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상화

2012.03.12 22:30

박영숙영 조회 수:690 추천:101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 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 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가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같은 머리털을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 나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리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 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표현

      * 시각적 심상.  직유법,  의인법

      * 한국적 정서와 친근감을 나타내는 토속적 소재와 방언의 사용

      * 형태상의 균형미, 수미쌍관의 구성(질문과 대답의 형식)

      * 감상적, 낭만적 어조, 절망적, 자조적, 의지적 어조의 교차


◆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빼앗긴 조국의 현실을 인식하고, 국권회복 가능성에 대한 문제제기

                                                  역설적 의구심을 드러낸 강조어법

                        〔 들→국토(대유법),  봄→계절적인 봄과 조국광복과 희망을 상징(중의법) 〕

  *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 → 현실적 속박과 갈등을 벗어난 푸른 생명이 넘치는 자유로운 세계

  *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 의사표현의 자유를 박탈당한 답답한 민족적 현실

  * 바람은 내 귀에 ∼ 옷자락을 흔들고

        → 조국 상실의 현실에서 좌절하지 말고 신념을 가지고 이상을  향해야 한다는 자아의 충동을 표현

  *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 비로 인해 식민지의 고뇌가 일시적이나마 곱게 씻겼구나.

  *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 민족 전체가 봄을 느낄 수 없다면 나만이라도 가겠다.

  * 나비, 제비 → 변절자

  *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 → 전통적 한국의 여인네

  * 아주까리 ∼ 다 보고 싶다 → 민중들의 삶의 터전인 들판에 대한 강한 애정

  * 내 손에 호미를 쥐어다오,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 삶에 대한 적극적 의욕이 솟아오름에 대한 의지적 표현.

  *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 → 풍성한 생산과 따뜻한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이 땅

  *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우서웁다 답을 하려무나

       → 식민지 현실에 대한 허탈감을 자조적으로 표현. 낙망과 비애, 퇴폐와 허무감이 가득찬 자조의식

  *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 봄이 찾아온 국토에서 얻은 자연과의 일체감으로 인한 기쁨과 식민지적 상황에 대한 현실

                  인식으로 인한 슬픔이 교차되는 미묘한 심리상태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서 비롯된 시적자아의 고통을 구체화)

  * 다리를 절며 → 정서적 불균형의 행동화

  * 아마도 봄신령이 지폈나보다

       → 현실을 망각한 채 국토의 봄을 만끽한 것은 아마도 신이 내려 나도 모르게 봄의 자연에 취함

  *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 빼앗길 것 같기에 빼앗기지 말아야겠다는 이미지

                                                                            현실인식에 기초한 저항정신



◆ 주제 ⇒ 국권 상실의 아픔과 국권 회복에의 염원과 의구심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망국적 현실 환기와 문제제기

