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한칸(1)

by 박경숙 posted Sep 04,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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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주말까지 합쳐 겨우 9일 간의 휴가 중 비행시간으로 이틀을 써버리고 나서도 벌써 닷새를 보냈다. 그 사이 아버지의 산소에 성묘하기 위해 단 한 번 대문 밖을 나갔을 뿐 나는 철저하게도 낡은 집과 늙은 어머니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머지않아 사라지고 말 이 집과 어머니를 내 눈과 가슴에 깊이 새겨두고 싶었다. 그런데 어쩌면 그 반대였는지도 모르겠다. 이곳을 떠나고 나면 낡은 이 집과 노쇠한 어머니에 대해 한 점의 아쉬움도 남기지 않으려고 한 시간을 하루처럼, 아니 한 달처럼 철저하게 아끼면서 보냈는지도 모른다 나는 허물어질 집과 어머니 사이에 버림받은 기다림을 남겨놓고서 내일 아침이면 다시 떠나야 한다.  
처음에 집이 헐린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고향으로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런데 몇 달이 지나 새 집을 짓는 일을 보류해 놓았다는 소식을 다시 들었을 때, 나는 갑자기 고향 옛집이 그리워졌다. 지금 어머니가 숨을 헉헉거리시며 임종을 앞두고 있다는 연락을 받게 되면 이억만 리에서 애써 비행기를 타고 가보아야 이미 뵐 수 없는 분이니 그만 체념하고 눈물이나 흘릴 일이었지만, 앞으로 몇 달 가량밖에 못 사실 거라는 연락을 받으면 얼마 남지 않은 어머니의 생애를 같이 보내고 싶어 먼 길을 달려가야겠다고 생각하는 것과 똑같은 심리였다.
곧 허물어질 집이나 어머니의 처지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나는 초조해 지기 시작했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집이 너무 낡아 이제는 더 지탱할 수 없는 지경인 것처럼 나를 낳고 키워준 어머니의 육신도 너무 낡아서 곧 허물어져 가고 있다는 사실은 내 분신이 이제 이 세상에서 마지막 고별을 고하게 될 것처럼 안타까웠다.  

하늘을 날아 넓은 바다를 건너고, 푸르른 들판과 산길 사이로 뚫린 고속도로를 달려 이틀 만에 고향집 앞에 도착했을 때 하늘엔 벌건 노을이 번져갔다. 옛집이 있는 골목어귀에 이르기 전까지만 해도 낯설게 들어선 상가건물들과 원색의 빛깔로 조밀하게 붙었던 각종 간판의 화려함에 비하면 그 집은 세월의 무게를 그대로 안은 채 초라하게 서 있었다. 낡고 얕은 시멘트 담장엔 여기 저기 홈이 파이고, 창살을 세운 초록색 철 대문은 칠이 벗겨진 채 붉은 노을 속에서 처참한 녹빛을 그대로 내보였다.
아주 오래 전에 저 낡은 시멘트 담장은 줄줄이 돌이 박힌 토담이었고, 초록색 철대문도 연 하늘색이 칠해져 있던 낮으막한 나무대문이던 때가 있었다. 어느 날 토담이 헐리고 시멘트 담장이 개축될 때 동네 사람들은 신기한 듯 이 집 앞으로 몰려와 구경을 하고 갔다. 대문을 받쳐주던 나무기둥이 뽑히고 직사면체의 육중한 시멘트 기둥이 세워진 옆에 페인트칠이 번들거리는 철제대문이 세워졌을 때도 사람들은 신기한 듯 옛집 앞을 힐끔거리며 지나갔다.
그런데 지금 이리 저리 깎이고 닦인 동네의 넓은 길 앞에 우리 집만이 초라한 모습을 하고 그대로 서 있었다. 길은 넓어지고, 질퍽한 속내를 그대로 드러내 보이며 온갖 구정물을 안고 흘러가던 수챗길은 복개가 되어 가리워졌고, 야트막한 지붕의 동네 집들은 대부분이 개축되어 옛 흔적을 찾아 볼 수 없었다.  
아! 웬일인가. 그 옛날엔 유행의 첨단을 걸으며 한해가 다르게 단장을 하던 우리 집만을 남겨두고 이 동네 사람들은 모두가 작당이라도 하여 신식 양옥집을 지었단 말인가.    
