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결혼여성 미국에서의 삶과코시안
2009.04.22 10:26
국제결혼여성의 미국에서의 삶과코시안
박 영숙영
2006년 2월, 고국에서,미 한인 사회에서 신문마다 “하인즈워드”의 기사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는데 휴스톤 크라니컬 신문에는 “Suddenly hot in South Korea”---He is a most unlikely national hero, a man who has barely spent any time in South Korea, speaks little of the Language and who under other circumstances might be looked down upon in this society-----”.라고 말하며 “Even Korean people who looked educated spat when we walked by----”김영희씨 모자가 지나가면 교양 있게 보이는 사람도 침을 벧고 지나간다는 김영희씨의 말과 함께 다분히 비꼬는듯한 기사였다
그러나 이곳 한인 신문에는 하인즈워드의 어머니,김영희씨를 한국의 전형적인 어머니의 삶이라 말하면서,신문은 하인즈워드의 팔에 새긴 한글 이름에 큰 의미를 두었다.
그러나, 정말 그랬을까? 어쩌면 같은 한인에게서 받은 어머니의 눈물과, 그가 받은 인종차별의 모멸감과 굴욕감을 살 속 깊이, 골수 깊이 새겼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래서, 사무친 울분을 피 토하듯 , 마치 먹이를 향해 질풍같이 돌진하는 상처 난 맹수처럼 필드 위를 , 휩쓸며, 뒹굴며, 부딪쳐서 넘어져도 다시금 일어서며, 그 인종차별의 편견의 모멸감에서, 그리고 자신과의 싸움에서 패배되지 않으려고 새겼던 이름은 아니었을까?
그러한 하인즈워드의 영웅적인 기사가 신문마다 쏟아져 나올 때, 이곳 휴스턴 한인 사회에서는, 외국인을 남편으로 둔, 한 한인여성이 , 한인회장에 당선되었는데, 소수의 한인들이 그녀의 자질을 거론하며 “한인회장 사퇴를 요구한다”는 기사가 이곳 신문마다 실렸었다.
나는 그녀가 누구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인사회를 위해서 18년 동안이나 일해온 그녀를, 왜, 이제 와서 그녀의 자질이 논란의 대상이 되어서 “한인회장 사퇴”를 요구해야 할까 ? 어째서 ? 무엇 때문에 ? 국제 결혼한 여자라서 ?
내가 미국에 살은 지 30년, 내가 만났던, 외국인을 남편으로 둔 한인여성들이 생각났다. 미 공군 소령의 계급장을 단 한인여성, 의사, 수출회사 비서실에 근무를 하다가, 비행기 승무원으로 근무를 하다가, 한국에서 미 대사관에서 근무를 하다가 , 미군 부대 안에서 근무를 하다가, 유학 와서 공부하다가,ㅡ외국 남편을 만난 여성들.
그러나 내가 만난 또 다른 한인 여성들은 식당에서, 미장원에서 혹은 식료품가게에서 케시어로, 혹은 봉투에 음식을 담아주며 봉급 없이 팁으로만 일하는 여성들도 있었다. 또한 밤에는 밤대로 빌딩청소며 병원청소로, 두 가지 일을 하는 여성.
그리고 또 어떤 여성들은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주에서 제공하는 GED를 공부해 당당히 고졸 자격증을 따고 2년제 대학 어카운팅을 전공해 정규대학으로 편입하는 여성들도 보았다. 그리고 그렇게 열심히 번 돈을 설과 추석에는 고향 부모님에게 어김없이 송금을 하면서도, 그들은 청바지에 헐렁한 윗도리를 걸치고, 샤핑센타나 미장원도 모르고, 주어진 삶을 아름답게 살고 있는 여성들이었다.
