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희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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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현장엿보기]제자사랑

2003.12.25 09:50

오연희 조회 수:228 추천:55

필자의 아이들은 한국에서 초등학교 저학년에 다니던 중 미국에 왔다. 한국 엄마들의 치맛바람과 촌지에 대한 약간의 경험을 가지고 있었기에 미국 시골도시에서의 첫 출발이 더욱 홀가분했다. 미국 학교에서는 선생님들에게 돈봉투를 주는 일을 상상할 수도 없는 분위기였다. 선물도 크리스마스나, 학년이 모두 끝나고 성적표까지 나온 후에 10달러 이내의 선에서 하면 족했다.

선생님들에게 때맞춰 돈이나 선물을 챙겨줘야 했던 한국의 잘못된 교육 풍토가 떠올라 한없이 부러웠고, 물질적인 주고받음의 어색함이 전혀 없이 선생님을 대한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건지 실감할 수 있었다.

편안한 옷차림으로 아이들의 크고 작은 학교 행사에 참가해 웃고 떠들던 순간들, 동네 어린이 운동 팀에서 자원봉사자인 코치의 우렁찬 호령에 따라 마음껏 뛰놀던 아이들, 먹을 것 잔뜩 싸 들고 아이들 응원하느라 진을 빼던 쏠쏠한 재미들… 그 모든 과정 속엔 참으로 잊지 못할 선생님들이 여럿 있었다.

필자의 아이들이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선생님들에게 했던 선물을 돈으로 환산해 보면 정말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런데 참으로 감격스러운 것은 그렇게 조그만 선물을 해도 늘 정다운 사연과 함께 감사카드를 보내온다. 선물이 너무 귀엽다던가, 어디에다 놓고 보며 늘 학생을 기억하겠다던가 등등의 간략한 멘트를 곁들인 감사의 카드는 참으로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 중에서도 딸이 다녔던 고등학교 오케스트라 지휘자(Conducter) Mr. 캘런을 결코 잊을 수가 없다.

딸은 바이올린을 전공했기 때문에 자신이 직접 연주한 테이프를 각 지원 대학교에 보내야 했다. 가까운 학교는 직접 가서 오디션을 보지만 먼 곳은 연주 테이프로도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Mr. 캘런은 딸의 테이프를 만들기 위해 여러 날을 학교 녹음실에 남아 연습을 시키고 며칠간은 자정까지 남아 좀더 아름다운 소리를 녹음하기 위해 애를 썼다. 가끔은 피아노를 전공한 부인까지 동원해 필자의 딸을 위해서 반주를 해 주었다.

나와 남편은 어떻게 감사를 표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작은 선물과 함께 약간의 돈을 드리기로 했다. 그들이 애쓴 것에 적절할 만큼의 돈을 주고 싶었지만 받는 쪽에서 어떻게 생각할지도 모르겠고, 얼마를 해야 할지 참으로 고민이 됐다. 우린 용기를 내서 보답하고 싶다고 은근히 선생님께 여쭈어 보았다. 선생님은 망설임 없이 딱 잘라 한마디 했다.

“이 아인 내 학생입니다.” 그 한마디에 우린 할말을 잃었다.

아무리 스승과 제자라 할지라도 수고한 것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주고 받으면서 살면 뒤끝이 깨끗하다. 그러나 가끔 생각도 못했던 관심과 사랑을 받을 때 그것은 갚아야 할 빚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 양쪽 모두에게 돈으로는 측량할 수 없는 마음의 부유함을 안겨 준다.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나 통하던 내 자녀만 잘 봐달라는 의미의 뇌물성 봉투나 선물이 통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필자의 아이들을 키우면서 알게 된 선생님들 중엔 그런 분을 만나거나 들은 적이 없기에 아마도 없을 거라 믿고 싶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돈으로는 진정한 마음을 살 수도, 진실된 사귐의 기쁨을 누릴 수도 없다. 철저하게 개인주의적이고 계산이 분명한 선생님도 있을 것이고, 청렴과 제자사랑이 유난한 선생님을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부모들은 자녀를 맡고 있는 선생님들의 고충을 헤아리려는 관심을 가지고 대하고, 우리 자녀들은 훌륭한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사랑과 관심 만큼 베풀며 살아가는 행복한 아이들이 됐으면 좋겠다.


ohyeonhee@hotmail.com
입력시간 :2003. 12. 17 14: 48
2003년 12월 17일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