어머니는 또 얼마나 늙고 쪼그라지셨을까. 이 동네 사람들은 내 어머니만을 따돌리고 자기네끼리 불로초를 달여 먹고 저 새 집들 속에서 피둥피둥 살이 오르고 있는데 어머니는 이 옛집 속에서 홀로 허물어져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노을 속에 고즈넉한 옛집 앞에 서서 나는 성큼 안으로 들어갈 생각을 하지 못했다. 지난날엔 당연히 열려있던 대문은 굳게 잠겨있었다. 열려있던 대문이 닫혀있어야 하는 폐쇄의 당연성, 도시의 냉혹함과 경계심이 여기까지 점령했다는 생각에 씁쓸함을 느끼며 어딘가 벨이 있을 곳을 더듬어보았다. 여기던가. 내가 어릴 적 아버지가 늘 열려있던 대문에도 만약을 대비해 벨을 달아놓았던 곳이.....  대문 위 창살이 올라간 틈으로 손을 넣어 더듬어보았다. 터실터실하게 느껴지는 낡은 플라스틱의 촉감, 불에 불은 배꼽 같은 그 벨이 소리를 낼 것 같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그것을 힘주어 눌러 보았다. 용케도 벨은 작동을 하며 목 쉰 송아지의 비명처럼 외마디 소리를 질러대었다. 잠시 후에 누군가의 부산함이 안으로부터 느껴져 왔다. 미닫이 방문이 열리는 소리, 누군가 슬리퍼를 끄는 소리, 그 보다 더 아련히 들려오는 낮으막한 소리에는 늙은 어머니의 숨결이 묻어있었다.  아마도 대문을 열어주러 나오는 오빠 뒤에서 기운 없는 어머니가 열린 미닫이 문 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뭐라고 한 마디를 중얼거리고 있으리라.  나는 그때서야 울컥 밀려오는 그리움에 눈이 시려왔다.  철대문의 잠금 쇠가 열려지는 부산한 소리 끝에, 두 해 전에 할애비가 되었다는 오빠가 정말 할애비 같은 얼굴을 내밀었다.  
“어서 와라! 먼 길 오느라 고생이 많았지? 어머니가 너를 어찌나 기다리시던 지 하루 종일 애기처럼 보채서 혼났다. 허리만 안 아프셔도 벌써 마당까지 나와 계셨을 걸.....  어서 들어가자!”
오빠는 정말 노인 같은 말투로 나를 맞았다. 대문을 들어서니 부엌문 앞에 오도카니 서 있는 올케도 손주를 본 여인답게 당당하게 늙어있었다.  
“어서 오세요. 애기씨! 어머님부터 뵈어야지요.”
그녀는 할미답게 늙어있었지만 목소리는 시누이를 경계하던 새댁 때의 싸늘함이 그대로 남아있는 듯 다정하긴 해도 따뜻함이 배어 나오지 않았다.  
“야야! 이제 오냐?  내 새끼! 이제 오냐? ”
천천히 안채로 걸어가는 내 귓속으로 갑자기 가늘고 뜨거운 물줄기가 스며들었다. 어스름한 불빛 아래서 반쯤 열려진 미닫이 문 사이로 상체를 내밀고 깜박인다기보다는 뻐끔거리고 있는 듯한 어머니의 퀭한 눈이 그대로 내 가슴 안으로 박혀왔다. 나는 천천히 토방으로 올라서 댓돌 위에 신발을 벗어놓고는 아주 느릿느릿 어머니에게로 다가갔다. 모녀상봉의 의식을 정중히 치루어 내려는 것처럼......  그러나 사실은 정 반대였다. 12년만의 모녀 상봉이란 의식을 무시해 버리기 위해서 나는 그렇게 느리고도 천연덕스럽게 어머니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내가 태어난 방안에서 나를 낳아준 어머니는 귀뚜라미처럼 새까맣게 쪼그라진 채 얼마 지나지 않으면 그만 연필로 찍어놓은 까만 점만큼 작게 축소되어 버릴 것만 같았다. 늘 하얗고 폭신해 보이던 창호지가 깨끗하게 도배되어 있던 방벽엔 푸른 사방형 무늬의 벽지가 색이 바랜 채 발리워 있고, 지난 날 반듯해 보이던 벽면도 불룩 튀어나온 것처럼 보였다. 이미 휘어져버린 어머니의 등뼈만큼이나......  내가 방안을 휘휘 둘러봄이 무색했던지 오빠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올해 새 집을 짓는다고 도배를 안 했더니 엉망이구나! 여기 저기 기둥이 썩고 더는 버틸 수 없을 것 같아서 수리를 하느니 아예 허물어버리고 2층집을 지으려고 설계까지 했는데 그놈의  IMF가 뭔가 땜에 영 경기가 안 좋아서 당분간 미루었단다. 하긴 어머니 살아생전엔 집을 건드리지 말라는 아버님 유언도 있었지. 두 분이서 얼마나 공을 들여 이 집을 해마다 고치고 단장해 오셨는데...... ”
오빠의 말이 다 끝나지 않았는데 어느 결에 어머니는 그 낮으막한 목소리를 귀여겨들으셨던지 말참견을 하고 나섰다.