외국여행이 자유롭지 않았던 시절, 그리고 미국 이민이 쉽지 않았던 시절 어느 목사님 한 분이 부대주변에서 국제결혼을 한 여성들을 상대로 목사님의 거실에서부터 사목활동을 시작하는 것을 보았다 . 국제결혼을 한 여성들은 그곳에 가면, 마치 고향 같고, 형제 같고, 친구 같아서 마음 편히 모국어로 말 할 수 있기 때문에,
그 당시 처음에는 대부분의 여성들이 그곳에 갔다. 그러나 문 앞에 그려놓은 현금도표에 부담감 때문에, 그리고 돈만 있으면 교회에 갖다 받친다는 부부의 갈등으로 이혼 당하는 여성도 보았는데, 이민 온 한인들의 교인 수가 늘어 갈 수록, 차츰 그들은 한인들이 모이는 곳으로부터 멀어져 갔다.
04년, 휴스턴 00신문에 (지금은 없어진 신문사),ㅡ “한인사회에도 속하지 못하고 주류사회에도 속하지 못하는 어중이 떠중이 국제 결혼한 여자를 돕는 사업을 최우선 적으로….....” 어느 인권회장이란 사람의 인권회장 당선인터뷰 기사가 휴스톤 신문에 실렸다. 인권회장이란 자가 국제결혼한 여성들의 인권을 모독하는 이런 발언을 어떻게 할 수가 있단 말인가 !
그리고 그것을 아무 꺼리낌없이 어떻게 신문에 낼 수 있단 말인가?
2003년 고국을 방문했을 때 고속도로 주변에 걸려 있던“베트남, 중국,필리핀 여자와 결혼 합시다” 라는 현수막을 보았는데 그 현수 막을 보고 나는 충격을 받았다 40 이 넘어도 결혼할 처녀가 없어서 , 그래서 그 농촌 총각들을 위해서1995년부터 국제결혼이 권장되었다고 한다 . 인터넷 통계자료에 의하면 2천5년까지 2십5만쌍이 국제결혼을 했고, 2005년 한 해에만 전체 결혼에서13.6%가 국제결혼이며, 7쌍중 1쌍이 국제결혼이라고 했다. 1995년 처음 국제결혼한 부부의 자녀가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국제결혼의 편견이 이제는 많은 문제점을 만들어 내고 있으며 아동들의 정서에도 많은 문제들이 제기 되고 있다는 사실에 직면해 있다고 했다.
“한국인 아빠와 외국인 엄마를 둔 아동을 한국인이냐”하는 설문 조사에서 학부모 28%가,그들은 한국인이 아니다.라고 했으며,
32%의 학생들도 그들은 한국인이 아니다, 라고 했다.
코시안,온누리,튀기,라고 불리며 한국에 살고 있는 그들은 한국에서 태어나고, 핏줄을 중히 여기는 한국인 아빠를 가졌으며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편견으로 소외되어있는 그들에게 , 한국정부가 관심을 갖게 하고,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계기를ㅡ 하인즈워드가 제공했다 하겠지만, 곧 잊혀지지 않을까 염려된다.
이민온 한인들이, 미국 국적을 가졌으면 서도, 미국 사람으로부터 인종 차별을 받은 적이 있다는 한인들, ㅡ혹은 자신의 아이들이 학교에서 인종차별을 받은 적이 있다고 가슴아파 하면서도,ㅡ 그 한인들이 ㅡ국제결혼한 여성들을 바라보는ㅡ 그 편견 의식.
한국 아빠를 두었어도 ㅡ외국인 엄마를 가졌다고 ㅡ한국인이라 불리지 못하는 아동들,ㅡ 그들에게 보내는 한국인의 그 뿌리깊게 내려온 편견의식이 바뀌기 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 하루 빨리 진정으로 우리의 뜨거운 가슴을 열어야 한다.
