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희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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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미국은 소송의 천국

2004.11.08 12:05

오연희 조회 수:456 추천:68

가끔 매스컴을 통해서 누가 누구를 소송(Sue) 했다는 말을 들으면 그들의 인간관계도 돌이킬 수 없겠구나 싶은 생각에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소송을 하겠다는 말로 협박을 하거나 실제로 소송까지 간 사이라면 다시는 서로 웃는 낯으로 얼굴
을 대하기란 쉽지 않을 것 같다.

마음이 상해 서로 낮 붉히며 싸우기도 하지만 마음을 돌이켜 화해도 해가면서 미운정 고운정 쌓아가는 것이 한국적인 인간관계의 특징이라고 생각 했었다.

소송이라는 것은 최악의 상황이나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미국이라는 나라는 소송의 천국이라는 말이 실감이 날 정도로 소송이 일반화 내지는 일상화 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필자의 아들이 중학교 다닐 때 스쿨 오케스트라 멤버로 바이올린을 하고 있었다.

쉬는 시간에 멤버 중 한 백인친구가 바이올린 활을 교실 바닥에 길게 내밀고 있다가 그곳을 지나가던 필자의 아들이 그 활에 걸려 넘어지면서 활이 그만 부러지고 말았다.

조금 찜찜하긴 했지만 그 백인 친구가 별로 괘념치 않더라고 아들이 말해 주었기 때문에 좀 더 지켜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며칠 후 하나의 메일이 집으로 날아들었다. 그 바이올린의 활 값은 250달러 이니 물어내라는 그 백인아이 어머니로 부터의 편지였다. 이틀 후 다시 온 메일에는 만일 물어내지 않으면 소송을 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바이올린 활이 부러질 때 그 교실에 있었다는 오케스트라 디렉터의 사인과 그리고 그 활의 가격을 조사한 악기사의 사인이 들어 있었다.

놀라서 악기사에 가서 그 활의 가격을 알아 보았더니 그 활의 신품 가격이 250달러라는 것이다.

아들 말로는 그 백인친구 활은 너무도 낡은 것이라고 했지만 그것은 어떤 이유도 되지 못했다. 너무도 황당했지만 이것은 갑자기 일어난 교통사고처럼 하나의 사고 라며 아무 소리말고 지불하라던 그당시 한국에 있던 남편의 말에 고스란히 물어 주었다.

나중에서야 바이올린 활은 낡아도 값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어쨋든 바가지를 쓴 기분을 벗어나는데 한참이 걸렸다.

우리와 다르다는 것이 잘못됐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다름'에 대한 경험은 이국땅에 사는 1세 부모들에겐 늘 충격으로 다가온다. 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가까운 해결책으로 법에 호소하는 이들의 정서에 섬뜩한 기분이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교통사고나 또는 재산문제 등으로 인한 도저히 일반 상식선 에선 해결되지 않는 심각한 문제는 법정까지 가야겠지만 법정에서 얼굴을 맞대고 싸워야 하는 경우엔 문제가 해결되었다 하더라도 그 뒤에 남게 되는 손상된 인간관계는 법이 결코 해결해 줄수 없을 것같다. 평소 가깝게 지낸 사이라면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필자도 처음 그런 일을 당한 바라 그 백인친구와 그 아이의 엄마 그리고 사인을 해준 그 디렉터에게 어쩐지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그 사건 후에도 변함없이 절친하게 지내는 필자의 아들과 그 백인아이 그리고 여전히 다정하게 대해주는 디렉터를 보면서 혹 고소와 관련되는 경우가 닥쳐도 허둥대거나 쭈볏거리지 말고 신속히 대처하되 다른 문제와 연결지어 그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은 소송의 천국이라는 말의 의미를 조금 알게 되긴했지만 우리의 작은 경험으로 모두를 판단하기엔 이르다.

우리가 흉내도 내기힘든 진정한 인간사랑을 실천하는 이들이 참으로 많다는 사실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소소해 보이는 사건들을 통해서 우리의 자녀들은 미국의 문화나 정서를 은연중에 익혀나간다. 우리의 기준으로 보면 절대 쉽지 않은 이들의 양면성이지만 그 룰속에 들어있는 긍정적인 측면을 제대로 터득해 나가는 우리 자녀들이 되면 좋겠다.





ohyeonhee@hotmail.com

신문발행일;2004년 11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