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희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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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현장엿보기]자녀친구, 부모친구

2003.11.21 04:17

오연희 조회 수:272 추천:54

자녀를 키우다 보면 ‘나’ 한 사람으로 맺어지던 인간관계로부터 자녀의 친구관계로 인해 만나게 되는 또 하나의 인연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자녀들 때문에 만난 부모들끼리 친형제보다 더 가깝게 마음을 주고 받으며 살아가기도 하고, 반대로 친하던 관계가 깨지는 아픔을 겪기도 한다.

필자의 딸이 한국에서 유치원 다닐 때의 일이다. 회사 사택으로 제공된 아파트 놀이터엔 고만고만한 또래들 끼리 뭉쳐 놀았고, 엄마들은 아이들을 돌볼 겸 밖에 나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런데 딸보다 한 살 많은 이웃집 아들녀석이 자꾸만 딸을 괴롭혔다. 딸이 괴롭힘을 당하며 울고 있는 모습에 필자의 가슴이 아팠지만, 그 남자 아이의 엄마가 먼저 자기 아들을 제지해 주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아이의 엄마는 대수롭잖은 듯이 힐끗 쳐다보고는 끝이었다. 섭섭한 마음에 그 남자아이 엄마를 미워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얼마 후 필자의 아들 때문에 지난번과는 반대의 입장에 서는 일이 생겼다. 다섯 살인 아들이 아파트에서 가장 절친하게 지내는 이웃집 아들의 볼을 물었다.

살이 유난히 많은 그 아이 볼에 필자 아들의 잇빨 자국이 고스란히 피멍이 되어 나타났다. 이웃집 엄마는 자신의 아들을 데리고 병원에 치료를 받으러 다녔고, 그 잇빨 자국이 없어지기까지 몇 달이 걸렸다. 그런데도 조금도 원망하지 않고, 그 후로도 변함없는 진실된 이웃의 정을 나누어 주었다. 세월이 많이 흘러도 결코 잊혀지지 않는 이웃으로 필자의 가슴에 남는 것은 그 어머니의 너그러움과 참을성 때문이다.

자녀들이 중·고등학생이 되면 어릴 때와는 다른 만남으로 부모 관계가 형성되기도 한다. 학교생활, 과외활동, PTA 모임, 교회활동, 봉사활동 등등 많은 부분에서 공동화제가 생기고, 그로 인해 서로 도움을 주고 받아가며 살아가게 된다.

특히 부부가 맞벌이를 하는 바쁜 이민생활에서 더욱 더 마음을 열고, 도움을 주고 받아야 하는 부분이 바로 아이들 교통편(Ride) 문제다. 어쩌다 엄마들끼리 모임을 가질 때도 자녀들 픽업(Pick up) 시간에 걸려 서두르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그래서 같은 학교, 같은 과외활동을 하는 부모들끼리 서로의 스케줄을 조정해 가며 카풀(Car pool)을 하기도 한다. 자녀들이 함께 다니는 기회가 잦아지면서 아름다운 우정을 쌓아가기도 하고, 그러다 보면 부모들까지 좋은 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하지만 카풀을 부탁하는 쪽이나, 받는 쪽이나 마음을 열고 성실하게 대하지 않으면 자칫 마음 상하는 일도 생긴다.

이웃이니까, 가는 길이니까, 때로는 친척이니까 해주는 게 당연한 듯이 생각하면 해주는 쪽은 힘이 빠지게 마련이다. 도움을 받는 쪽은 진심으로 감사하는 자세를, 도움을 주는 쪽은 부탁하는 쪽의 형편을 헤아리려는 진실된 이웃사랑의 마음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카풀을 해주다가 사고가 났을 경우,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사인을 받으러 온 백인 부모를 경험한 적이 있다. 그들의 문화가 옳고 그르고를 따지기 전에 상대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면서 문제를 풀어나간다면 자녀로 인해 속 깊은 이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필자의 옹졸함에 비하면 마음의 깊이가 훨씬 성숙했던 오래 전 내 추억 속의 이웃처럼 누군가에게 잊혀지지 않는 그런 사람이 되도록 우리 서로 노력해 보자.

이메일 문의 ohyeonhee@hotmail.com

입력시간 :2003. 11. 17 15: 21
2003년 11월18일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