◆ 2연 : 몽환적인 상태에서 국토를 거닒

◆ 3연 : 답답한 천지의 침묵에 대한 항변

◆ 4연∼6연 : 자연과의 친화감 회복과 교감

◆ 7연∼8연 : 국토에 대한 애정과 삶에 대한 의욕

◆ 9연∼10연 : 천진한 혼과 절망적 현실에 대한 재인식

◆ 11연 : 현실의 위기감 확인 및 회복의지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작품의 서정적 자아는 봄이 찾아들기 직전의 들판을 거니는 한 사내라고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소재와 어조가 이런 판단을 가능하게 한다. 봄의 들판에 서서 시적 자아가 가장 처음으로 제기하는 것은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의구심이다. 이 때의 봄이 계절적인 봄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것은 너무도 자명하다. 계절적인 봄을 말한다면 그 의문 자체가 성립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질문을 통하여 우리는 서정적 자아가 자신이 처해 있는 현실을 직시하려는 욕구 또는 의지를 가진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시적 자아는 들판을 걸어간다. 시적 자아의 눈에 비치는 들판의 모습은 전통적인 삶의 터전이요 가장 한국적인 요소들로 가득차 있음을 발견한다. 그것들에 대한 시적자아의 극진한 애정 또한 느낄 수가 있다. 이 땅에 대한 애정이 강한 사람이기에, 아름다운 들판을 걸어가면서 자기가 현재 '빼앗긴 들'을 거닐고 있다는 사실을 가슴 아프게 환기하게 된다. 그는 '입술을 다문 하늘과 들'과의 대화를 시도하면서도 자기의 영혼을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이라고 자조섞인 고백을 하기에 이른다. 이 고백은 실제가 시적 자아 자신이 걸어가고 있는 시점을 모르고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질문으로 인한 혼돈의 표현일 것이다. 그 혼돈에 휩싸여 그는 계속 이 들판을 걸어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봄신령이 지폈다 보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들놀이' 끝에서 시적자아는 시의 첫부분에서 제기한 답을 스스로 구하게 된다. '그러나 지금은 -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가 그것이다. '빼앗기겠네'라고 하는 것은 '빼앗긴다'는 것에 대한 일종의 경각심을 동반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이 표현은 '지금은'이라는 단서를 붙임으로써, 앞으로는 들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며, 그렇게 된다면 봄을 빼앗기지는 않게 될 것이라는 의미를 은연중에 포함하고 있다. 즉 '지금은' 그렇지만 앞으로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강한 믿음을 시적 자아는 피력하고 있는 것이다.



[활동하기]

1. 이 시에서 우리 민족의  삶과 정서를 연상시키는 소재를 있는 대로 찾아보자.

⇒ 이 시는 바람, 종달새, 보리밭, 도랑, 나비, 제비 등의 친근한 자연물을 동원하고, '가르마 같은 논길', '삼단 같은 머리', '맨드라미 들마꽃', '아주까리 기름 바른 이'와 같은 향토적 정서를 자아내는 토속적인 표현을 하여 국토의 이미지를 생동감 있고 정겹게 그려내고 있다. 또 사투리를 사용한 것도 토속적인 정서를 환기하는 데 기여한다.



2. 화자가 자연적 대상을 살아 있는 듯이 묘사한 부분을 찾아보고, 시인이 왜 이렇게 표현했을지 생각해 보자.

⇒ 3연 : 하늘과 들이 입술을 다물고 있다고 하며, 말을 건넨다.

     4연 : 바람이 내 귀에 속삭인다고 한다. 종다리는 아씨같이 웃는다고 한다.

     5연 : 보리가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다고 한다.

     6연 : 착한 도랑이 노래를 하고, 어깨춤을 춘다고 한다.

     7연 : 나비와 제비가 재촉한다고 한다.

⇒ 이렇게 자연적 대상을 살아있는 듯이 묘사함으로써 우리의 국토를 친근하고 사랑스러운 대상으로 느끼게 하였다.



3. 이 시 전체의 시상의 흐름을 염두에 두고 '빼앗긴 들'에 대해 화자가 가지는 인식의 변화 과정은 어떠한지 정리해 보자.

⇒ 봄의 들판에 서서 시적 화자는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의구심을 갖는다.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시적 화자는 들판을 걸어간다. 그의 눈에 비치는 들판의 모습은 전통적인 삶의 터전이자 가장 한국적인 요소들로 가득 찬 곳이다. 시적 화자는 들판의 사랑스러운 모습에 극진한 애정을 느낀다. 그러나 시적 화자는 아름다운 들판을 걸어가면서 자기가 현재 '빼앗긴 들'을 거닐고 있다는 사실을 가슴 아프게 환기하게 된다. 그는 '입술을 다문 하늘과 들'과의 대화를 시도하면서도 자기의 영혼을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이라고 자조섞인 고백을 하기에 이른다. 시적 화자는 혼돈에 휩싸여 계속 들판을 걸어간다. 그러나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들놀이' 끝에서 시적 화자는 시의 첫부분에서 제기한 답을 스스로 구하게 된다. '그러나 지금은 -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가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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