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이 오면 (심훈)
2019.04.04 11:28
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은
삼각산(三角山)이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목숨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할 양이면,
나는 밤하늘에 나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鍾路)의 인경((人磬)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그 날이 와서,
오오, 그 날이 와서
육조(六曹)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뒹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들쳐 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이 시는 장편 소설 상록수(常綠樹)의 작가 심훈이 쓴 일제강점기의 희귀한 저항시다.
이 시를 '세계 저항시의 본보기'라고 평가할 정도로. 전체의 시상은 그 날을 염원하는 격정과 환희의 정서를 형상화해 보이고 있는데, '그 날'이란 온갖 민족적 수난과 저항 끝에 마침내 죽음을 넘어 획득하게 되는 독립의 날을 뜻한다.
작가 : 심훈(沈熏/1901-1936)- 본명은 대섭(大燮).소설가, 시인, 영화인.서울 출생.
경성고보 재학시 3.1운동에 참가했다가 체포되어 4개월간 복역한 후 중국 상해로 건너가 원강대학에서 3년간 수학하고 귀국하였다.
1923년부터 동아일보, 조선일보 기자로 있으면서 시와 소설을 발표하여 문단에 등단하였다. 1926년 영화 <먼 동이 틀 때>를 원작, 각색, 감독하였으며, 1935년 동아일보 창간기념 현상공모 소설에 <상록수>가 당선되었고, 그 상금으로 충남 당진에 '상록학원'을 설립하였다.
1936년 손기정이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하자 신문 호외 뒷면에 <오오, 조선의 남아여!>를 썼고
스 외 <나의 강산이여>, <봄의 서곡>, <돌아가지이다>, <필경> 등이 있고, 대표소설에 <상록수>, <영원의 미소>, <직녀성>, , <황공의 최후> 등이 있다.
- 참고 -
위의 시는 낭만적이고 서정적이며, 참여적이고 저항적인 색채를 풍미하고 있다.
'그 날'은 조국 광복(光復)의 날을 뜻한다.
까마귀 - 종을 울림으로써 은혜를 갚은 까마귀(또는 까치)의 전설을 생각하며, 암울한 시대를 살아가는 시적 화자의 비장하고 고독하고 자기 희생적 모습을 암시하고 있다.
인경(人磬)-통행금지를 알리기 위해 밤마다 치던 큰 쇠 종,
육조(六曹) --- 이조, 예조, 호조, 병조, 형조, 공조를 의미하며 지금의 세종로에 있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