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희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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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Re..사랑의 묘약

2004.05.31 05:13

오연희 조회 수:666 추천:55



살다보면 말이 많아도 돌아서면 허전한 사람도 있고

한마디만 들어도 가슴이 통하는 사람이 있다.

이곳 저곳 해외생활을 하다가 잠시잠깐 만난 인연들이었건만

늘 염려해주고 위로가 되어주고 기도해주고 싶은이가 있다.

그런이들과는 거리가 사이를 멀게 해주는것이 아니라

더 깊은 교류가 은연중에 흐름을 서로 느낄수 있다.

이땅에서 다시 얼굴을 보지 못할지라도 우린 늘 만난다.

생각안에서...

살아가는 기쁨중에 가장 큰것 중에 하나다.

나를 아는 그리고 내가 아는 그분들께 늘 감사를 드리는 마음으로...



-오연희-




((국제결혼에 대하여))

저의 어린시절..서양남자와 나란히 걸어가는 머리긴 한국여자를 처음보았을때의 기분은 참으로 묘했습니다.

한국인인 그녀와 그코쟁이 남자의 쾌쾌하면서도 끈적해보이는 관계가 유쾌하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아마도..어른들이 하는말뜻을 그때 이미 알았었던 모양입니다.

양공주라고...

10년전 저의 남편은 먼저 상사 주재원으로 미국에 들어오고 가족은 몇달후에 오게 되었지요.

미국 들어갈때를 기다리는 동안 잠깐 동네에 있는 영어학원을 다니게 되었습니다. 학원이 원장 이름을 따서 김윤희 영어학원이었지요.

그녀! 김윤희를 잊지 못하는 몇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윤희를 영어로 UNI 라고 했습니다.

제 이름은 연희인데 어떻게 하면 저렇게 기억하기 쉬운 스펠링을 사용할수 있을까...윤희는 저렇게 쉬운데 연희는 YEON HEE 이렇게 스펠링수가 많다니.....제 이름이 윤희가 아닌것이 얼마나 아쉬웠던지....

두번째는 그녀가 중소도시였던 제가 살았던 곳에 몇안되는 의사중의 한명인 능력있는 아버지를 두고 있었고 (저는...능력하고는 담쌓은 꽃집 셋째딸이었거던요.)
..그때 그녀는 이미 미국유학을 가서 공부를 끝내고 제가 살던곳의 지방공대에서 교양과목을 가르치는 선생님인데...어쨋던 이름은 교수였거던요.

세번째...이것이 가장 그녀를 잊지 못하게 하는일인데...그녀가 미국에서 유학할때 만난 서양남자(독인인이라고 들었음.)랑 결혼해서 아들도 하나 있다고 했습니다.

더 놀라운것은 그녀가 그 서양남자랑 이혼하고 그때 그 지방대학에 함께 교수로 있는 한국남자랑 재혼도 했더라구요.

서양남자랑 사는 여자는 양공주! 였던 나의 생각을 완전히 뒤엎어 버린 사건이었습니다.

서양남자랑 사는여자의 부류가 다양하다는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전...그 코쟁이 나라...미국을 왔구요.


제가 처음 미국와서 살았던 작은 도시 근처에 군부대가 있었답니다.

그러다보니 미군과 결혼한 한국여자들이 제법 많았지요. 외국인 은행이나 미군크럽에 다니다가 미군으로 나와있는 서양남자 만나 결혼한 경우도 있지만..대부분이 그렇고 그런곳에 있다가 만난 경우라고 어느분이 슬쩍 말해주었어요.

전...그들부부의 만남이 어떻든 국제결혼한 여자분들과 참 친하게 지냈습니다.
십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친분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어떤분들은 그런분들을 눈아래로 내려다보는 경우도 있지만...
제 생각은..달랐습니다.

창녀인 마리아를 예수님이 용서하신... 그리 거창한
이유는 아니구요..

첨에 미군인 남편따라 군부대안에서 살림을 했는데 허구헌날 담배피고 모여서 화토나 치면서 시간을 보냈다고...