“아니다! 나 죽기 전에 새 집 지어서 나 양지바른 방 한 칸 다오. 느이 아버지는 낡은 집 고치다만 갔다만 나는 아들이 지은 새 집에서 살다가 느이 아버지한테 가면 자랑할란다. 평생 집 한 칸 못 지어 본 당신보다 아들이 낫더라고 말이다. ”
오빠의 얼굴에 서글픈 웃음이 어렸다.
“몸은 저렇게 되셨어도 정신은 말짱하시단다. 우리 어릴 때 어머니는 참 말씀이 없으신 분이셨다. 그런데 지금은 마치 애들처럼 하루종일 조잘거리신 단다. 가뜩이나 말수가 없는 네 올케가 어머니 말씀 받느라고 죽을 지경이지. ”
오빠가 서글픈 웃음을 흘리는 사이에도 어머니는 내 손과 볼을 쓰다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야야! 곱던 니 얼굴이 이게 웬말이냐? 곱던 내 딸이 왜 이리 됐냐? ”
나는 내 볼을 연신 쓰다듬고 있는 어머니의 손을 살며시 잡아보았다. 가시처럼 가늘고 거칠은 손, 그러나 동그랗고 커다란 손마디에서 나를 기르고 이 집을 가꾸어온 어머니의 따뜻함이 느껴져 왔다.
“엄마! 내 나이가 몇인데? 이제 당연히 늙는 거죠.”
어머니의 표정이 갑자기 아이처럼 실쭉해지더니 내 손안에서 가시 같은 손을 뿌리쳐 빼냈다.
“명군가 그놈! 너 채 갖고 미국 가더니 결국 너를 이렇게 만들어놓았구나. 이렇게 만들 걸 남의 딸 달라고 저 대문 밖에서 소리소리 지를 때는 언제고? 그 놈 하는 짓이 사내답고 패기 있다고 느이 아버지가 달랑 너를 내주고 말았지. 그래 그놈은 잘 산다던? ”
틀니를 낀 어머니의 목소리는 자꾸 입안으로 말려 들어갔지만 그놈은 잘 산다던? 하는 끝말에는 명확한 미움과 호기심이 어려 있었다. 이번엔 내 표정이 아마 어머니를 닮은 채 실쭉해 있으리라 생각하며 나는 어머니의 퀭한 눈을 외면하였다.
“내가 어떻게 알아요? 다 옛사람인데.....  잘 살겠죠 뭐. ”
벌써 육십 고개에 이른 오빠의 주름진 이마가 어두워졌다. 그는 무슨 말인가를 할 듯 하다가 이내 고개를 돌리더니 부엌 쪽에 대고 저녁준비를 빨리 하라며 죄 없는 올케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어머니는 오빠의 고함소리에 슬쩍 아들 눈치를 보더니 다리를 오그려 무릎을 가슴께에 붙이고, 이미 둥글게 굽어버린 등을 벽에 기대고 앉아 가시 같은 두 손을 무릎 위로 가만히 올려놓았다. 어머니의 마르고 검은 그 모습은 마치 한 마리의 검은 귀뚜라미가 애써 몸을 오그리고 있는 것 같았다. 무릎 위에 놓여있는 단단하고 검은 가시 같은, 아니 귀뚜라미의 가냘프고 검은 앞발 같은 어머니의 손을 만지면 금방 귀뚤귀뚤하는 서글픈 노랫소리가 울려나올 것만 같았다.

                                           [2]

내가 어릴 때 어머니처럼 저렇게 무릎을 모아 세우고 앉아 있던 마른 노인이 있었다. 항상 풀이 빳빳한 흰 무명치마 저고리를 입고 있던 외할머니는 귀뚜라미가 아니라 차라리 가늘고 몸이 푸른 한 마리의 여치 같았다. 마르고 늙기는 어머니나 외할머니나 똑같았지만 외할머니에게서는 왠지 모를 당당함이 느껴졌다. 어머니가 모든 것에 맥을 놓고 이미 늙은 육신에 대해 애착을 버린 채 새까만 귀뚜라미가 되어 버렸다면, 외할머니는 비록 늙고 마른 육신일망정 기품을 유지하려 애를 쓰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어머니의 모습은 조금만 건드려도 귀뚤귀뚤 서글픈 노래가 울려나올 것 같지만, 외할머니는 그렇게 쉽사리 소리를 만들어 낼 것 같지가 않았다. 그 대신 외할머니의 무릎 위에 놓여있는 마르고 긴 손가락을 잡으면 오랫동안 참아왔던 긴 한숨이 토해져 나올 것만 같았다.
