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사회적 상황이 1970년대를 거치면서 정치문화의 폐쇄성과 급격한 산업화의 물결에 의해 혼돈을 거듭하고 있는 동안, 훼손되어 가는 인간의 삶을 회복시키고자 하는 새로운 시도가 시의 영역에서 싹트기 시작한다.

시의 서정적 속성을 최대한 살려내면서 삶의 현실을 포괄하고자 하는 이 움직임은 1960년대 시의 현실 참여를 보다 높은 차원으로 확대시킴으로써 정서적 균형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왜곡된 인간의 모습이 언어에 의해 그려지기도 하며, 현실을 초월하고 있는 고양된 정서가 드러나기도 한다. 도시적인 것, 문명적인 것들이 지니는 비인간적인 요소는 대부분 이들의 시에서 기지의 언어로 매도된다. 전도되어 있는 가치관, 폭력의 정치, 집단의식의 횡포 등은 이들의 시가 추구하고 있는 가장 자유로운 언어,가장 자유로운 상상력 속에서 여지없이 무너지고 있다. 그렇지만 이들은 결코 목청을 돋구어 소리치지 않으며, 언어의 베일을 통한 감정의 은폐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황동규에게 있어서 1970년대 이후의 산업화시대는 상상력의 확대와 시정신의 고양을 동시에 이루어낸 시기이다. 그의 시집 〈삼남(三南)에 내리는 눈〉(1975)을 보면, 그가 즐겨 활용하고 있는 언어의 패러독스가 극적으로 현실과 대면하게 되는 것은 정치적인 폭력과 그 무자비성에 대한 비판적 인식에 접근하면서부터이다. 그는 정치적 폭력이 어떻게 한 인간의 순수한 꿈과 사랑을 파괴시키고 있는가를 보여주기 위해, 꿈과 사랑이 성립될 수 없는 냉혹한 현실과 어둠의 세계를 시적 정황으로 제시하고 있다.

1970년대 이후 황동규는 시집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1978)·〈견딜 수 없는 가벼운 존재들〉(1988) 등에서 현실의 문제보다는 본질적인 세계에 대한 관심을 심화시키고 있다. 이 과정에서 그가 내놓은 절창의 노래가 연작시 〈풍장 風葬〉이다. 〈풍장〉은 무위의 자연과 그 자연의 본연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시인의 노력의 소산이다. 이승훈의 〈당신의 초상〉(1981)·〈사물들〉(1983)과 정현종의 시집 〈사물의 꿈〉(1972)·〈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1989), 오규원의 시집 〈이 땅에 씌어지는 서정시〉(1981)·〈가끔은 주목받는 생(生)이고 싶다〉(1987) 등은 시적 언어와 기법의 실험을 통하여 새로운 시의 세계를 천착해오고 있는 시인들의 업적이다. 이 시인들은 시적 대상을 인식하고 그것을 언어로 표현해내는 방법에 있어서 서로 다른 태도를 보여주고 있지만, 절제된 정서, 언어의 기지, 난해한 기법 등은 서로 비슷하다. 개인의 내면의식에 집착하는 고립주의적인 성향과 그 기법의 난해성이 더러는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시적 감수성의 변혁을 추구하고 있는 이들의 노력은 인식으로서의 시의 특성을 구현하는 실천적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할 것이다.

1960년대 후반에 시단에 등장한 시인들 가운데 오세영의 〈무명연시 無明戀詩〉(1986), 이건청의 〈망초꽃 하나〉(1983), 김종해의 〈항해일지〉(1984), 정진규의 〈연필로 쓰기〉(1984), 박제천의 〈장자(壯子)시편〉(1988) 등은 사물에 대한 지적인 통찰력을 구비하고 있으면서도 언어적 실험보다는 시적 서정성의 확립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는 다양한 개성의 시집들이다. 이 시인들은 전통적인 시적 정서를 외면하지 않으면서, 도시적 감각도 살려내고, 체험에 바탕을 둔 삶의 진실을 시의 세계에 포괄하고자 노력한다. 그들의 시가 펼쳐보이는 개인적인 서정의 세계는 세속의 생활감정에서 선(禪)의 경지에 이르는 고아한 정신의 상태까지 폭이 넓다.

1970년대의 정치·사회적 폐쇄성과 급격한 산업화의 과정에 대응했던 문학적 경향 가운데 가장 주목되는 것이 민중시 운동이다. 민중시 운동에서는 문학의 현실 참여에 대한 관심을 확대시키면서 부정의 정치 현실에 대한 비판과 풍자를 표출하기도 했고, 소외된 민중의 삶의 모습을 시를 통해 그려내기도 한다. 민중시는 시인의 현실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과격한 언어로 묶여져서, 때로는 지나치게 이념적인 색채를 드러내고 있는 것도 있다.

