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슴/노천명

2012.03.12 22:27

박영숙영 조회 수:659 추천:95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

관(冠)이 향기로운 너는

무척 높은 족속(族屬)이었다 보다.



물 속의 제 그림자를 들여다 보고

잃었던 전설을 생각해 내고

어찌할 수 없는 향수(鄕愁)에
슬픈 모가질 하고

먼 데 산을 바라본다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 → 사슴의 외면을 통해 정서(슬픔) 표출
                                                  슬픔의 원인은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에서 비롯된 것

    * 관이 향기로운 → '관'은 사슴의 뿔에 대한 은유이며, '높은 긍지와 자존의식'을 상징함

                                 공감각적 심상(시각의 후각화)

    * 높은 족속 → 자아의 정신적 고고성과 귀족성 암시

    * 물 → 자아발견, 자아성찰의 매개체

    * 잃었던 전설을 생각 → 자아의 원초적 근원(예전에 누렸을 아름답고 고귀한 모습)에 대한 발견

    * 어찌할 수 없는 향수 → 전설은 단지 생각만 할 수 있을 뿐,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향수에 잠길 수밖에 없음.

    * 먼 데 산 → '전설'과 동일한 의미를 지님

                        이상, 동경, 영원한 정신적 세계를 가리키는 말



◆ 주제 ⇒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이상을 추구하는 고독한 자아

◆ '사슴'의 모습은 ?

    ㉠ 시인 자신의 고독한 자화상(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던 시인의 외로운 모습 연상)

    ㉡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신의 고귀한 꿈을 지키며 외로이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

    ㉢ 높은 긍지와 자존의식을 가지면서도, 어떠한 자기위로로도 치유되지 못하는 고독이라는 상처를

                 안고 사는 외톨이의 자의식

    ㉣ 현실의 속된 모습에 어울리지 못하여, 현실세계보다는 어떤 먼 이상의 세계를 그리워하면서 물 속

                의 제 그림자를 들여다보는'자기애(나르시시즘)'에 잠기어 있는 자의 모습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사슴의 외면적인 특성(귀족적 품위)

◆ 2연 : 사슴의 내면적인 특성(동경, 향수)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겉으로는 사슴을 가볍게 스케치한 한 폭의 작은 그림 같지만, 사슴에게 인격을 불어 넣고 감정을 이입(移入)시켜 어느덧 사슴은 시인 자신의 모습으로 변모되어 독자 앞에 나타난다. 불행한 현실은 그것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없이는 사람에게 하나의 질곡(桎梏)일 수밖에 없는 것이리라. 거기에 바로 노천명 시인의 '슬픔'이 자리잡고 있다.

두 연만으로 된 단순한 구도의 이 작품은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라는 유명한 구절로 시작된다. 목이 긴 것과 슬픈 것과는 대체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대부분의 짐승들은 목이 짧다. 그런 가운데서 목이 길다는 사실은 그 자체가 남다른 모습이기에 홀로 외톨이가 되는 이유일 수 있겠고, 목이 길기에 높이 세운 머리가 더욱 오만하고도 고고한 외로움을 지니게도 할 듯하다.  이러한 사슴은 또한 다른 이들과는 어울리지 않고 혼자 말없이 점잖고 쓸쓸하게 살아간다. 이러한 모습에서 시인은 사슴의 먼 과거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향기롭고 우아한 뿔이 있는 것을 보면 무척 고귀한 족속이었는지도 모른다고 한다. 그래서 사슴은 때때로 물 속의 제 그림자를 들여다보면서 잃어 버린 전설을 떠올리며 어찌할 수 없는 향수에 먼 산을 바라본다. 그 때의 사슴은 더욱 가냘프고도 슬프게만 보인다.

이 시는 '사슴'이라는 객관적 상관물을 통해 시인의 사상이나 감정을 개성적으로 표현한 시로서, 세속에 물들지 않은 사슴의 귀족적인 품위와 고고한 아름다움에 감정을 이입시켜 '시인 내면의 근원적인 고독과 이상에 대한 향수'를 표현하고 있다. 현실의 세계보다는 어떤 먼 이상의 세계를 그리워하면서

정신적 고고함과 자기애에 빠져 버리고 있다. 현실과 타협할 줄도 모르고, 그렇다고 현실에 절망하지도 않고, 자기만의 세계에 머물러 있으면서 고독한 자아상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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