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를 받을 때 말없이 사랑하여라.

by 박경숙 posted May 31,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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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이 없던 시절엔 남이 어떻게 생각해 줄지를 염두에 두지 않고 말하고 행동하다가 뜻밖의 오해를 받던 일이 많았다. 그만큼 자신은 떳떳하다고 생각했는데 받아주는 쪽에선 그렇지가 않음을 알게된 것은 불과 얼마전의 일이다. 좀 오래 살아 80까지 산다해도 벌써 반을 넘게 살아버린 이 나이에 와서 그것을 깨달았으니 철이 늦게 들어도 한참 늦게 들은 셈이다.

그러니 항상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얻어맞고 아픔을 당하는 미련한 삶을 살아왔다. 거기에다 딴엔 흑백논리가 분명한 지라 오해를 받으면 그것을 극구 해명하고자 하여 더 피가 터지는 아픔을 당하기가 일쑤였다.

그런 미련한 모습으로 새댁이 되었던 신혼시절, 생소한 시댁식구들과 억지 정들이기에 온 신경을 다 쏟고 있을 때 뜻하지 않은 오해에 휘말려 곤욕을 치르던 일이 있었다. 그것도 말하자면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생각해 주겠거니 하는 나의 바보같은 순진성에서 비롯되어 시작된 곤경이었다.

한마디로 약삭바른 처세에는 문외한인 내가 집안에서까지도 정치적인 처세를 해야 한다는 것에 몹시도 슬퍼져 앓아누워 있을 때, 홀연히 시아버님께서 방문을 하셨다. 시아버님은 내 핼쑥한 얼굴이 측은하신 듯 다정하게 말씀하셨다.
"얘야! 해명하려 하지 마라.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은 저절로 해명되기 마련이다."

그 말씀을 들으며 나는 울컥 치밀어 오르는 감정에 울음을 터뜨렸지만 지금도 가끔은 시아버님의 그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오해의 상황에서 해명하려 들다가 오히려 더 아픔을 당하는 미련한 사람이 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중학교 때였던가 하학길의 만원버스에서 옆에 서 있던 아저씨가 돈을 떨어뜨렸다. 나는 그 아저씨를 도와드리겠다는 생각에서 얼른 돈을 주워 드리려는데, 그는 마치 내가 그 돈을 가로채려는 것으로 생각했던 듯 매차게 내 손에 들린 돈을 나꾸어채고 나를 노려보는 것이었다. 어린 마음 안으로 슬픔이 가득 고여들던 순간이었다.

그 뒤부터 오해를 받음직한 선의는 행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해 왔지만, 내 삶은 언제나 실수 연발이었다. 오해 받을 것이 두려워 선의를 행하지 않는다면 세상은 메마름으로 가득차 버릴 것이란 멍청한 내 정의감에서 나름대로 행한 선의는 때때로 오해가 되어 나를 아프게 해 왔다. 결국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약삭빠른 처세를 해야만 지혜롭게 세상을 살 수 있다는 결론이 섰지만 아직도 나는 그것에 서투르기만 하다.

혹시 이글을 읽고있는 사람들 중에 나와 어떤 문제로든 오해의 벽을 둘러친 분들이 있다면 필자가 얼마나 약삭빠른 처세에는 서투른 현대의 희귀종인가를 알아주시기 바란다. 다만 흑백논리를 들어 분명하게 해명하려하지 않는 것은 연륜의 지혜 속에 한 말씀을 주셨던 시아버님의 그 한마디를 가슴 속에 새기고 있기 때문이다.

'해명하지 마라.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해명되기 마련이다.
라는 그 말씀을 말이다.

이민사회는 몹시도 특수한 곳이라 넓은 땅에 살면서도 인간관계는 좁게 얼키고 설키게 마련이다. 정이 많은 한국 사람들인지라 쉽게 친해졌다가 또 그만큼 쉽게 적이 되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얼마나 많은 오해 속에서 우리의 귀중한 삶을 손상시키고 있는지? 남의 나라 땅에서 서로 도와야할 이웃이 오히려 철천지 원수로 변하는 예는 많다.

조물주가 인간을 섭리하실 때는 서로 협동관계를 이루어 세상을 발전시키라는 의미였을진대 오늘날의 인간관계는 끊임없이 서로를 이용하려 들고, 그런 잔머리를 굴리지 못하면 바보취급을 받으니 사람이 이 세상에 생겨난 참다운 이유가 말살되어 버린 셈이다.

삶은 슬프게도 항상 오해를 낳고 그 오해의 슬픔 속에 웅크리고 앉아 [J. 갈로의 기도문] 중에서 '오해를 받을 때 말없이 사랑하여라'는 귀절을 되새겨 본다.

말없이 사랑하다보면 언젠가는 오해 속의 아픔이 이해의 사랑으로 변할 날이 있으리라는 것을 기다리면서 말이다.  

  
1998년 3월 LA KOREAN NEWS

(7년 전에 쓴 글이지만 다시 생각해 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