김지하의 담시 〈오적 五賊〉(1970)은 전통적인 운문 양식인 가사, 타령, 판소리사설 등을 변용함으로써 새로운 장시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어떤 부분에서는 해학을 동반하고, 어떤 부분에서는 비장함을 드러내기도 하는 그의 풍자는 운문양식을 통해 도달할 수 있는 하나의 경지를 시험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겠다. 김지하의 문학이 사회·윤리적 가치기준에서가 아니라 문학성의 의미에서 다시 관심을 모으게 된 것은, 그가 오랜 동안의 투옥생활을 겪으면서 적은 시들을 중심으로 묶어낸 시집 〈타는 목마름으로〉(1982)의 출간과 때를 같이 한다. 이 시집의 시들은 비판과 저항의 의지가 보다 깊이 내면화되면서 정서의 응축을 통한 시적 긴장을 잘 살려내고 있다. 서정시가 빚어내는 비극적인 감동이 시적 의지를 더욱 강렬하게 구현할 수 있는 정서적 기반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는 자신의 체험과 그 시적 형상화과정을 통해 입증하고 있는 셈이다.

신경림은 시집 〈농무 農舞〉(1973)에서 급속한 산업화과정에서 소외된 농민들의 삶의 현장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거칠지만, 진실미가 바로 소박함에서 솟아나기도 하는 삶의 현장으로서의 농촌이 그가 즐겨 다루는 시적 대상이다. 신경림이 그의 시적 작업에서 가장 힘들인 것은 현대시와 민요정신의 결합이다. 그는 민요 속에 살아 있는 집단적인 민중의 삶과 그 의지를 더욱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으며, 생활의 체험을 바탕으로 하여 형성되고 있는 실감의 정서를 더욱 귀하게 여기고 있다. 장시 〈남한강〉(1987)은 민요 속에 담긴 민중적 정서가 현대시에서도 얼마든지 다시 살아날 수 있으며, 시적 긴장을 유지할 수 있음을 말해 주는 좋은 예가 되고 있다.

시인 고은이 1970년대의 암울한 정치현실에 정면으로 대립하기 시작한 것은 그의 시집 〈문의 마을에 가서〉(1974)부터이다. 절망의 시대를 겪고 난 고은의 시세계는 보다 폭 넓고 깊은 역사의식을 포괄할 수 있는 상상력의 힘을 지니게 된다. 그의 연작시 〈만인보 萬人譜〉와 장시 〈백두산〉이 바로 그러한 실천적 성과에 해당된다. 연작시 〈만인보〉는 그 규모의 방대성과 시적 정신의 포괄성에서 단연 돋보이는 작품이다. 민족의 삶의 모습을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다채롭게 엮어가고 있는 이 시에서 연작성의 효과는 그 반복과 중첩의 묘미에서 찾아진다. 〈백두산〉이 민족의 역사에 대한 성찰과 신념을 서사적으로 엮었다고 한다면, 〈만인보〉는 민족의 삶과 그 진실을 서정의 언어로 통합시켜 놓고 있다고 할 것이다.

민중시 운동은 이시영의 〈만월〉(1976)·〈바람 속으로〉(1986), 정희성의 〈저문 강에 삽을 씻고〉(1978), 김명수의 〈하급반 교과서〉(1983)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들은 민중의 삶의 현실을 자신들의 시적 정서의 기반으로 삼고 민중 의식의 시적 형상화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들의 민중지향적 태도는 냉철한 현실비판을 수반하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 비판적 감수성 자체가 민중시의 정서적 기반처럼 고정되고 있는 경우도 많다. 하종오의 〈사월에서 오월로〉(1984), 김정환의 〈지울 수 없는 노래〉(1982),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1984), 곽재구의 〈사평역에서〉(1983), 김용택의 〈섬진강〉(1985) 등도 이 시기의 민중시의 경향을 잘 보여주는 시집들이다.

이 시기의 새로운 시인들 가운데에는 현실에 접근하면서도 배타적인 논리를 내세우지 않고, 도시화된 현실 속에서 인간의 삶의 피폐성을 지적인 언어로 묘사하는 특이한 균형을 보여주는 작품들을 만들어낸 시인들도 있다. 김명인의 〈동두천〉(1979), 김광규의 〈아니다 그렇지 않다〉(1983), 이하석의 〈투명한 속〉(1980), 이성복의 〈남해금산〉(1987), 황지우의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1983), 최승호의 〈대설주의보〉(1983) 등이 대표적인 예가 된다.

한국의 현대시에서 여류시의 위상이 시단의 중요한 하나의 경향으로 자리잡게 된 것은 1960년대를 넘어서면서 활발한 시작활동을 전개한 시인들의 시적 성과와 직결된다. 김후란의 〈음계〉(1971), 김여정의 〈바다에 내린 햇살〉(1973), 허영자의 〈어여쁨이야 어찌 꽃뿐이랴〉(1977), 유안진의 〈절망시편〉(1972), 김초혜의 〈사랑굿〉(1985), 강은교의 〈허무집〉(1971)· 〈빈자일기〉(1977), 문정희의 〈혼자 무너지는 종소리〉(1984) 등이 모두 이 시기의 업적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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