사실 이 집은 외할머니의 집이었다. 예의범절을 고루 배운 양반가의 딸로 태어나 온갖 자수에 음식 솜씨를 익히고 머슴 놈들 등짝에 바리바리 짐을 실어 호사스런 혼사를 치렀다는 외할머니. 외갓집의 가세가 좀 기울고 있는 것이 마음에는 걸렸으나 그래도 양반가의 핏줄을 받은 데다 일제치하이긴 해도 외할아버지가 관직에 있는 지라 기품 있는 결혼생활을 시작했다고 했다. 그런데 해마다 아이를 배어 출산을 하여도 아이는 사산이 되거나 살아 나왔어도 사흘을 못 넘겨 죽기가 여러 번이었다. 여섯 번인가 실패 한 끝에 겨우 어머니를 얻고 두 해 뒤엔 경사스럽게도 아들을 얻었으나, 아들을 낳고 얼마 후 출장을 떠났던 외할아버지는 홀연히 시신이 되어서 돌아왔다. 외할머니의 나이 서른둘, 어머니는 세 살이었고 하나밖에 없는 어머니의 남동생은 핏덩이였다. 그렇게 얻은 아들마저도 훗날 잃어야했던 할머니의 한 많은 삶의 흔적이 곳곳에 배어있는 이 집, 이 곳에서 삶을 꾸려온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오빠와 나의 모습 안엔 한평생 아들을 기다렸던 할머니의 한숨이 묻어있음을 부정할 수가 없다. 과부가 되어버린 외할머니는 곤궁해지는 살림에 비록 자신의 혼수 옷을 고쳐 어머니에게 입히며 살아왔어도 양반의 체통을 잃지 않고 항상 걸음걸이마저도 품위가 있던 노인이었다.
“야야! 그러니까 니가 서른둘에 혼자되었냐? 어짜면 그리 니 외할머니하고 똑같더냐? 내 하나 뿐인 딸자식이...... 그게 격세유전이라고 하는 게지. 니 외할머니는 그래도 자식이라도 낳고 남편하고 사별했다만 너는 어찌 포태 한번 못해보고 생이별이 라냐? ”
어머니는 멀거니 초점을 잃은 내 눈동자 속에서 어느새 외할머니의 그림자를 느꼈던지 틀니 사이로 우물우물 말을 삼켰다. 내가 어머니의 겉모습에서 외할머니를 그려내고 있는 사이 어머니는 나를 보며 외할머니를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 놈이 딸 달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온 동네 소문을 내고 너를 다른데 시집도 못 가게 하더니만.....”
아직도 어두운 이맛전을 한 오빠의 눈치를 실근실근 살피며 어머니는 다시 한번 중얼거렸다.
그래! 그랬었지! 저기 저 초록색 철대문을 쾅쾅 두들기며 그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던 봄밤이 있었지.  
“나는 금지를 사랑한다! 나는 금지를 사랑한다!”
온 동네가 떠나갈 듯 내 이름을 부르며 그 봄밤을 떠들썩하게 만들던 그는 그 박력에 반한 아버지와 청주 몇 잔을 나눈 끝에 기어이 나를 차지하고야 말았다. 그런데 그의 사랑은 그 봄밤에 그렇게 와르르 쏟아지는 폭포처럼 충격적인 고백이었듯이 그의 결별도 갑자기 흐르던 폭포가 멈추는 것만큼이나 충격적인 것이었다.
졸업 전부터 유학을 준비하고 있던 복학생 명구선배와 별 맘 없이 차를 마시고 저녁을 먹고 의미가 있을 리 없는 시간들을 보내다가 졸업을 하자 나는 당연히 짐 보따리를 싸들고 고향집으로 와버렸다. 시집을 오라는 남자도 없었고 와서 일을 하라고 붙드는 사무실 한 군데도 없었던 이유도 있었지만 그간 학창시절을 보낸 도시생활의 외로움에 고향집의 아늑함 속에 몸을 묻고 싶었던 까닭이다. 그러나 막상 짐을 꾸리려니 고작 이렇게 돌아가자고 힘들게 공부를 했던가 싶은 생각에 마음이 쓸쓸해 올 때 명구 선배가 불쑥 내 하숙방으로 찾아왔다. 그는 박스에 내 책들을 담아주기도 하고 이불 보따리를 묶어주기도 하면서 무슨 말인가를 할 듯 하더니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자정이 가까워서야 돌아갔다. 다음 날 나는 예정대로 화물로 짐을 부치고 간단한 옷가방만 하나 든 채 고향으로 향했고, 봄기운이 피어나던 고향집 담장엔 새순이 돋는 늘씬한 목련나무가 나를 반기고 있었다.
귀향의 포근함, 그러나 왠지 무엇인가를 잃고 돌아온 것 같은 허전함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대학 4년 동안 그 흔한 연애다운 연애 한번 못 해 본 것은 내 탓이 아니었다. 남보다 밉게 생긴 것도 아니면서 남들 다 갖는 여자다운 요기가 내게 없던 것은 나를 양육해 준 외할머니의 지나친 유교적 교육 때문이었다. 가끔은 예쁜 처녀라는 칭찬을 들으면서도 나는 매력 있게 웃을 줄을 몰랐다. 나의 치아는 하얗고 가지런했으며 입술도 제법 도톰하고 아름다웠다. 입을 벌려 웃을라치면 얼마든지 사내를 녹이는 웃음을 지을 수 있는 조건을 가진 터였다. 그러나 외할머니의 목소리는 격언처럼 내 귀에 박혀있었다.
