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희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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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날아간 꽃향기

2003.10.19 14:12

오연희 조회 수:383 추천:54

날아간 꽃향기
오연희


지난달 어느 토요일 몬트레이 팍에 있는 한 레스토랑에서 먼 친척 조카의 결혼식 리셉션이 있었다. LA에선 드물게 많은 비가 내린 그날, 남편과 나는 빗속을 드라이브해서 간신히 약속 시간에 맞춰 리셉션장에 도착했다. 입구는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붐비고 있어서 어디가 어딘지 두리번거리고 있으려니 누구누구의 결혼식 리셉션 손님들은 오른쪽 코너에 있는 홀으로 들어오라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방송을 듣고 들어가는 행렬을 따라서 리셉션 장에 들어섰더니 이미 많은 분들이 오셔서 서로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하지만 그날따라 유난히 내 눈에 크게 들어오는 것은 테이블마다 놓인 앙증스러운 화병에 소담스럽게 꽂혀있는 꽃송이들이었다.

테이블마다 놓인 꽃들이 내 눈길을 끈 것은 얼마 전 처음으로 가본 문학토방에서 어느 수필가가 발표한 글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결혼 리셉션장에서 있었던 화병에 얽힌 사연이었는데 여자의 심리를 어찌나 재미나게 표현 했던지 나도 그랬지만 참석한 다른 분들도 참으로 공감이 간다고 입을 모았던 그런 작품이었다.

꽃을 갖고 싶은 욕심을 마음에 품었을 때는 마음도 편치 않고 꽃도 자기 몫이 되지 않더니 마음을 비웠더니 테이블 위의 꽃다발이 자신에게로 굴러들어오더라는 행복한 웃음이 배시시 나오는 그런 내용의 글이었다. 행사장안의 테이블 위에 놓인 꽃들을 한번 휘익 둘러 보면서 잠시 그 수필가 생각에 젖어있었다.

그때, 오늘의 주인공인 신랑각시가 궁중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행복에 겨운 표정으로 앞쪽 중앙에 자리를 잡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신랑각시의 나이가 마흔 넘었다는 사실과, 신랑이 중국에서 고등학교 영어선생님을 했다는 것, 신랑이 신부 따라 미국에서 살게 되었다는 것 등등 그리 평범한 결혼은 아니지만 아주 아름다운 한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랑신부가 자리를 잡고 나니 익살스럽고 재치가 넘치는 사회자가 나와서 손님들 소개를 시작 했다. 형부가 장군출신 이어서 인지 군장성 출신들이 많이 왔다. 이어지는 손님들 소개를 들어보니 형부나 언니의 명성만큼이나 쟁쟁한 분들이 오신 것 같았다. 솔직히 난 그런 분들의 명성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시간보다 행사가 늦어지는 바람에 배가 고파서 어서 먹을 거나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대충 소개가 끝났는지 맛깔스럽고도 풍성한 요리가 줄줄이 나왔다. 헐래벌덕 먹다가 둘러보니 나이든 신랑각시가 함빡 웃음을 흘리며 테이블마다 인사를 하러 다녔다. 언니는 손님들에게 일일이 참석해 주신 것에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자신의 딸, 사위와 초청손님들이 함께하는 기념사진을 찍어주기에 바빴다. 우리 차례가 되자 언니는 나와 남편 그리고 자신의 사위와 딸을 함께 세워 사진을 찍었다. 사진 나오면 한국에 사시는 나의 부모님께 보내주라는 부탁을 하시면서 신이난 표정으로 셔터를 누르셨다.

그런데 언니는 다음 테이블로 가기 전에 나에게 살짝 오셔서 우리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꽃을 나보고 가져가라면서 꼭 그렇게 하라고 당부를 하셨다. 내가 앉은 테이블엔 곧 결혼할 젊은이 한 쌍과 그 젊은 남녀의 양쪽 부모님들, 그리고 어린 아들과 함께 있는 먼 친척 뻘 된다는 부부가 앉아 있었다. 난 언니의 그 당부가 참으로 고마우면서도 테이블에 함께한 분들의 눈치가 슬쩍 보여서 마음이 그리 편치가 않았다. 언니가 나를 지명해서 가져가라고 했지만 함께 있는 분들이 그 사실을 모르고 있는 형편이니 내가 가져간다는 것이 영 찜찜했다.

그런데 가만히 꽃을 보니 참 예쁘다. 아무래도 문학토방에서 그 수필가가 차지 했다던 그 꽃다발 보다 더 탐스러운 게 틀림없을 것 같았다.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보니 아주 깊고도 은은한 향기가 퍼져 나오고 있었다. 남편 사무실 책상에 올려놓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슬며시 욕심이 생긴다. 주인장이 허락했는데 당당하게 가져가도 누가 뭐라겠냐는 맘이 더욱 커진다.

그럭저럭 식사시간이 끝나고 돌아갈 시간이다. 난 슬쩍 내 테이블의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저 꽃을 곧 결혼할 한 쌍에게 줄까? ‘곧 결혼할 텐데.. 축하해요.. 이 꽃 가져가세요!’ 방긋이 웃으면서 이렇게 이야기를 꺼낼까? 아님 먼 친척 뻘 된다는 애기 엄마한테 가져가라고 할까?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가져가야겠다는 생각이 굳어질수록 마음은 더 괴로워졌다.

아니야! 언니가 나에게 주고 싶었던 거야! 난 그 한마디만 억지로 핑계하고는 화병을 쓱 집어 들었다. 얼굴이 따갑다. 그냥 둘걸.. 아니…이미 집어 들었는데..늦었잖아..!! 두근거리는 가슴을 콱콱 누르면서 화병을 두 손에 꼭 껴안고 기세 좋게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나오다가 생각해보니 형부랑 언니한테 간다고 인사를 못했다. 다시 들어가 휘익 둘러보니 두 분께선 다른 사람들과 작별인사를 나누느라 정신이 없는 것 같았다. 잠시 기다리고 있다가 간신히 언니랑 눈이 마주쳐 다시 한번 축하한다며 손이라도 잡으려고 다가갔다. 그런데 아무래도 손에 들고 있는 화병이 신경이 쓰였다. 그래서 화병을 나가는 출구와 가까운 테이블 위에 잠시 올려놓았다.

언니는 비도 오는데 먼 길 와줘서 고맙다며 내 손을 꼭 잡았다. 그리고 “잊지 말고 꽃 가져가!” 다시 당부를 했다. 난 언니의 그 당부에 더 홀가분한 기분을 느끼며 잠시 꽃을 올려 논 그 테이블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말이다! 그런데.. 그새! 그새! 꽃이 없어졌다. 으앙!.!!~~~ 난 몰라! 어디간 거야 도대체…방금 여기다 뒀는데…

그렇게 되었다.

허탈한 가슴 쓸어 내리며 리셉션장을 빠져나오니 여전히 억수 같은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처음 리셉션 장에 들어섰을 때 눈에 화악 들어오던 탐스런 꽃송이 위에, 테이블에 함께했던 결혼을 앞둔 그 젊은 한 쌍의 얼굴이 오버랩 되어 떠오른다.

인심이나 쓰고 올 껄…………………


2003년 동인지 "글마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