그러다가...우연히 믿음을 갖게 되었고....그리고 지금..이렇게 반듯한 삶을 살게 되었다고..너무 감사하다고...고백하는 그녀들에게 누가 돌을 던질수 있겠습니까?

사실..그녀들보다 더좋은 환경에서 성장했던 많은 여자들...정말...그녀들보다 순결한 삶을 사셨나요?

자신들의 이야기는 러브스토리고 다른사람의 것은 추문정도로 취급해 버리는 경우는 없었나요?

전...한국인 아내를 귀하게 생각하고 아내의 친정엄마까지 모시고 살면서..불평이라곤 해본적이 없는 몇명의 성실한 미국인 남편을 알고 있습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가슴아픈 경우도 많이 보았구요.

언어가 잘 안통하는 문제는 살다보면 해결이 되는거아닐까요?..사실..언어가 문제라면 말이 너무 잘통하는 한국인 끼리의 이혼율이 점점 높아지는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되나요?

국제결혼은 그냥 인간대 인간의 만남이지..
(사실...국제결혼이라는 말은 오직 한국에만 있다고 하더군요. 그럼 한국인끼리의 만남은 국내결혼인가요?) 그리 특별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는것 같아요.

요즘은 국제결혼을 선호하는 경향도 있는데..
그것도 바람직하다곤 보지 않아요.
그냥...,feel이 통하는 사람과의 만남이지..
뭘그리 코쟁이 안코쟁이 구분할거 없잖아요?

배우자의 가족과 잘 융화하고자 하는 지극한 노력과 사랑이 있으면 궂이 한국배우자만 고집할 필요는 없을것 같아요.

제가 아들 딸에게 이런 제 생각을 슬쩍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근데...자기들은 꼬오옥^^ 한국인과 결혼할거라네요.

나참!...멍석펴주면 원래 하던 (??)도 안한다더니...


((죽지말까요?))


흔히 말하는 불치의 병을 얻었을때 ...인간의 반응에 대해서 누군가 말해준것이 기억납니다...

1. 설마 내가...아닐꺼야..사실을 부정하고 싶어 한답니다.
2. 왜 하필 내가..........분노에 휩싸입니다.
3. 하지만 몇년만 더 시간을 주십시요. 할일이 있습니다....타협한다고 합니다.
4. 이젠 죽게된것을 알겠습니다....수용한다고 합니다.
5. 마지막으로 마음의 평안을 얻고 마무리 준비를 한다고 했습니다.....

가끔은 분노에 휩싸이기도 하시고 또 가끔은 수용하시는 모습도 보이시던 오십대초반의 오빠가 암으로 이땅을 떠나신지 오늘이 백일 되는날 입니다.

백일....아기가 태어나서 맞는 백일만 생각했지..
사람이 죽고 나서의 백일을 생각해본적이 없었습니다.

올케가 음식을 준비했으니 추모식을 갖자고 해서 함께 오빠를 생각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저에게 올 3월 4월 5월은 제 인생의 가장 아프고 다양한 죽음후의 일들을 경험한 시간이었습니다.

3월1일 은 오빠가 이땅을 떠나셨고... 카톨릭식으로 장례를 치루었습니다.

4월엔 가까이 사는 사촌여동생의 시아버님이 돌아가셨고....기독교식으로 장례를 치뤘습니다.

5월엔 서울의 시아버님이 돌아가셨고...불교식으로 장례를 치뤘습니다.

전...카톨릭, 기독교, 불교식의 장례절차들을 아주 가까이서 지켜볼수 있었습니다.

관념속에서만 머물던 죽음이 삶과 너무도 가까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된....
원치 않았지만...갑자기..저 자신이 커버린듯한 착각에 빠져 있습니다.

오늘 바닷가를 거닐었습니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갑자기..백년전에 이곳에서 오늘처럼 즐겁게 놀고 있었던 사람들이 보이는듯 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어디 있을까요?

백년후 지금 이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어디로 가버릴까요?

죽지 말까요? 우리.....

((미국촌놈이...))
오늘은 일요일입니다.
충주에 사는 여동생집에서 온가족이 모였습니다.
부모님 언니가족 동생가족과 함께 모인게 거의 6년만인거 같습니다.

