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랑 노래-신경림-

2009.07.10 06:46

박영숙 조회 수:750 추천:117

가난한 사랑 노래
                                                                              -신경림-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 <가난한 사랑 노래>(1988)-
  

해 설


  [개관 정리]

◆ 성격 : 서정적, 묘사적, 현실적, 감각적, 애상적

◆ 표현 : 1연 18행의 병렬식 구성

              설의법에 의한 동일 구문의 반복

              이야기 형식으로 내용을 나열함.

              애틋하게 호소하는 듯한 어조.

◆ 중요 시어 및 시구 풀이

   *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 작품 전체를 통해 동일한 통사 구문이 반복되며, 설의법을 통해 화자인 가난한 이웃의 한 젊은이의 정서가 한층 강조되어 나타남.

   *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 희다 못해 시릴 정도로 새파란 달빛이 비치는 도시 골목길의 풍경을 시각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외로움의 이미지를 강화함.

   * 두 점 치는 소리 → 새벽 두 시를 알리는 소리

   *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 불안과 초조감, 쫓기는 심정을 자극하는 소리

   * 메밀묵 사려 소리 → 가난하고 소박한 삶의 공간을 환기시키는 쓸쓸한 소리

   * 육중한 기계 굴러 가는 소리 → 도시의 비정한 기계 문명을 상징하며, 도시 공장 노동자인 화자와 같은 사람에게는 위협과 공포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동시에 화자의 삶이 참으로 고단할 것이라는 것도 느끼게 해 주는 소리

   * 뇌어 보지만 → 되풀이 하여 보지만

   * 새빨간 감 → 그리움의 대상이면서, 따뜻한 인정을 느끼게 해주는 소재

   *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 서로 사랑하지만 가난 때문에 서로의 길을 가기 위해 이별해야 하는 가난한 이들의 서러움을 청각적으로 형상화함.

   *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 가난 때문에 감당해야 할 서러움을 요약적으로 제시해 줌. 가난 때문에 지극히 인간적인 감정에 젖어 있는 것조차 이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을 뿐 아니라, 한낱 감정의 사치로만 여겨질 수도 있기 때문임.

◆ 제재 : 가난(한 삶)

◆ 주제 : 따뜻한 인간애, 인간적 진실성과 아름다움



   [시상의 흐름(짜임)]

◆ 1 ~ 3행 : 가난한 이의 외로움(헤어짐)

◆ 4 ~ 7행 : 가난한 이의 두려움(현실)

◆ 8 ~ 11행 : 가난한 이의 그리움(향수)

◆ 12 ~ 15행 : 가난한 이의 사랑과 이별

◆ 16 ~ 18행 : 가난한 이가 모든 것을 버려야 하는 안타까움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라는 부제가 붙은 작품으로, 한 가난한 젊은 도시 근로자의 삶을 소재로 인간적인 진실의 따뜻함, 즉 휴머니즘을 노래한 시이다. 물질적으로는 가난한 자들이지만 외로움과 두려움, 그리움과 사랑을 가진 한 인간임을 시인은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가난 때문에 이러한 인간적 감정마저도 외면하고 살아야 하는 한 젊은이의 고통스런 삶을 통해서, 가난하고 소외된 삶에 대한 시인의 깊은 연대의식과 유대감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인간은 물리적으로 가난을 겪을 때 '외로움, 두려움, 그리움, 사랑' 등의 정신적 감정이 심화되거나 제한받게 되어 있다. 이 작품은 이러한 이유로 마음 한 구석이 움츠러들고 쓸쓸해 할 이 땅의 젊은이들을 격려하기 위해 쓴 것이다. 이 시 끝연에서 '가난하기 때문에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은 인내의 소산일 뿐이며, 인간적 진실성과 아름다움은 오히려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는 강한 역설이 숨어 있다.

집 뒤에 감나무가 있는 농촌 출신인 그는 물질적으로 가난하기 때문에 고향을 떠나 노동자로 생활하지만 생활에 쫓겨 외로움과 두려움, 그리움과 사랑 등을 느낄 여유조차 없다. 그러나 그는 가난하지만 외로움도 두려움도 그리움도 사랑도 다 알며, 또 가난하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을 다 버려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리지 않으려는 믿음과 진실됨이 있기 때문에, 그는 자포자기하거나 현실을 비정하게 생각하지는 않고 있다. 그러기에 비극적인 현실이 가난한 사랑 노래로까지 승화되는 것이다.

이 시는 결국 인간적 진실성과 아름다움은 가난에 의해서 결코 변할 수 없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노래하고 있다. 가난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려는 인간적 진실의 따뜻함과 아름다움이 설득력 있게 표현되어 있지만 '가난'을 대하는 그의 태도는 소극적인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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