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희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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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아득한 세월

2003.11.17 14:06

오연희 조회 수:241 추천:55

'이사온지 얼마나 되셨나요?'

LA로 이사온지 거의 2년만에 내 집을 장만 했다. 집을 렌트하거나 사게 될 때, 아이들이 아직 어릴때는 좋은 학군을 찾아야 하겠지만 아이들이 이미 장성해버린 내 경우엔 집을 보는 기준이 조금 달랐다.

우선 날씨 좋은 곳 (LA도 넓은편이라 지역에 따라 날씨차이가 크다), 교통편 (프리웨이에서 너무 멀지 않는..)그리고 집값이 그렇게 비싸지 않는(우리가정 형편이 적합한) 곳 이렇게 세가지를 마음에 두고 집을 보기 시작했다. 3개월을 집을 보러 다녔는데도 마음에 딱 드는 집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다행히 보는 순간 ‘바로 이 집이야’ 하는 느낌을 가진 집을 만나게 돼 이사를 할 수 있었다.

가까이 있는 이웃집들은 대부분 지은 지 오래된 단층집이 많다. 동네를 둘러보면 조그만 집 앞 정원들을 어찌나 아기자기하고 정갈하게 가꿔 놓았는지 집주인들의 정성이 소록소록 묻어난다. 무엇보다 이동네로 이사와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의 표정이 한결 같이 밝다.

거의 매일 만나는 우편배달부 아저씨와 매주월요일 만나는 쓰레기 수거하는 아저씨 그리고 인종시장을 방불케 할정도로 다양한 민족이 모여사는 이웃들의 표정들을 보면, 솔직히 그렇게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이나 부유한 삶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어쩜 그렇게 신나고 행복한 표정들인지 놀랍다는 생각을 한다.

오늘아침 다시만난 쓰레기 수거하는 백인 아저씨에게 시원한 음료수를 한잔 대접하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중 물어보니 이 동네 쓰레기 치우기 시작한지가 17년째라고 했다. 가끔 쓰레기 차가 지나간뒤에 깜빡하고 못버린 쓰레기를 가지고 나가면 그냥 기다리라는 손짓을 하고는 후진해 와서 다시 거두어 간다.

인종이 다양하지만 그중에 일본인이 가장 많다. 먼저 이곳에 터를 잡고 살고 있는 그들이 말을 걸어온다.

현재 살고 있는 집에서만 40년을 살았다는 일본 할아버지를 비롯해서 이 골목엔 동네의 역사와 함께한 터줏대감들이 참 많다. 40년이라는 세월을 한곳에 살면서 자녀를 키우고, 출가시키고 이제 자신들의 자녀나이 또래인 우리를 보면서 느끼는 감회는 어떤 것일까.

남의 땅에 와서 보낸 40년. 그 세월속에 어찌 온갖 어려움이 없었을까만은 오랫동안 살아왔던 조그만 집을 지키면서 정원을 정성껏 가꾸는 그들의 평안한 뒷모습을 보면 내 마음에도 조용한 평안이 밀려온다.

이제 이사온 지 겨우 6개월 된 나에게 수십년이라는 세월이 주는 의미가 너무도 아득한 세월같다.

그들의 처음 시작도 나와 같았으리라고 생각해보며 먼훗날 나도 그들처럼 푸근하고 여유로운 표정이 넘치는 삶이 되기를 기원해본다.

입력시간 :2003. 11. 14 16: 41
2003년 11월 17일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