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침실로 - 이상화 -

2009.07.10 06:52

박영숙 조회 수:587 추천:112

나의 침실로  - 이상화 -
                                                      
    
마돈나, 지금은 밤도 모든 목거지에 다니노라, 피곤하여 돌아가련도다.
아, 너도 먼동이 트기 전으로 수밀도(水蜜桃)의 네 가슴에 이슬이 맺도록 달려 오너라.


마돈나, 오려무나. 네 집에서 눈으로 유전(遺傳)하던 진주는 다 두고 몸만 오너라.
빨리 가자. 우리는 밝음이 오면 어딘지 모르게 숨는 두 별이어라.



마돈나, 구석지고도 어둔 마음의 거리에서 나는 두려워 떨며 기다리노라.
아, 어느덧 첫닭이 울고 - 뭇 개가 짖도다. 나의 아씨여 너도 듣느냐?


마돈나, 지난 밤이 새도록 내 손수 닦아 둔 침실(寢室)로 가자 침실로!
낡은 달은 빠지려는데 내 귀가 듣는 발자국 - 오 너의 것이냐?



마돈나, 짧은 심지를 더우잡고 눈물도 없이 하소연하는 내 마음의 촛불을 봐라.
양털같은 바람결에도 질식이 되어 얕푸른 연기로 꺼지려는도다.



마돈나, 오너라. 가자. 앞산 그리매가 도깨비처럼 발도 없이 가까이 오도다.
아, 행여나 누가 볼런지 - 가슴이 뛰누나. 나의 아씨여. 너를 부른다.


마돈나, 날이 새련다. 빨리 오려무나. 사원(寺院)의 쇠북이 우리를 비웃기 전에
네 손이 내 목을 안아라. 우리도 이 밤과 같이 오랜 나라로 가고 말자.


마돈나, 뉘우침과 두려움의 외나무 다리 건너 있는 내 침실, 열 이도 없느니
아, 바람이 불도다. 그와 같이 가볍게 오려무나. 나의 아씨여, 네가 오느냐?


마돈나, 가엾어라. 나는 미치고 말았는가. 없는 소리를 내 귀가 들음은 -
내 몸에 피란 피 - 가슴의 샘이 말라 버린 듯 마음과 몸이 타려는도다.



마돈나, 언젠들 안 갈 수 있으랴. 갈 테면 우리가 가자. 끄을려 가지 말고
너는 내 말을 믿는 마리아 - 내 침실이 부활(復活)의 동굴(洞窟)임을 네야 알련만….


마돈나, 밤이 주는 꿈, 우리가 얽는 꿈, 사람이 안고 궁구는 목숨의 꿈이 다르지 않느니.

아, 어린애 가슴처럼 세월 모르는 나의 침실로 가자. 아름답고 오랜 거기로.


마돈나, 별들의 웃음도 흐려지려 하고 어둔 밤 물결도 잦아지려는도다.

아, 안개가 사라지기 전으로 네가 와야지. 나의 아씨여, 너를 부른다.

                           - <백조3호>(1923) -
  

해  설


[ 개관 정리 ]

◆ 성격 : 낭만적, 감상적, 퇴폐적, 현실도피적

◆ 표현 : ㉠ 각 연 2행 구성.

              ㉡ 긴 호흡의 반복적 구문

              ㉢ 두운적 요소

◆ 중요 시어 및 시구의 의미

   * 마돈나 ― 구원의 여인상. 마음을 같이할 수 있는 있는 진실한 동반자

   * 침실 ― 죽음의 세계,  영원한 안식처, 모든 이상이 담긴 도피처

                뉘우침과 두려움의 결단을 통해 접근할 수 있는, 외나무다리 저편의 꿈과 부활의 동굴.