당신의 뜨거운 가슴을 열라
박영숙영
국제 결혼한 사람의 피는
시꺼멓지도
황색이지도
희지도 않으며
한 여자와 한 남자의 만남에
붉은 피와 피가 섞였을 뿐
농촌에서 태어난 아이는
코시안이 아니고, 튀기가 아닌
미래의 농촌을 발전시킬
한 사람의 한국인이며
당신의 밥상에 음식을 올려놓을
당신과 똑 같은 생명을 가진
그들도 소중한 한 사람이다
화합을 위해서
흩어진 힘을 모으고
더 큰 힘을 기르기 위해서
당신의 뜨거운 가슴을 열라
피와 피는 붉고
건드리면 상처 나서
당신처럼 아픔을 느낄 수 있고
아름다움을 노래할 수 있는 섬세한 마음을
그들도 소유하고 있으며
당신처럼 고귀한 생명을 가진
그들도 소중한 한 사람이다
당신의
당신의 뜨거운 가슴을 열라
박 영숙영
2006년 2월, 고국에서,미 한인 사회에서 신문마다 “하인즈워드”의 기사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는데 휴스톤 크라니컬 신문에는 “Suddenly hot in South Korea”---He is a most unlikely national hero, a man who has barely spent any time in South Korea, speaks little of the Language and who under other circumstances might be looked down upon in this society-----”.라고 말하며 “Even Korean people who looked educated spat when we walked by----”김영희씨 모자가 지나가면 교양 있게 보이는 사람도 침을 벧고 지나간다는 김영희씨의 말과 함께 다분히 비꼬는듯한 기사였다
그러나 이곳 한인 신문에는 하인즈워드의 어머니,김영희씨를 한국의 전형적인 어머니의 삶이라 말하면서,신문은 하인즈워드의 팔에 새긴 한글 이름에 큰 의미를 두었다.
그러나, 정말 그랬을까? 어쩌면 같은 한인에게서 받은 어머니의 눈물과, 그가 받은 인종차별의 모멸감과 굴욕감을 살 속 깊이, 골수 깊이 새겼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래서, 사무친 울분을 피 토하듯 , 마치 먹이를 향해 질풍같이 돌진하는 상처 난 맹수처럼 필드 위를 , 휩쓸며, 뒹굴며, 부딪쳐서 넘어져도 다시금 일어서며, 그 인종차별의 편견의 모멸감에서, 그리고 자신과의 싸움에서 패배되지 않으려고 새겼던 이름은 아니었을까?
그러한 하인즈워드의 영웅적인 기사가 신문마다 쏟아져 나올 때, 이곳 휴스턴 한인 사회에서는, 외국인을 남편으로 둔, 한 한인여성이 , 한인회장에 당선되었는데, 소수의 한인들이 그녀의 자질을 거론하며 “한인회장 사퇴를 요구한다”는 기사가 이곳 신문마다 실렸었다.
나는 그녀가 누구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인사회를 위해서 18년 동안이나 일해온 그녀를, 왜, 이제 와서 그녀의 자질이 논란의 대상이 되어서 “한인회장 사퇴”를 요구해야 할까 ? 어째서 ? 무엇 때문에 ? 국제 결혼한 여자라서 ?
내가 미국에 살은 지 30년, 내가 만났던, 외국인을 남편으로 둔 한인여성들이 생각났다. 미 공군 소령의 계급장을 단 한인여성, 의사, 수출회사 비서실에 근무를 하다가, 비행기 승무원으로 근무를 하다가, 한국에서 미 대사관에서 근무를 하다가 , 미군 부대 안에서 근무를 하다가, 유학 와서 공부하다가,ㅡ외국 남편을 만난 여성들.
그러나 내가 만난 또 다른 한인 여성들은 식당에서, 미장원에서 혹은 식료품가게에서 케시어로, 혹은 봉투에 음식을 담아주며 봉급 없이 팁으로만 일하는 여성들도 있었다. 또한 밤에는 밤대로 빌딩청소며 병원청소로, 두 가지 일을 하는 여성.
그리고 또 어떤 여성들은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주에서 제공하는 GED를 공부해 당당히 고졸 자격증을 따고 2년제 대학 어카운팅을 전공해 정규대학으로 편입하는 여성들도 보았다. 그리고 그렇게 열심히 번 돈을 설과 추석에는 고향 부모님에게 어김없이 송금을 하면서도, 그들은 청바지에 헐렁한 윗도리를 걸치고, 샤핑센타나 미장원도 모르고, 주어진 삶을 아름답게 살고 있는 여성들이었다.
