도 잘 비치되어 있었다.

특히 백 범 김 구 선생님의 집무실에는 당시의 생활상과 함께 선생님의 생전의 모습을 밀랍인형으로 만들어 놓아 감동이 더 생생했다.

그곳을 다녀온 후 가장 강하고 오래 남아 있는 기억은 모든 전시품들을 관람하고 밖으로 나오기 직전 필자의 눈길을 잡은 벽에 걸린 액자 였다. 김 구 선생님이 붓글씨로 쓰신 것인데 "눈 내린 들판을 밟아갈 때에는 모름지기 그 발걸음을 어지러이 하지 말라. 오늘 걷는 나의 발자국은 반드시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리라" 라는 서산대사의 글이었다. 읽고 또 읽었다. 구국의 열망으로 불탔던 김 구 선생님의 인생관을 보는 듯했다.

수많은 한국인들이 다녀갔다는 '대한민국임시정부유적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내 조국에 대한 뜨거운 감사가 우러났을 것 같다.

그런데 그곳은 현재 상해정부가 관리하고 있으며 2010 세계 엑스포 상해 개회를 앞두고 그 일대를 재개발지역으로 지정하여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순간 또 아이들 얼굴이 떠 올랐다. '무엇을 어떻게 말하면 좋을까' 하는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 찼다.

평소 '애국' 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기 조차 민망한 참으로 무심한 필자다.

그런데 요즘 김 구 선생님의 얼굴이 담긴 열쇠고리를 만질 때와 코리아타운 가는 길에 서있는 'Dosan Ahn Chang Ho Memorial Interchange' 라는 팻말을 바라보는 시선이 예전과는 사뭇 다른 것은 웬일인지 모르겠다.



신문발행일 :2006. 05.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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