                절망적인 상황으로 인해 피폐해진 정신에 안식과 활력을 주는 재생의 장소

◆ 주제 ⇒ 아름답고 영원한 안식처에 대한 갈망



[ 시상의 흐름(짜임) ]

◆ 1연 : 마돈나와의 만남 갈구

◆ 2연 : 밤이 가기 전 마돈나와의 만남을 갈구

◆ 3연 : 불안 속에서의 기다림

◆ 4연 : 안식처로의 지향과 환청

◆ 5연 : 초조하고 연약해진 마음

◆ 6연 : 고조되는 불안 속에서의 기다림

◆ 7연 : 초조하고 급박한 상황 제시

◆ 8연 : 안식처에 들어가기 위한 애타는 기다림

◆ 9연 : 기다림에 지친 정신과 육체

◆ 10연 : 부활의 동굴로서의 침실

◆ 11연 : 아름답고 영원한 침실로의 지향

◆ 12연 : 마지막으로 갈구하는 구원의 대상



[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

이 시는 1923년에 발표된 작품으로, 시인의 초기 시경향(퇴폐적이고 감상적인 낭만주의)에 잘 어울리는 대표작이다.  사랑과 죽음, 곧 에로스(eros)와 타나토스(thanatos)가 하나로 어울려 주제를 이룬 작품이다.  죽음을 계기로 한 사랑의 재생을 노래하고 있어, 결국 사랑과 죽음과 재생의 세 관념이 엇갈려 이루는 높은 긴장도에서 이 작품의 극적 상황이 마련된다. 어둠, 피안에 까지 삶을 넓혀 체험하려는 곳에서 낭만파 초기의 성향을 엿볼 수 있다.

마돈나는 분명치는 않으나, 3·1운동 직후 피폐했던 시대상황 속에서의 지식인들의 절망, 좌절과 연관지어 볼 때,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자기 구원의 대상'임에 틀림이 없다. 시간의 경과에 따라 긴장과 불안, 안타까움은 고조되고, 끝내 마돈나는 나타나지 않는다.