외국여행이 자유롭지 않았던 시절, 그리고 미국 이민이 쉽지 않았던 시절 어느 목사님 한 분이 부대주변에서 국제결혼을 한 여성들을 상대로 목사님의 거실에서부터 사목활동을 시작하는 것을 보았다 . 국제결혼을 한 여성들은 그곳에 가면, 마치 고향 같고, 형제 같고, 친구 같아서 마음 편히 모국어로 말 할 수 있기 때문에,
그 당시 처음에는 대부분의 여성들이 그곳에 갔다. 그러나 문 앞에 그려놓은 현금도표에 부담감 때문에, 그리고 돈만 있으면 교회에 갖다 받친다는 부부의 갈등으로 이혼 당하는 여성도 보았는데, 이민 온 한인들의 교인 수가 늘어 갈 수록, 차츰 그들은 한인들이 모이는 곳으로부터 멀어져 갔다.
04년, 휴스턴 00신문에 (지금은 없어진 신문사),ㅡ “한인사회에도 속하지 못하고 주류사회에도 속하지 못하는 어중이 떠중이 국제 결혼한 여자를 돕는 사업을 최우선 적으로….....” 어느 인권회장이란 사람의 인권회장 당선인터뷰 기사가 휴스톤 신문에 실렸다. 인권회장이란 자가 국제결혼한 여성들의 인권을 모독하는 이런 발언을 어떻게 할 수가 있단 말인가 !
그리고 그것을 아무 꺼리낌없이 어떻게 신문에 낼 수 있단 말인가?
2003년 고국을 방문했을 때 고속도로 주변에 걸려 있던“베트남, 중국,필리핀 여자와 결혼 합시다” 라는 현수막을 보았는데 그 현수 막을 보고 나는 충격을 받았다 40 이 넘어도 결혼할 처녀가 없어서 , 그래서 그 농촌 총각들을 위해서1995년부터 국제결혼이 권장되었다고 한다 . 인터넷 통계자료에 의하면 2천5년까지 2십5만쌍이 국제결혼을 했고, 2005년 한 해에만 전체 결혼에서13.6%가 국제결혼이며, 7쌍중 1쌍이 국제결혼이라고 했다. 1995년 처음 국제결혼한 부부의 자녀가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국제결혼의 편견이 이제는 많은 문제점을 만들어 내고 있으며 아동들의 정서에도 많은 문제들이 제기 되고 있다는 사실에 직면해 있다고 했다.
“한국인 아빠와 외국인 엄마를 둔 아동을 한국인이냐”하는 설문 조사에서 학부모 28%가,그들은 한국인이 아니다.라고 했으며,
32%의 학생들도 그들은 한국인이 아니다, 라고 했다.
코시안,온누리,튀기,라고 불리며 한국에 살고 있는 그들은 한국에서 태어나고, 핏줄을 중히 여기는 한국인 아빠를 가졌으며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편견으로 소외되어있는 그들에게 , 한국정부가 관심을 갖게 하고,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계기를ㅡ 하인즈워드가 제공했다 하겠지만, 곧 잊혀지지 않을까 염려된다.
이민온 한인들이, 미국 국적을 가졌으면 서도, 미국 사람으로부터 인종 차별을 받은 적이 있다는 한인들, ㅡ혹은 자신의 아이들이 학교에서 인종차별을 받은 적이 있다고 가슴아파 하면서도,ㅡ 그 한인들이 ㅡ국제결혼한 여성들을 바라보는ㅡ 그 편견 의식.
한국 아빠를 두었어도 ㅡ외국인 엄마를 가졌다고 ㅡ한국인이라 불리지 못하는 아동들,ㅡ 그들에게 보내는 한국인의 그 뿌리깊게 내려온 편견의식이 바뀌기 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 하루 빨리 진정으로 우리의 뜨거운 가슴을 열어야 한다.