함부로 웃지마라! 여자는 웃음을 허피 보여서는 안 된다!
그러니까 외할머니의 말씀은 여자는 함부로 감정을 발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자라면서 어머니가 마음껏 웃는 모습을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 어머니의 얼굴은 우스운 일을 만나면 차라리 찡그려졌다. 웃는 모습을 나타내지 않으려 그렇게 한다는 것이 오히려 괴로운 사람처럼 보여지는 것이다. 그런데 좋은 일도 나쁜 일도 그저 똑같은 표정으로 담아내며 묵묵히 집안일에만 열중하던 어머니가 햇살이 장지문 사이로 오롯이 스며들던 어느 밝은 대낮에 아버지의 점심상 앞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 장면은 내 기억 속에서 항상 고요하던 어머니의 모습 사이에 끼워져 있었다. 그 당시 너무 어렸던 나는 그저 어머니의 눈물을 따라 앙앙 울어버렸고 어머니는 아직 점심을 다 마치지도 않으신 아버지의 무릎에 얼굴을 묻고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내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나는 어머니의 돌연한 눈물이 아버지의 단 한번 난봉기를 붙잡았던 것을 알았다. 아마도 외할머니는 그 장지문 밖에서 기품 있게 허리를 펴고 어머니의 울음을 눈치 채고 계셨을 것이다. 요염하기로 장안에 소문이 난 기생과 바람을 피우던 사위를 가라앉히기 위해 할머니는 그날만은 어머니의 감정 발산을 허락하셨던 지도 모른다.
아무튼 내가 연애자국하나 찍히지 못한 재미없는 처녀로 고향에 돌아왔을 때 외할머니는 벌써 세상을 떠나신 후였다. 나에게 함부로 웃지도 울지도 말라고 참견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나는 벌써 외할머니의 여성 억압 정책에 잘 길들여진 작품이었다. 그러나 외할머니가 이미 떠나시고 난 그 때 나의 작품성을 감상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아버지는 과년한 처녀가 애인 하나 물지 못하고 혼기가 되어 방구들만 깔고 앉아있으니 걱정이라는 듯 한숨을 쉬었다.  
내가 무르익는 봄기운에 나른한 하품을 해대며 재미도 없는 레이스 뜨개질에 억지로 정신을 팔고 있던 어느 밤, 유난히 포근한 기운이 나로 하여금 공연히 마당 가운데를 쳐다보게 만들었는데 어느새 목련은 하얀 얼굴을 어둠 속에서 활짝 열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둠 때문에 더 유혹적으로 보이는 목련의 하얀 얼굴에 왜 그런지 가슴 언저리가 저려오던 순간 갑자기 대문 밖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부산하게 뛰어가는 소리 같기도 했고 술 취한 남자가 싸움판을 벌이려는 전초전의 불안한 기운이 감돌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돌연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대는 명구선배의 목소리가 우렁차게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나는 금지를 사랑한다!  나는 금지를 사랑한다! ”
그 소리는 적어도 10번 이상이나 반복되었다. 똑같은 단어의 반복이었지만 소리의 강도는 말이 반복될수록 더 강해져갔다. 내가 손에 들고 있던 뜨개질 감을 집어던지고 마루 끝에 서서 어쩔 줄 몰라 할 때 야트막한 담 너머로 동네 사람들이 하나 둘 우리 집 대문께로 몰려드는 것이 어둠 속에서도 눈에 잡혀왔다. 그들은 우리 집 토담이 시멘트 담으로 바뀌어 쌓일 때처럼, 나무대문이 초록색 페인트가 반짝이는 철대문으로 바뀔 때처럼 슬금슬금 모여들었지만 어둠 때문에 가늠할 수 없는 그들의 눈빛이 호기심과 비웃음으로 범벅이 되어 버렸으리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연속되는 명구 선배의 행패에 가까운 사랑의 고백에 내가 사색이 되어있을 무렵 그는 내 오빠의 거센 손에 이끌려 그만 나의 정다운 옛집으로 발길을 들여놓고 말았다. 물론 그는 술에 엄청나게 취한 채였다. 버릇없는 녀석이었지만 허우대가 멀쩡한데다가 머리가 좋아 미국의 유수한 대학에 장학금까지 받아놓은 처지라니 그렇게 밉게만 볼 것도 아니라는 듯 아버지는 그에게 술잔을 내밀며 딸을 데려가라고 허락하셨다. 