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희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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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현장엿보기]인종의 벽

2003.11.08 08:55

오연희 조회 수:257 추천:56

인종차별이라는 말을 들으면 가슴 저 밑바닥으로부터 이름 모를 슬픔이 가득 차 올라오는 듯하다. 인간이 무엇을 기준으로 같은 인간을 차별할 수 있다는 말인가 몸의 5분의 1도 안 되는 조그만 얼굴 모습이나, 조금 더 짙거나 옅은 피부 빛깔을 보고 한 인격을 차별하다니 참으로 사람의 생각이란 짧고도 얕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싫던 좋던 이국 땅에 살면서 인종차별에 대한 언짢은 경험을 완전히 비켜갈 수는 없다.

실제로 미국에 살면서 인종차별을 당한 경험이 있는 분들은 할말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가끔은 이 땅이 내 땅이 아니라는 자격지심에서 나온 경우도 있지 않을까 싶다.

캐나다에 사는 필자의 친구로부터 초등학교 다니는 친구의 아들이 한 백인아이의 역차별 희생타가 되었다는 사연을 듣고 한참 웃은 적이 있다. 그 백인 아이가 친구의 아들을 어찌나 괴롭히는지 학교측에 연락해 왜 자신의 아들을 그렇게 괴롭혔냐고 백인 아이를 다그쳤다고 한다.

백인 아이가 하는 말이 자신은 LA에 살다가 캐나다로 이사왔는데 LA에 살 때 코리언이 많이 다니는 초등학교에서 코리안들 때문에 어찌나 기가 죽어 지냈던지 그때 차별 당한 느낌이 가슴 깊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캐나다에 와서 한국 아이를 본 순간 그 때 받은 설움을 되갚아 주고 싶은 심리가 발동, 친구의 아들을 못살게 굴었다는 이야기다.

물론 이 이야기는 아주 드문 케이스이긴 하지만, 그 백인 아이의 사연을 듣고 나니 반드시 한인들만 인종차별을 받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의 아이들도 중학교까지는 인종 구분 없이 친구들을 사귀더니, 고등학생이 되면서부터는 아시안 아이들과 어울리는 것을 더 편안해 하는 듯 했다. 필자는 가끔 “너희들이 차별받기 싫은 것처럼 너희들도 다른 인종을 차별하지 말라. 늘 끼리끼리 지내다 보면 변두리 인생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타이르곤 했다.

1세들은 미국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고 살면 되지만, 언어에 문제가 없는 우리 아이들은 인종 차별 없이 폭넓은 인간 관계를 맺고 살기 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모가 강요한다고 갑자기 달라질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

얼굴이 서양인과 많이 다른 아시안만이 아니라 우리가 보기엔 모두 서양인으로 보이는 일부 유럽인들도 미국에 정착하기 위한 어려움은 비슷한 모양이다.

딸 아이가 말하기를 자신의 친구 중에 유럽이나 아프리카서 이민 온 아이들의 부모님들도 우리 한인 부모들처럼 미국에서 제대로 뿌리를 내리는 가장 빠른 길은 공부를 잘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는 것이다. 부모들의 뜨거운 교육열에 힘입어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을 수 없었다며, 그런 부모님들 덕분에 지금의 자신들이 됐지만 많이 힘들었다고 고백하더라는 것이다.

이민자의 삶을 ‘영토확장’이라는 의미로 받아 들이자는 어느 유명인사의 글이 생각난다. 이곳이 우리가 일궈야 할 영토라는 개념을 받아 들이자는 생각이 참으로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그런 의미로 받아 들인다면 그동안 일궈온 일터와 가정 모두 우리의 영토 안에 있으니 인종차별이라는 말은 적용되지 않을 것이다. 이민자가 새로운 땅에 튼실한 뿌리를 내리려면 아프고 힘든 세월을 통과하게 된다. 하지만 늘 아파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이곳에서 교육받은 우리 자녀들이 인종차별의 벽을 뛰어넘는 열린 사고와 도전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용기를 심어 주자. 그리하여 이곳에 우리의 영토가 더 깊고 넓게 퍼질 수 있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대해 보자.



이메일 문의 ohyeonhee@hatmai.com
입력시간 :2003. 10. 20 15: 21
2003년 10월 21일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