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를 위하여 문정희

2014.02.11 07:52

박영숙영 조회 수:667 추천:54

딸을 낳아 아버지가 될 때


남자를 위하여

문정희


남자들은
딸을 낳아 아버지가 될 때
비로소 자신 속에서 으르렁거리던 짐승과
결별한다.
딸의 아랫도리를 바라보며
신이 나오는 길을 알게 된다.
아기가 나오는 곳이
바로 신이 나오는 곳임을 깨닫고
문득 부끄러워 얼굴 붉힌다.
딸에게 뽀뽀를 하며
자신의 수염이 때로 독가시였음도 안다.
남자들은
딸을 낳아 아버지가 될 때
비로소 자신 속에서 으르렁거리던 짐승과
화해한다.
아름다운 어른이 된다.



문정희는 열일곱 살의 우수가 바스락거리는 가을밤, 여학교 문학의 밤에 초대된 목월을 통해 시인이 되고 싶어 한다.
정확히 말하면 그날 목월이 강연 내용으로 삼은 ‘라이너 마리아 릴케’를 대담하게 독점하고 싶어 시인이 되려고 한다.

"소녀여/ 시인이란 왜 그대들이 고독한지/ 그것을 말할 수 있기 위해/ 그대들한테 배우는 사람들이라오”라고 하는 릴케를 위한 연가「첫 만남」에서 그는 소녀가 아니라 살로메가 되어 그를 독점하려고 한다.
목월은 그런 그녀에게서 시인의“불길한 운명”을 보는 것이다.

살로메는, 신약성경에선 헤롯왕의 계비가 자기의 간음을 질타하는
세례 요한을 죽이기 위해 딸을 꼬여서 평소 그 의붓딸에 대해
음욕을 품고 있는 왕에게 음란한 춤을 추게 한 뒤
그 상으로 요한의 목을 얻는 여자다.

한데 이보다는 오스카 와일드가 쓴 희곡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바,
여기에선 헤롯왕의 의붓딸인 그녀가 요한을 연모한 나머지
‘7개의 베일’의 춤을 추어 그 상으로 요한의 목을 얻어 입을 맞추나
의붓아버지의 질투를 사서 죽는다.

그런 살로메 같은 시인을 꿈꾸던 이 ‘발칙한’ 소녀는
마침내 화려찬란한 시인이 된다.
그리고는“싱싱하게 몸부림치는 가물치처럼 온몸을 던져오는
거대한 파도를” 제압하는 야생의 사내들과,
페미니스트들이 추방해버린 “진짜 멋지고 당당한 잡놈”들에게 오히려 한평생을 던져버리고 싶어 한다.

“몰래 숨어 해치우는 누우렇고 나약한 잡것들”과 “비겁하게 치마 속으로 손을 들이미는 때 묻고 약아빠진 졸개들” 뿐인 세상에서
눈부신 야생마를 만나려고 애쓴다.

그렇다면 그런 ‘눈부신 야생마’들은 누구인가.
먼저 사마천이다. 그는 투옥당한 패장을 양심과 정의에 따라 변호하다가
남근을 잘리는 치욕적인 궁형(宮刑)을 받고도 방대한 역사책『사기(史記)』를 써서 ‘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규명해낸 사나이다.

사랑하는 사마천 당신에게」란 시를 보면, 세상의 사나이들은
“좀더 튼튼하고/ 좀더 당당하게/ 시대와 밤을 찌를 수 있는 기둥”을 세우기 위해
개고기를 뜯어먹고 해구신을 고아먹고 산삼을 찾아 날마다 붉은 눈을 번득이는데,
그런 꼿꼿한 기둥을 잘리고 기둥에서 해방되어 되레 천년을 얻고
“사내가 된 사내”인 것이다.

또한 지귀다. 머리에 이가 있고 거북 등처럼 손이 튼 계집애나
제 짝이 될 수밖에 없는 신라의 천한 목수인 주제에,
제 주제도 모르고 선덕여왕을 사모했다가
여왕이 오는 다보탑 앞에서 오래오래 기다린 사내,
그러다가 피곤해서 그만 잠이 드는 바람에 지나간 여왕을 보지 못한 사내,

그러나 “세상에 못 맺을 사랑이란 없다는 것”을 무엄하게도 알아버린
이 떠꺼머리를 아름다이 여긴 여왕이
가슴에 금팔지를 던져놓고 가자 그 사실을 알고는
금팔지를 안고 온몸이 불타버려 신라만이 아니라

온 시대 온 나라의 사랑의 사슬을 끊어버린 사내가 지귀다.
하물며 천둥같은 사나이라는 전봉준이며,
대동여지도를 만든 고산자 김정호며,
고흐, 생 텍쥐페리 등 죽음조차 눈부신 사내들은 어떤가.

이런 사내들에 경사되는 이 통 큰 여성시인의 ‘사나이 집착증’은 당연히 사나이다운 사나이가 사라진 이 시대의 ‘남자를 위한 시’이기도 하다.

오늘의 시「남자를 위하여」는 이와 같은 맥락에선 약간 벗어난
남자의 욕망론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욕망은 생의 근본적인 추동력이면서도 자본으로
왜곡돼버린 가장 추악한 욕정이기도 하다.

그런데 여기서 남자가 “딸을 낳아 아버지가 될 때”
곧 딸의 아랫도리를 보며 거기가 신이 나오는 곳임을 알게 되면서

남자들이 자신 속에서 으르렁거리는 욕정과 결별한다는데
이는 그냥 여성 시인의 소망사항일 것만 같다.