시아버님 장례때문에 오긴했지만 워낙 연로하신 분(1909년생이심..한국나이로 94세가 되네요.)이 돌아가신지라..시댁식구들도 좀 아쉬운정도지..그리 애통해하는분은 없는듯이 보였습니다.

슬하에 아들딸이 7명 손자손녀가 16명 증손자손녀가 10명이고....그기다가 이렇게 좋은 봄날 극락(아버님이 불교이심)으로 가셨으니..복이 많은 분이시라며..

자손들이 모여서 하는말이 드디어 1막1장이 끝났다며 우스게 소리를 하는 여유까지 있었습니다.

장례식도 모두 마치고 시댁식구들 모두모여 얼마되지않지만 재산정리도 끝내고 홀가분하게 친정식구들과 갖는 정말 즐거운 시간입니다.

아침을 먹고는 가족모두 동생집에서 그리멀지않는 수안보 온천장으로 갔습니다.
수안보파크호텔내에 있는 온천장은 탕안이 온통 유리로 둘러싸져 있는데 탕안에 앉아서 그멋진 전망을 감상할수 있게 설계되어 있는 아름다운곳 이었습니다.

정말 십년묵은 때를 이태리타올로 빡빡문질러 내는데...엄마가..내가 등밀어줄께 하시며 다가오셨습니다.
손목발목이 약하신 엄마가 딸등이 밀고 싶다며..오셔선 신나게 못다한 수다를떠셨습니다.

엄마...한달에 한번하나..10년에한번하나 때가 쌓이는 량은 같은가봐...등에 때가 그리 많지 않지?
했더니...
야..이눔아..이 때좀봐라....디글디글...덩어리 채로 나온다..하시며 때를 모아선 눈앞에 보여주셨습니다.
나는..헤헤...된장한번 끊여먹으면 되겠네..하면서 낄낄댔습니다.

요즘은 한국목욕탕엔 등미는 기계가 있다고 합니다.
형부는 등미는 기계로 본전 뺄려고 앞가슴도 들이댓다가 젖꼭지가 걸려서 혼났다는 이야기를 하며 키득거렸습니다.

정말...오늘은 겁날게 없는 날입니다.

목욕이 끝나고 수안보호텔안에 있는 한국도자기 전시 판매장에 가서 기념품도 사고 내려오는길에 포장마차가 늘어선 한 식당으로 들어갔습니다.

막걸리를 세댓박 시키고 김치 두부 묵을 시켜서 안주를 했습니다.

인삼막걸리맛에 전..정말 삐용^^ 갔습니다.

주거니 받거니...하다가 4잔을 마시곤 그만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부축하고..킥킥대고..난리가 난거지요.에구..^^

가족과 함께 있다고 겁날것 없이 굴다가...정도를 넘쳤나봅니다.
두통이 심하고 속이 부대껴서 점심저녁 모두 굶어야만 했습니다.

오씨집안 후손이 이리 술에 약하다니...
죄송합니당! 조상님....헤헤...
200년 5월 26일

신춘문예 그 허(虛)와 실(實)


폐(廢)타이어(200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김종현


아파트 공터 한 귀퉁이
속도를 잊은 폐타이어
땅속에 반쯤 묻힌 깊은 침묵 속
햇빛을 둥글게 가두어 놓고
동그랗게 누워 있다

그가 그냥 바퀴였을 때는 단지
속도를 섬기는 한 마리 검은 노예일 뿐이었다
날마다 속도에 사육되고
길들어 갔다
다른 속도가 그를 앞질러 갈 때
그는 바르르 떨며
가속 결의를 다져야 했다
자주 바뀌는 공중의 표정 앞에서는
잽싸게 꼬리를 사려야 했다
검고 딱딱한 세계 위에서 세월을 소모하며
제한된 영역만 누려야 했다

