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희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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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기러기 가족

2004.08.09 09:27

오연희 조회 수:426 추천:62


기러기는 암컷을 잃어도 혼자 새끼를 키우는 습성이 있어서인지, 예전엔 ‘기러기 아빠’라는 말이 ‘편부가정’을 일컫는 용어로 사용되곤 했다.

그런데 요즘은 아내를 딸려서 자녀들을 유학보내고 홀로 자취생활을 하는 아빠를 흔히 ‘기러기 아빠
’라고 부른다. 물론 자녀 유학 외에도 기러기 가족이 된 사연은 참으로 다양하다.

사연이 어찌되었든 “기러기 아빠” 혹은 “기러기 가족” 이라는 말을 들으면 저 가정도 극복해야할 어려움이 참 많겠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가슴 아련한 그 시절로 돌아가게 된다. 8년여전 필자의 가족 역시 기러기 가족으로 3년을 보낸적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과는 상황이 많이 다르긴 했지만 그당시도 기러기 가족의 아픈 사연이 종종 들려왔다. 남편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녀 유학을 위해 미국으로 온 어느 어머니의 기막힌 사연이 여자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기러기 아빠로 혼자 한국에 남은 남편이 젊은 여인과 사랑에 빠져 아내가 한국에 들어오는 것을 원치 않고 있으며, 그렇게 된 모든 원인 제공자는 아내라고 했다는 것이다.

부부가 더 중요하니 떠나지 말고 한국에서 견디어 보자고 사정하는 남편을 뿌리치고, 자녀 교육을 위해 과감하게 미국행을 선택한 엄마의 기구한 사연이 다른 기러기 가족의 마음을 울적하게 했다.

이런 불행한 사연에도 불구하고 그 후로도 기러기 가족의 수는 나날이 증가하는 추세다. 최근 필자의 주위에도 자녀 유학을 위해 한 기러기 가족이 날아왔다.

그들은 참으로 표정이 밝고 희망에 차있다. 아이들은 영어를 잘 몰라도 학교 생활이 너무 재미 있다고 하고 엄마는 어덜트 스쿨과 칼리지에서 영어도 배우며 아이들의 뒷바라지에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이런 경우는 한국에 남은 기러기 아빠의 희생 아래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이 없이, 미국에 입국한 지 몇년 되지 않았을 때의 얘기다.

그렇게 몇년 세월이 흐르면 상황이 조금씩 변하기도 하고, 막연한 두려움과 불안이 슬슬 밀려오기도 한다.

그러나 무슨일이든지 부정적인 측면이 있으면 긍정적인 측면 역시 있음을 믿고 기러기 가족으로 지내는 기간을 정말 소중하게 가꾸어 보면 어떨까 싶다.

몸은 떨어져 있으나 가정은 더욱 하나로 꽁꽁 뭉치는 계기로 삼아 보는 것이다. 요즘은 인터넷의 발달으로 마음만 먹으면 함께 살때 못지 않게 알콩달콩한 가족애를 엮어 갈수도 있기 때문이다.

필자의 기러기가족 생활중에 가장 큰 어려움은 역시 아빠의 빈자리였다.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을 혼자 감당하기가 벅찰 때도 있었고, 영어와 한국어의 묘한 뉘앙스 차이로 인해서 대화 도중 오해가 빚어지는 일도 발생했다.

거의 매일 전화와 팩스로 서로의 생활을 알려주어 급박한 일이 벌어지면 한국에 있는 아빠가 즉시 개입하여 해결하기도 하면서 어려움을 극복해 나갔다.

어려움을 잘 극복했을때 느끼는 가족의 의미는 헤어져 있음으로써 더욱 절실하고 소중하게 느끼기 마련인가보다.

비록 아빠가 모든것을 다 해결해 주지는 못하지만 사소한 일도 아빠가 참여 하도록 유도해야 하는것이 엄마의 역할임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지금 기러기 가족으로 지내는 분들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자녀들과 함께 보내는 시기가 그리 길지 않다.

자녀들의 교육엔 시기가 있기에 힘든 결정을 내리긴 했지만, 자녀들이 훌쩍 자라 그들의 길을 가버리고 나면 특별한 경우가 아닌한 남편은 남은 인생을 함께 걸어야 할 사람이다.

인생의 황금기로 불리는 40대에 헤어져 사는 일이 참으로 안타깝지만 기왕 가야 될 길이라면 먼훗날 “ 힘들었지만 참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고 추억할수 있는 시기로 만들어 가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ohyeonhee@hotmail.com

입력시간 :2004. 08. 06   16: 01  
2004년 8월 9일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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