남자들은 그러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바로는 “딸의 엉덩이가 산처럼 부풀어 여물 때” 정도면 남자의 욕정이 한풀 꺾인다고 한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유튜브 박영숙영 영상'시모음' 박영숙영 2020.01.10 100
공지 우리나라 국경일 박영숙영 2015.07.06 341
공지 우리나라에는 1년 중 몇 개의 국경일이 있을까요? 박영숙영 2015.07.06 1623
공지 무궁화/ 단재 신채호 박영숙영 2015.06.16 274
공지 무궁화, 나라꽃의 유래 박영숙영 2015.06.16 709
공지 ★피묻은 肉親(육친)의 옷을 씻으면서★ 박영숙영 2014.10.19 442
공지 [펌]박정희 대통령의 눈물과 박근혜의 눈물 박영숙영 2014.06.14 413
공지 박정희 대통령의 눈물 / 머리카락도 짤라 팔았다 박영숙영 2014.05.28 376
공지 어느 독일인이 쓴 한국인과 일본인 ** 박영숙영 2011.08.02 500
공지 저작권 문제 있음 연락주시면 곧 지우겠습니다. 박영숙영 2014.02.08 211
55 신용은 재산이다 박영숙영 2013.04.29 184
54 내력 / 김선우 박영숙영 2014.08.14 179
53 신록 / 문정희 박영숙영 2014.05.08 178
52 하늘 무늬 / 이선 박영숙영 2014.01.15 178
51 사람아,무엇을 비웠느냐? / 법정 스님 박영숙영 2014.02.07 176
50 가을 편지/고정희 박영숙영 2014.05.08 174
49 손의 고백 /문정희 박영숙영 2014.03.29 168
48 ㅡ문제와 떨어져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ㅡ 박영숙영 2013.11.20 168
47 파도, 바위섬 / 이길원 박영숙영 2014.01.15 168
46 이제 누가 헝클어진 머리 빗겨 주나 박영숙영 2014.07.31 167
45 아버지의 나이 / 정호승 박영숙영 2014.06.18 166
44 사모곡(思母曲) 아리랑/ 외 박영숙영 2014.05.14 162
43 늑대/도종환 박영숙영 2014.07.16 161
42 [ 적멸에게 ] -정호승- 박영숙영 2014.06.18 157
41 패랭이꽃 -류시화- 박영숙영 2015.06.14 155
40 완경(完經)/ 김선우 박영숙영 2014.08.14 155
39 '악'이 작다는 이유로 박영숙영 2013.11.28 155
38 안개 / 유승우 박영숙영 2014.01.15 155
37 찔레 / 문정희 박영숙영 2014.05.08 154
36 민들레/ 류시화 박영숙영 2015.06.14 150
35 하늘에 쓰네 /고정희 박영숙영 2014.05.08 148
34 들풀/ 류시화 박영숙영 2015.06.14 144
33 봄 / 설유 박영숙영 2014.02.05 137
32 꽃샘 바람/이해인 박영숙영 2015.06.14 135
31 봄비 /고정희 박영숙영 2014.05.08 134
30 하나의 나뭇잎일 때 / 손해일 박영숙영 2013.12.19 133
29 - 존 로크의 《독서에 관하여》 중에서 - 박영숙영 2014.06.25 130
28 한밤중에 ―문정희 박영숙영 2014.05.08 129
27 내가 사랑하는 사람 / 정호승 박영숙영 2014.06.18 126
26 ★ 부부 / 문정희· 박영숙영 2019.02.20 125
25 [펌]이 외수의 글쓰기 비법 박영숙영 2014.06.29 124
24 마음이 깨끗해 지는 법 박영숙영 2014.10.12 120
23 미국 어느 여객기 기장의 글 박영숙영 2016.07.02 119
22 '가 을' / 김현승 박영숙영 2014.09.19 119
21 향수 / 정 지 용 박영숙영 2019.01.28 116
20 찔 레 / 문정희- 박영숙영 2015.06.14 115
19 완성 /나태주 ㅡ 접목接木복효근 박영숙영 2019.02.20 103
18 창 포 - 신동엽- 박영숙영 2015.06.14 103
17 '가 을' - 드라메어 박영숙영 2014.09.19 99
16 <수선화에게> 정호승 박영숙영 2014.06.18 98
15 장미를 생각하며/ - 이해인 박영숙영 2015.06.14 97
14 꽃 씨 / 서정윤 박영숙영 2015.06.14 96
13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 】/펌글 박영숙영 2020.12.19 89
12 '가 을' 김용택 박영숙영 2014.09.19 88
11 신작시조 10편에 대하여/ 홍용희 박영숙영 2019.06.06 86
10 '가 을' 김광림 박영숙영 2014.09.19 86
9 내가 하나의 나뭇잎일 때 / 손해일 박영숙영 2019.01.26 80
8 흐르면서 머물면서/손해일 박영숙영 2019.01.24 77
7 무엇이 한국을 세계 頂上으로 만들었을까 박영숙영 2015.04.19 62
6 느티골의 여름나기 박영숙영 2019.02.20 60
5 ★ "진정한 영웅들" ★ 박영숙영 2016.04.29 59
4 내국망명자와 생활세계적 가능성의 지형/홍용희 박영숙영 2019.06.06 44
3 공전과 자전 /펌글/박영숙영 박영숙영 2020.12.13 41
2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 박영숙영 2020.12.19 38
1 백선엽 장군 친일 역사외곡에 대하여 박영숙영 2020.07.15 26

회원:
2
새 글:
0
등록일:
2015.03.19

오늘:
4
어제:
48
전체:
885,5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