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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담배피는 여자에 대한 편견

2006.06.20 04:02

오연희 조회 수:1252 추천:192

5년 전 필자의 가족이 LA로 이사와 렌트 집에서 2년을 살았다. 집 주인은 한 울타리 안에 네 채의 집을 지어서 그 렌트비로 생활을 꾸려가는 전형적인 백인 노부부였다. 필자의 집 옆집에 사는 아줌마는 수시로 앞쪽 베란다에 나와서 담배를 피웠다.

하늘을 향해 천천히 연기를 내뿜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슬쩍슬쩍 훔쳐보며 여러가지 생각에 젖곤 했다. 큰 트럭이나 대형버스를 몰고 다니는 씩씩한 미국 여자들을 종종 봐 왔기 때문인지 담배를 피우는 것도 씩씩함의 연장선 쯤으로 생각 되었다.

그러나 뭔가 다른 부류의 사람처럼 느껴져 가까이 하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얼마 후 그 옆집 아줌마가 아주 오랫동안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중증 장애자인 친척을 돌보며 살아간다는 사연을 주인 할아버지로부터 전해 들었다.

옆집을 바라보는 내 눈빛이 달라졌다. 장애인이라는 친척도 궁금했지만 담배를 피우는 그녀의 심정을 헤아리려 드는 내 마음의 변화였다.

장애인을 돌본다고 해서 담배를 피워도 좋募?건 아니지만 난 그녀의 아픔이 담배연기를 타고 멀리 멀리 사라져 가는 느낌을 받았다. 그녀와 가까워지고 싶었다. 죽이라도 끊여서 언제 한번 들여다봐야지 생각만 하다가 용기를 내지 못하고 그 집을 떠나왔다.

이처럼 같은 행동이라도 그 사정을 알면 보는 시각이 달라질 때가 있다.

지난해 말 코리아타운에 나갔다가 제과점을 들리게 되었다. 그런데 제과점 한구석에 스물 안밖으로 보이는 한국 여자들이 주위의 시선에 개념치 않고 담배를 피우며 수다를 떨고 있었다.

화장을 짙게 한 것으로 봐서 학생들 같지는 않았지만 너무 애 띤 모습 때문인지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옆에 앉았던 이웃 분이 담배 피우는 것 처음 보냐면서 허리를 꾹 찔렀다.

필자가 좀 촌스러운 건지는 모르지만 담배 피는 어린 여자들을 보면 마음이 아리해 진다.

곳곳마다 벗꽃이 눈부시던 지난 3월 어느 일요일 오후 이웃동네에 있는 스타벅스 앞에 차를 파킹 해 놓고 안에서 손님을 만나고 있는 남편이 나올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창문을 반쯤 내리고 의자를 뒤로 약간 빼서 자리를 넓혔다. 다리를 편안하게 뻗고 책을 펼치려는 순간 신경질 섞인 고함 소리가 차창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자리에서 그때의 상황을 쓴 필자의 졸시 이다.



스무 살 안팎으로 보이는

한 머스매와 가시내가

스타박스 파킹장에 서서

다투고 있다



가시내는

눈을 내리깔고

담배를 빠꼼빠꼼 피워대고

앞머리 바짝 세운

머스매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맑은 하늘과

봉글봉글한 벗꽃과

달콤한 커피향이 어우러진

봄 봄인데



혼란의 계절 어디쯤

서성이는지

싱싱한 젊음아

이 땅 떠날 날 머지 않은

늙음을 보는 것 보다

더 가슴이

탄다



그 나이에 그런 공공장소에서 그런 모습으로 있는 한국 아이들 필자의 편견인지는 모르지만 그날 그 여자아이가 담배만 피우지 않았다면 그 아이들을 바라보는 필자의 시각이 조금은 달랐을 것 같다. 서로 사귀다가 다툴 수도 있는 일이라 여길 수 있었을 것이다.

담배 정도 가지고 뭘 그렇게 호들갑이냐고 담배 피우는 모범생도 얼마든지 있다고 반문 한다면 가장 적절한 답은 무엇일까? 장애자인 친척을 돌보던 그 옆집 아줌마처럼 사정을 알면 필자의 시각이 달라 졌을까?

시시각각 변하는 세월의 흐름에 부모의 시각을 교정해야 할 일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겉으로는 너그러운 척 해도 마음이 안될 때가 참 많다.

우리 아이들은 어떨까? 부모가 모르는 많은 이야기들을 안고 살아 갈 것이다. 눈에 보이는 순간은 잠깐이고 그 외의 시간은 부모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그들만의 세계를 만들어 가고 있을 것이다. 부모의 시야를 벗어난 우리 아이들의 모든 순간을 위하여 간절한 마음으로 두 손 모을 수밖에 그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신문발행일 :2006. 06.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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