또한 이 시를 감상하는데 있어 중요한 요소가 바로 시적자아가 간절히 가기를 원했던 '침실'이라는 공간이 지닌 의미이다.  침실에 대해 본문에서는 '오랜 나라', '뉘우침과 두려움의 외나무 다리 건너에 있는 곳', '언젠들 안 갈 수 없는 곳' , '부활의 동굴' , '아름답고 오랜 거기'로 표현해 주고 있다. 그곳은 한마디로 죽음의 세계, 영원한 안식의 세계이다. 하지만 시인이 노래한 죽음은 생명의 종말로서의 단순한 죽음은 아니었다. 오히려 죽음을 한없이 아름답고 자유로우며 영원한 삶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렇게 생각한 것은 그들이 당시의 상황에서 자신들의 젊은 정열과 현실의 암담함 사이에 놓인 큰 거리감을 절망적으로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죽음의 예찬은 곧 추악하고 괴로운 현실을 부정하려는 의식의 산물이며, 순수하고 자유로우며 아름다운 삶의 세계를 향한 간절한 염원의 역설적 표현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간절한 부름에도 마돈나는 오지 못하며, 죽음은 실제로 이루어 질 수 없다. 그것은 마돈나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의 여인이고, 죽음은 현실적으로 삶의 종말이자 모든 문제의 포기이기 때문이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유튜브 박영숙영 영상'시 모음' 박영숙영 2020.01.10 85
공지 님들께 감사합니다 박영숙영 2014.02.14 190
공지 저작권 문제있음 알려주시면 곧 삭제하겠습니다. 박영숙영 2013.02.22 246
130 사랑은/김남주 박영숙영 2010.11.30 271
129 저무는 꽃잎/도종환 박영숙영 2010.09.24 283
128 A winter Song 겨울노래 / 신규호 박영숙영 2014.01.05 287
127 [스크랩]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류시화 박영숙영 2010.11.30 293
126 아름다운 성탄절입니다. 장태숙 2008.12.24 295
125 Duskㅡ황혼 박영숙영 2012.08.22 300
124 스크랩ㅡ이제는 더이상 헤매지 말자 /바이런 박영숙영 2010.11.30 302
123 가을 오후 / 도종환 박영숙영 2010.11.11 304
122 즐거운 편지/황동규/출처 다움고요이야기 박영숙 2009.01.14 321
121 꽃잎/도종환 박영숙영 2010.09.24 323
120 스크랩 ㅡ좋은글 ㅡ하얀 겨울이 그립습니다 박영숙영 2010.12.02 323
119 스크랩 ㅡ당신이 날 사랑해야 한다면 /브라우닝 박영숙영 2010.11.30 325
118 근원설화 ㅡ김종제ㅡ 박영숙영 2011.07.16 327
117 스크랩 ㅡ사랑 /정호승 박영숙영 2010.11.30 328
116 부화孵化 / 김종제 박영숙영 2010.12.10 329
115 동반자/ Companionship 박영숙영 2012.01.11 329
114 남해금산 /이성복 박영숙 2009.01.14 332
113 사평역(沙平驛)에서 / 곽재구 박영숙 2009.01.14 332
112 편지 / 김 남조 박영숙 2010.07.01 333
111 한계령을 위한 연가/ 문정희 박영숙 2009.01.14 334
110 [스크랩] ▶ 잠시 멈추어 쉼표를 찍는다 박영숙영 2010.12.13 335
109 동천 /서정주/출처 다움 고요 박영숙 2009.01.14 335
108 저녁눈 /박 용 래 박영숙 2009.01.14 336
107 성탄절 이주희 2008.12.20 339
106 '풀'/ 김수영 박영숙 2009.01.14 342
105 ♡*미주문학동네 입주 환영*♡ 잔물결(박봉진) 2008.10.05 345
104 [스크랩}살아 있는 것은 흔들리면서 박영숙 2009.09.28 345
103 스크랩 ㅡ늙어가는 아내에게 /황지우 박영숙영 2010.11.30 346
102 묵화(墨畵)/김 종 삼/출처 다움고요 박영숙 2009.01.14 349
101 한 잎의 여자 /오규원 박영숙 2009.01.14 349
100 moon sails out / 달이 떠오르니 박영숙영 2014.02.05 351
99 [스크랩] 참 좋은 당신 /김용택 박영숙영 2010.11.30 353
98 스크랩 ㅡ 그대는 꿈으로 와서/-용혜원- 박영숙영 2011.02.17 354
97 사슴/노 천 명 박영숙 2009.01.14 354
96 용서 / U.샤펴 지음 박영숙 2010.06.09 356
95 [ 스크랩]가끔은 애인같은 친구 박영숙 2009.08.27 356
94 문학서재 입주를 축하! 환영! 종파 이기윤 2008.11.30 356
93 목마와 숙녀/박인환 박영숙 2009.01.14 356
92 김춘수 '꽃' /출처 다움고요 박영숙 2009.01.14 357
91 [스크랩]ㅡ그리워 한다는 것은/이효텽 박영숙영 2011.03.23 358
90 [스크랩] 꽃피우기/도종환 박영숙영 2011.04.27 359
89 No Title 무제/ 신규호 박영숙영 2013.05.30 362
88 스크랩 ㅡ너를 사랑한다는 것은 /용혜원 박영숙영 2010.11.30 366
87 어느 95세 어른의 수기 / 펌글 박영숙 2009.03.11 368
86 스크랩 ㅡ나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 U. 샤퍼 박영숙영 2010.11.30 379
85 스크랩 ㅡ가정/ 박 목월 박영숙영 2011.03.23 381
84 고갈비/최삼용(바브 박영숙영 2011.06.03 381
83 [스크랩]ㅡ불밥/김종제 박영숙영 2011.01.30 386
82 가을에게 박영숙 2009.11.03 395
81 [스크랩] 우정/이은심 박영숙 2009.11.13 397
80 호 수 /정지용 박영숙영 2010.11.30 402
79 [스크랩] 황홀한 고백 /이해인 박영숙영 2010.11.30 402
78 별들은 따뜻하다 / 정호승 박영숙 2009.01.14 406
77 [스크랩]ㅡ가을에/정한모 박영숙영 2011.03.23 406
76 이해인/존재 그 쓸쓸한 자리 중에서 박영숙영 2011.09.16 406
75 빈집/기형도 박영숙 2009.01.14 410
74 도 종 환/시 창작 초기에 나타나는 고쳐야할 표현들 박영숙 2009.11.13 413

회원:
2
새 글:
0
등록일:
2015.03.19

오늘:
34
어제:
133
전체:
885,5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