당신의 뜨거운 가슴을 열라
박영숙영
국제 결혼한 사람의 피는
시꺼멓지도
황색이지도
희지도 않으며
한 여자와 한 남자의 만남에
붉은 피와 피가 섞였을 뿐
농촌에서 태어난 아이는
코시안이 아니고, 튀기가 아닌
미래의 농촌을 발전시킬
한 사람의 한국인이며
당신의 밥상에 음식을 올려놓을
당신과 똑 같은 생명을 가진
그들도 소중한 한 사람이다
화합을 위해서
흩어진 힘을 모으고
더 큰 힘을 기르기 위해서
당신의 뜨거운 가슴을 열라
피와 피는 붉고
건드리면 상처 나서
당신처럼 아픔을 느낄 수 있고
아름다움을 노래할 수 있는 섬세한 마음을
그들도 소유하고 있으며
당신처럼 고귀한 생명을 가진
그들도 소중한 한 사람이다
당신의
당신의 뜨거운 가슴을 열라
댓글 0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공지 | 세계 한글작가대회 ㅡ언어와 문자의 중요성ㅡ | 박영숙영 | 2015.10.30 | 439 |
공지 | 내가 사랑 시를 쓰는 이유 | 박영숙영 | 2015.08.02 | 205 |
공지 | 사부곡아리랑/아버님께 바치는헌시ㅡ시해설 | 박영숙영 | 2015.07.18 | 844 |
공지 | 시와 마라톤ㅡ 재미시인 박영숙영 인터뷰기사 | 박영숙영 | 2014.10.17 | 514 |
공지 | 사부곡 아리랑(아버님께 바치는 헌시)ㅡ 인터뷰기사 | 박영숙영 | 2014.01.16 | 460 |
공지 | 시집 5 -《인터넷 고운 님이여》'시'해설 | 박영숙영 | 2013.04.20 | 1030 |
공지 | 시집 4 -사부곡아리랑/아버님께 바치는헌시/서문 | 박영숙영 | 2013.04.20 | 795 |
공지 | 시집 3ㅡ어제의 사랑은 죽지를 않고 시'해설 | 박영숙영 | 2010.11.03 | 1353 |
공지 | 시집을 내면서ㅡ1, 2, 3, 4, 5, 6 권 | 박영숙영 | 2010.10.27 | 1258 |
공지 | 빛이고 희망이신 “인터넷 고운님에게” 내'시'는 | 박영숙영 | 2009.08.24 | 1671 |
공지 | 시집 1 ㅡ영혼의 입맞춤/ 신달자 /명지대교수 | 박영숙영 | 2008.09.09 | 1583 |
274 | Here Comes South Korea / 수필 | 박영숙영 | 2016.04.29 | 7106 |
273 | 찔례꽃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 박영숙영 | 2016.04.24 | 7098 |
272 | 계절을 두고온 목련꽃 나무 | 박영숙영 | 2016.04.24 | 7088 |
271 | 그대에게 고백하고 싶습니다 | 박영숙영 | 2016.04.24 | 7076 |
270 | 사랑 그 신비의 묘약 | 박영숙영 | 2016.04.24 | 7038 |
269 | 아~감사 합니다 | 박영숙영 | 2016.04.24 | 7016 |
268 | 잊고 살자 하면서도 | 박영숙영 | 2016.04.24 | 7014 |
267 | 아~그 곳에 나의 꿈이 | 박영숙영 | 2016.04.24 | 6993 |
» | 국제결혼여성 미국에서의 삶과코시안 | 박영숙영 | 2009.04.22 | 1922 |
265 | 어머님 기일에 | 박영숙 | 2009.07.04 | 1710 |
264 | 여자는 숨어서 울음 운다 | 박영숙영 | 2009.05.18 | 1660 |
263 | 그대 여인으로 살고 싶소 /박영숙 | 박영숙영 | 2009.04.22 | 1655 |
262 | 그대에게 고백하고 싶습니다 | 박영숙영 | 2009.03.18 | 1650 |
261 | 민들레 아리랑 | 박영숙영 | 2009.08.10 | 1601 |
260 | 당신 손잡고 | 박영숙영 | 2008.12.24 | 1592 |
259 | 어머니의 젖줄 오~모국어여 ! | 박영숙 | 2009.07.14 | 1574 |