내가 그를 따라 미국에 가기 위해 수속을 서두른 것은 아버지의 허락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명구 선배의 사랑을 받아들였던 때문도 아니다. 명구의 고함소리에  슬금슬금 우리 집 대문 앞으로 몰려와서는 저희들끼리 수군거리던 동리 사람들의 표정을 정확히 바라볼 수 없게 하던 그 어두웠던 봄밤의 불명확한 유혹의 기운 때문이었다고나 해 두자. 나는 벌써 하얀 목련이 어둠 속에서 처량하리만큼 아름다운 얼굴을 쳐들고 있을 때 가슴 언저리가 까닭 없이 저려옴을 느끼고 있지 않았던가. 그것은 알 수 없는 갈망의 조짐이었다. 그렇다! 나의 갈망은 그 봄밤에 그렇게 이 옛집에서 문을 연 것이었고, 하필이면 명구는 그 밤에 우리 집 대문 앞에 대고 내게 사랑의 고백을 했다. 사실 그의 고백과 내 갈망의 시작 사이에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었다. 그것은 다만 시간적인 우연의 일치에 불과한 것이었다. 나는 그와 나의 연관성 없는 행위의 동일한 시간성 안에서 수군거리던 동리 사람들의 희끄무레한 실루엣을 곁눈질하며 다만 이상한 부끄러움을 자각했을 뿐이다.   나는 그 부끄러움 때문에 그를 따라 비행기에 올랐다. 연애 자국하나 찍어오지 못한 밍밍한 처녀가 갑자기 무수한 연애자국으로 점철된 화려한 처녀로 오인되는 그 모순을 동리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지우는 길은 그 길밖에 없었던 것이다.

유학생의 아내로서 고달픈 이역만리의 생활을 무사히 견디어 낸 것은 좋은 일에도 궂은 일에도 내색 하지 말라는 외할머니의 가르침 때문이었다. 그 어려운 세월을 견디어 준 내게 고마워하며 명구 선배가 새 직장에서 제법 괜찮은 수입을 벌어들이기 시작했을 때 우리는 그 동안 미루어왔던 아이 가지기에 심혈을 기울였다. 나의 달거리 날짜에 신경을 쓰는 것은 나보다도 오히려 그가 더 심했다. 내가 생리혈을 막아내려고 옷장 안의 생리대 뭉치를 찾을라치면 언제나 한숨을 쉬는 것도 그였다.
“피임을 너무 오래했던 가봐. 5년 동안이었어. 어려운 생활에 아이가 생길까봐 피임약을 복용한 게...... ”
그는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비극을 만난 사람처럼 혼잣말로 중얼거렸는데 마치 자기가 피임약을 복용했던 불편을 겪었던 것 같이 말했다. 정작 체질에 맞지 않는 피임약을 복용하며 헛구역질까지 해댔던 것은 나였는데.......  
아이의 양육비가 지출되지 않는 그의 넉넉한 수입으로 나는 매달 정확히 날짜를 맞추어 달거리를 하게 되는 날이면 소소한 물품들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부피에 비해 터무니없이 비싼 비엔나 산 크리스탈 장식품이라던가 골동품 가게에서 나무로 만들어진 낡은 새집을 사들인다던가.....  값비싼 크리스탈 장식품은 부피가 제법 큰 식탁용 촛대에서부터 손가락만한 꼬마인형까지 그 숫자가 늘어갔다. 겉 표면이 터실거리는 나무에 수성 페인트칠을 한 새집들도 그 모양과 색깔이 가지각색인 채 거실을 점령했다. 그는 그것들을 바라보며 점점 얼굴을 찌푸려가더니 언젠가부터 내 소장품의 숫자에 비례하여 외박 횟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처음엔 친구하고 한잔, 일 때문에로 얼렁뚱땅 얼버무리다 나중엔 그것도 시들한지 아예 변명도 하려들지 않았다.  
내가 생활에는 아무 소용도 없는 물건들을 모아들이는 것에도 스스로 지쳐갈 무렵, 그에게 아이가 생겼다. 그에게 아이가 생겼다는 말은 그의 아이가 여자의 뱃속에 생겨났다는 말이었다. 차라리 무슨 영화에서처럼 남자인 그의 뱃속에 아이가 생겨날 수만 있었다면 나는 이혼녀란 이름만은 모면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영화가 아니었다. 그의 뱃속에 아이가 생겨나기는 불가능했고 나의 뱃속에 아이가 생기는 것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 일이었다. 그의 아이는 한국말을 겨우 더듬더듬 구사하는 이민 2세 처녀의 배 안에 생겨나고 말았다. 그들이 어디서 만나 어떻게 사랑을 나누었건 나는 알 바가 아니었다. 그 넓은 남의 나라 땅, 한인 사회는 좁아터진 곳임으로 그녀와 그가 만날 우연이나 필연은 얼마든지 널려있는 일이다. 외로움의 숫내를 풍기기만 하면 잔뜩 물이 오른 처녀가 저절로 암내를 풍기며 그들은 어느 결에 암수의 교착상태를 이루고 마는 것이니까.
