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희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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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싸운만큼 성숙해 지기

2004.02.18 04:23

오연희 조회 수:299 추천:55

십 수년 전 한국에선 인구증가를 막기 위해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캠페인과 함께 세 번째 자녀부터는 의료보험 혜택을 주지 않았던 적이 있었다. 물론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사람도 있었고, 아들을 낳겠다는 일념으로 여러 명의 자녀를 낳는 가정도 더러는 있었지만, 교육비가 만만찮게 드는 한국상황에서 노후대책도 서서히 생각해야 된다는 부모들의 자각이 일면서 둘 이상 자녀를 두는 가정이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자녀가 하나인 것 보다는 둘 이상인 가정의 분위기가 훨씬 활기를 띠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자녀라 할지라도 그 성품은 각각이라 서로 마음을 맞추며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형제 자매가 많은 가정에서 자란 자녀들이 두리뭉실하니 성품이 더 원만하다는 말들을 하지만 부모나 자녀 모두 많은 갈등의 순간들을 견뎌낸 후에 얻어지는 결과인지도 모른다.

서로 위해주고 의지하며 의좋게 지내는 자녀를 둔 부모님들은 얼마나 편안할까 눈만 마주치면 서로 싸우는 자녀를 둔 부모님들의 마음은 얼마나 속상할까

남의 자녀 이야기까지 갈 것도 없이 필자 자신도 부모님 속을 엄청 속상하게 만들며 성장한 못된 딸이다. 두 살 터울의 언니와 눈을 뜨는 순간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여차하면 싸웠다 .

그나마 언니는 동생이라 사정을 봐주는 때도 있었는데 동생인 필자는 사정없이 달려들어 언니를 못살게 굴었다. 아래 여동생 둘도 역시 엄청 티격태격 싸우면서 컸다.

그런데 모두 결혼한 지금, 희한하게도 그렇게 싸우던 언니와 나, 그리고 두 여동생들이 싸운 양만큼 서로의 어려움을 편안하게 털어놓는 가장 가까운 상대가 되어있다.

얼마 전 연말연시에 필자의 가족들은 10년 전에 가본 가족여행 코스를 다시 한번 둘러보게 되었다. 그 당시 초등학교 저학년생이던 두 살 터울의 필자의 딸과 아들이 차 뒷좌석에서 어찌나 투닥거리며 싸우던지 화가 나서 둘이서 실컷 싸워보라며 중간에 떨어뜨려 놓았다.

물론 걱정이 돼서 조금 가다가 되돌아 와 데리고 갔었지만 싸우거나 자는 것 외에는 할 줄 모르는 정말 걱정되는 아이들이었다. 그러던 녀석들이 이젠 창밖에 펼쳐진 경치를 보며 감탄하기도 하고, 조용히 카드놀이를 하다가 무릎에 동생을 누이고는 토닥거려주는 모습이라니…

한 부모의 자녀로 태어나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10년이라면 그리 긴 세월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니 웃음이 나왔다.

세월이 흐른 후에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현재 아이들이 너무 심하게 싸워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어머님들의 하소연을 종종 듣는다. 싸우는 꼴을 그냥 두자니 짜증스럽고, 부모가 자녀의 싸움에 잘못 개입하면 동생만 혹은 형만 좋아한다는 불평이 쏟아져 나온다.

싸우기만 하면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아들 둘에게 동시에 중한 벌을 내렸더니 싸우다가도 엄마가 오는 낌새가 보이면 서로 눈짓을 해가면서 싸움을 딱 멈추더라는 어느 어머님의 성공담을 들으며 고개를 끄떡인 적이 있다.

자녀들이 심하게 싸울 땐 좀 떨어져 살게하는 방법도 좋겠지만 가정 형편이나 아이들 학교문제가 걸려 과감하게 실행하기엔 무리라는 의견도 있다.

함께 있기만 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아 결혼을 한 사랑하는 사람들도 많은 다툼과 갈등을 겪은 후에서야 비로서 서로를 진심으로 이해하게 된다. 결국은 이해의 폭을 좁히지 못해 헤어지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철없던 시절 좀 툭탁거리며 자랐을지라도 결국은 화합을 이루는 아름다운 모습이 화합하지 못하는 어른들보다 훨씬 더 많다는 사실에 희망을 걸어 보면 어떨까.

이메일 문의 ohyeonhee@hotmail.com

입력시간 :2004. 02. 13 19: 01
2004년 2월 17일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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