지금 저 동그라미는 자신의 일생이
얼마나 속도에 짓눌려 왔는지 기억하고 있을까
튕겨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쯤은 했으리라
예약된 모든 속도들 다 빠져나가고
속도는 한 줌 모래처럼 눈부신 한계였을 뿐
얼마나 어지러웠을까
속도에서 벗어나기 위해 속도에 매달린 세월

그가 속도의 덫에서 풀려나던 날
온몸이 닳도록 달려온 일생을 위로하듯
바람은 그의 몸을 부드럽게 핥아주었다
잠시 뒤의 어떤 바람은 풀씨랑 꽃씨를
데리고 와서 놀아주었다
벌레들의 따뜻한 집이 되었다
잃어버린 속도의 기억 한가운데
초록의 꿈들이 자란다
노란 달맞이꽃은 왕관처럼 환히 피어 있다


---



폐차장 근처 (서울신문1997 신춘문예 당선작)

박남희

이곳에 있는 바퀴들은 이미 속도를 잃었다.
나는 이곳에서 비로소 자유롭다.
나를 속박하던 이름도 광택도
이곳에는 없다.
졸리워도 눈감을 수 없었던 내 눈꺼풀
지금 내 눈꺼풀은
꿈꾸기 위해 있다.
나는 비로소 지상의 화려한 불을 끄고
내 옆의 해바라기는
꿈같은 지하의 불을 길어 올린다.
비로소 자유로운 내 오장육부
내 육체 위에 풀들이 자란다.
내 육체가 키우는 풀들은
내가 꿈꾸는 공기의 질량만큼 풍성하다.
풀들은 말이 없다.
말없음의 풀들 위에서
풀벌레들이 운다.
풀벌레들은 울면서
내가 떠나온 도시의 소음과 무작정의 질주를
하나씩 지운다
이제 내 속의 공기는 자유롭다
그 공기 속의 내 꿈도 자유롭다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은 저 흙들처럼
죽음은 결국
또 다른 삶을 기약하는 것이지도 모른다
나는 이곳에서 모처럼 맑은 햇살에게 인사한다
햇살은 나에게
세상의 어떤 무게도 짐 지우지 않고
바람은 내 속에
절망하지 않는 새로운 씨앗을 묻는다


박남희 시인 약력

경기 고양 출생
숭실대 국문과 졸업
고려대 대학원 국문과 졸업(석사)
고려대 대학원 국문과 박사과정 수료
1996년 경인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9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고려대, 숭실대 강사
일산 문학학교 시 창작반 강사
시나라. 행시. 시산맥 동인
시집: 『폐차장 근처』(현대시,1999/문학과 경계,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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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키언니...
아래 2004년 신춘문예 작품 올려놓은것 보고 나니
생각이 나서 리플을 달려고 했더니 안돼네요.
요즘 한국에선 폐(廢)타이어(200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김종현 의 작품이 표절 시비에
걸려서 좀 시끄러웠던 모양이에요
일반 문예지 심사가 아니라 최고의 문인 양성을 자랑하는
신춘문예라는 점에서
창작을 모토로 하는 신춘문예가 모방의 발상을 막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심사위원들은 역대 신춘문예 글은
한번쯤은 읽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점에서 말이 많은 모양이에요.
당황한 심사위원들이 재심을 한 뒤에 표절이 아니라는
결과를 발표했지만 받아들이는 독자들이나 작가들이나
모두 찜찜하다고 하네요.
시어(詩語)를 보면 표절 같지는 않은데 읽고 난 느낌이 별로
유쾌하지 않다고도 하고...
제 경험으로는 사실 초보자는 다른사람의 발상을 모방하는
경우가 있다고 생각해요. 모방으로 시작했다가 차츰
자기만의 독창성을 찾아가는것 같거던요.
사실 전 어떤 소재로 글을 하나 써고 싶다는 생각을
한적이 있거던요.
그런데 다른분이 바로 제가 생각하고 있었던
그 소재로 글을 썼더라구요.
정말 아쉽고 고민이 돼더라구요.
잘못하면 같은 발상의 모방이 될 염려가 있거던요.
어쨋든 신춘문예라는 권위를 생각하면 아무래도
좀 찜찜하긴 할것 같아요. 그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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