그녀의 뱃속에서 아이가 뛰쳐나오기 전에 나는 거처를 옮겼다. 그러나 내가 애써 모은 소장품들은 그대로 그 자리에 두고 왔다. 그것들은 그대로 아이를 갖고 싶은 명구의 소망과 내 허망한 달거리 사이에서 태어난 그 집의 자식들이었다. 그 집을 떠난 나에게 있어서는 아무 소용이 없어진 물건들을 명구는 쓸어내다 버렸는지 아니면 물질적 가치를 계산하여 누구에겐가 헐값으로 팔아버렸던지 조금 더 미화시켜 상상하면 그래도 그 봄밤, 내 옛집의 대문 앞에서 목이 터져라 사랑을 고백하던 순간을 생각하여 그대로 지니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다만 그는 법정의 판결에 따라 내가 자립할 때까지 보내주기로 한 얼마간의 생활비를 5년 가깝게 꼬박꼬박 부쳐오는 것으로 내게 진 빚을 갚고 있다.

                                           [3]

잠을 청하려고 자리에 누웠다가 문득 그 밤의 목련이 생각나서 미닫이문을 살며시 열어보았다. 누렇게 색이 바랜 창호지가 발리운 나뭇살 문이 가볍게 열리려다 문틀에 걸려 잠시 삐거덕거렸다. 아마도 문틀의 나무마저도 비틀어진 모양이었다.
그래도 건축 감정가에 의하면 한 2년은 더 이 집 기둥이 버틸 수 있다지. 그 사이 IMF도   풀리고 오빠의 건축자재 사업도 경기가 좋아지면 이 집은 허물어지고 만다. 어차피 세상      안에서 더 버틸 수 없는 것은 사라지는 게 인지 상정이니까.
나는 중간에 걸린 채 멈춰있는 장지문을 마저 열으려다 어느새 콜콜 코를 고는 어머니의 잠든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자그마한 몸집을 웅크린 채 잠이 든 어머니의 모습은 언뜻 여자의 뱃속에서 몸을 웅크린 태아처럼 보였다. 가느다란 뼈 위에 최소한의 살갗만을 입고 주름살 투성이의 얼굴로 몸을 웅크린 태아, 생기지도 않는 아이를 위해 명구가 사들고 왔던 육아백과 사전에서 눈이 시리도록 바라보던 태아의 모습과 흡사했다. 생각하면 사람이 생겨나는 모습과 스러지는 모습이 저렇게도 닮아있는 것인가 싶었다.  코를 골던 어머니가 내 눈길을 의식했던지 잠깐 몸을 뒤채었다.
다시 비틀린 문틀 사이에서 멈춘 미닫이문을 붙잡고 이리저리 밀어보았다. 비틀린 나무 틈을 조금 지나고 나니 문은 예전처럼 쉽게 밀어졌다. 나는 대문 옆 담장께로 눈길을 던져 황망히 목련나무를 가늠해 보았다. 어둠 속에서 희뿌연 담장의 윤곽이 길가 가로등 불빛을 받고 초라하게 서 있었지만, 그 담장 밑에 서 있을 목련나무는 눈어림으로 찾아보아도 보이질 않았다.  아마도 나 떠난 후의 어느 날 아버지의 톱질에 그 목련나무는 비명도 못 지른 채 둥치를 절단 당했던 것이 아닐까. 딸의 이혼 소식에 분개하던 아버지가 그 목련이 피던 밤을 떠올리며 명구의 사지대신 목련의 둥치라도 잘라내며 분풀이를 하셨을까. 그 후 한 1년이나 앓다가 돌아가셨다던데...... 면목이 없어 돌아와 보지도 못 했던 이 고향집에서, 나는 한밤중에 목련의 실루엣을 찾다가 그만 제풀에 실없이 웃어버렸다. 생각해보니 지금은 이미 목련이 지고 없을 초여름이었다. 아마도 지난봄에 꽃을 피우던 목련나무는 그 세월 사이 가지를 살찌우고 거기 그대로 서 있으리라. 내일 아침 햇살이 밝으면 거기에 그렇게 서서 나를 바라보며 반기리라.

“아니 한금지씨! 이번 주 들어 양희은의 하얀 목련이 벌써 몇 번째예요?”
김 부장은 나를 힐책하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나이 먹은 것이 험이긴 해도 신문방송학과 출신에 적은 월급이라도 군소리 안 하겠다기에 일자리를 주었더니 웬 주책이냐는 말을 그는 애써 삼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봄이잖아요! 청취자들이 봄을 물씬 느끼게 해 주어야지요. 고향의 봄을 틀을 수는 없구......”
내가 너스레를 떨자 김 부장은 더 한심하다는 듯한 눈빛이었다.