258 | 여자는 숨어서 울음 운다 | 박영숙영 | 2009.06.23 | 1529 |
257 | 동반자 | 박영숙영 | 2009.01.14 | 1525 |
256 | 이 땅의 백성들을 보살피소서 | 박영숙영 | 2009.05.26 | 1522 |
255 | 허상 | 박영숙 | 2009.08.23 | 1482 |
254 | 인터넷 속상하고 , 인터넷 고맙다 | 박영숙 | 2009.01.26 | 1482 |
253 | 아부지 | 박영숙 | 2009.07.04 | 1481 |
252 | 내 마음 내 안에 있는것일까 | 박영숙 | 2009.11.03 | 1471 |
251 | 흙 위에 민들레 자라듯이 | 박영숙영 | 2008.12.24 | 1463 |
250 | 사랑인줄 이제사 알았습니다 | 박영숙영 | 2009.03.02 | 1458 |
249 | 천년 전의, 천년 후의 약속 | 박영숙 | 2009.01.14 | 1417 |
248 | 길 | 박영숙 | 2008.12.04 | 1395 |
247 | 불씨 없이도 불이 타고 | 박영숙 | 2008.12.04 | 1351 |
246 | 기다림 | 박영숙 | 2008.11.01 | 1315 |
245 | 마음의 본질은 변덕이다 | 박영숙 | 2010.02.25 | 1303 |
244 | 공허한 가슴 | 박영숙 | 2008.11.01 | 1256 |
243 | 울고 싶은 날 | 박영숙영 | 2008.11.01 | 1247 |
242 | 내 삶의 향기 | 박영숙영 | 2010.12.10 | 1246 |
241 | '박영숙'이란 이름은 참 흔 한 이름이다 | 박영숙영 | 2010.08.31 | 1244 |
240 | 우울증 | 박영숙 | 2008.11.01 | 1242 |
239 | 바다를 뚫고 솟아난 섬2 | 박영숙영 | 2010.05.19 | 1233 |
238 | 고독한 나의 봄 | 박영숙영 | 2008.11.01 | 1216 |
237 | 영원한 불씨하나 심어주소서 | 박영숙영 | 2011.01.04 | 1210 |
236 | 사랑이 가시 되어 | 박영숙 | 2008.11.01 | 1190 |
235 | 아~오늘 밤만은 | 박영숙 | 2008.11.01 | 1188 |
234 | 꽃씨를 심으며 | 박영숙 | 2008.11.01 | 1173 |
233 | 흘러갈 수 없는 섬 하나 | 박영숙 | 2008.08.28 | 1170 |
232 | 총영사관(휴스톤)관저를 다녀와서 / 수필 | 박영숙영 | 2012.03.14 | 1157 |
231 | 그대는 모릅니다 | 박영숙 | 2008.11.01 | 1157 |
230 | 사랑하고, 사랑받고 | 박영숙 | 2008.11.01 | 1153 |
229 | 영혼의 입맞춤 | 박영숙 | 2008.09.09 | 1148 |
228 | 아름다운 오늘 | 박영숙 | 2008.09.26 | 1145 |
227 | 물 한 방울 떨어지면 | 박영숙 | 2008.08.19 | 1139 |
226 | 5월의 장미 | 박영숙 | 2008.11.01 | 1132 |
225 | 봄의 노래 | 박영숙 | 2008.11.01 | 1131 |
224 | 가슴타는 그리움 | 박영숙 | 2008.08.19 | 1129 |
223 | 그리운 이름 하나 적어 봅니다 | 박영숙 | 2008.08.28 | 1126 |
222 | 세월과 고독을 꿰매고 | 박영숙 | 2008.09.09 | 1119 |
221 | 그냥 여자이고 싶다 | 박영숙 | 2008.11.01 | 1113 |
220 | 겨울나무 그대는 | 박영숙영 | 2010.12.06 | 1112 |
219 | 봄 마중 가고싶다 | 박영숙 | 2008.11.01 | 11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