“한 금지씨 이 노래에 무슨 사연 있어요? 방송은 디스크자키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방송을 듣는 청취자들을 위한 것이란 정도는 기억해둬요. 더구나 여긴 행동반경이 적은 이민 사회예요. 시골 동네 유선 방송을 듣듯 대부분의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고 있다고요. 선택할 수 있는 싸이클이 많은 것도 아닌데 같은 곡이 그렇게 여러 번 나가면 어떻게 해요?”
김 부장은 정확히 말하면 나보다 한 살 아래였으나 내게 윗사람 노릇을 톡톡히 하는 내 상관이었다. 그도 그 짓이 좋아 이 바닥에까지 와서 방송쟁이 노릇을 하고 있지만 박봉으로 가정을 꾸리자면 답답할 것이었다. 얼마 안 되는 월급을 받으며 그래도 가끔 아랫사람에게 호통이라도 쳐봐야지만 속이 풀릴지도 모를 일이다.    
“알겠습니다. 지금부터 내년 봄이 되기 전까지는 절대로 하얀 목련은 틀지 않겠습니다.”
나는 머리를 조아리진 않았지만 정색을 하고 그에게 사과했다.
“맨날 그 날씨가 그 날씨인 이 LA 바닥에서 계절의 경계선이 어디 있다고 봄 타령이람! ”
그는 혼자 투덜거리며 스튜디오를 나갔다. 하얀 목련은 양희은의 음성이 가라앉으며 끝나가고 있었다. 김 부장은 정확히 하얀 목련이 시작되었을 때 자기 사무실에서 발을 떼어 내게로 왔다가 하얀 목련이 끝날 때에 자기 자리로 돌아가 앉았을 것이다.
명구가 보내주는 생활비로 그럭저럭 궁색하지 않은 생활은 꾸릴 수 있었지만 소일거리를 찾아 여기저기 수소문을 하다가 이민방송의 말단 디스크자키가 된 것이 벌써 6개월 째였다. 첫해에 겨우 1주일 주어지는 휴가에 맞추어 고향집을 12년 만에 방문한 것에는 나도 알 수 없는 이상심리가 괴어있었다. 일을 시작하기 전 지천으로 시간이 남아 돌 때는 그렇게 한번 다녀가라는 어머니의 간곡한 부탁에도 끄덕 안 하던 내가, 집이 곧 헐린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던 내가 이 짧은 휴가 기간에 그것도 집이 헐리는 일에도 좀 유예기간이 생겼다 싶을 때서야 고향집을 방문하고 싶어졌던 것은 이상한 일이다. 어쩌면 요즘 들어 부쩍 열을 내는 마이클의 성화를 피해보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내가 살고 있는 백인 지역 아파트에서 처음엔 백인 이웃과 담을 쌓다시피 지냈는데, 한인방송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부터 묘하게도 그 백인 이웃에게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온통 한국사람과 한국음악에 휘몰리다 겨우 돌아와 아파트의 현관문에 열쇠를 꽂을라치면 여기저기서 가느다랗게 울려오는 영어의 뉘앙스가 갑자기 상쾌하게 느껴졌다.
어찌 생각하면 그것은 삶에 대한 일종의 방관이었다. 내게 얼룩져 있는 명구로부터의 상처, 삶의 존속을 위해 궁색하게도 끼어 들어간 이민사회의 직장, 나를 식상케하는 것들로부터 도피를 꾀한다는 것이 백인들과의 무책임한 인간관계를 만들어 냈는지도 모를 일이다. 원래 언어란 인간의 마음을 교류하기에 완전한 도구는 아니었지만 서로 다른 언어를 구사함으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감정 교류의 불투명함, 그로 인해 허술해지는 상대에 대한 감정의 경계선은 나를 편안하게 했다. 그런데 그 허술해 보이던 감정의 경계선은 사실은 함정이었다. 허술해 보였던 것은 단지 언어의 경계선이었을 뿐, 수영복만 걸친 반나체의 몸으로 아파트 안 수영장에서 만난 마이클의 건장한 몸에서 북슬거리는 가슴 털을 바라보며 나는 무책임한 감정의 깊은 함정으로 침몰해 버렸다. 독신이고 엔지니어인 그가 나보다 세 살이나 연하라는 것을 알면서도 깊은 생각 없이 몇 번인가의 정사를 나누었다. 그처럼 쉽게 그에게 나를 방관해 버린 것은 외지에 홀로 버려진 나이 먹은 고아의 외로움과 명구의 욕망에 길들여진 내 육신의 명령에 의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결코 사랑이 아니었다. 서로 따로따로 사느니 집을 합치면 월세도 반으로 줄고 경제적일 수 있다며 미국식 동거를 제의해 오는 마이클의 성화로부터 잠시 피해있고자 돌연한 고향 방문을 결심하게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미닫이 나뭇살 문이 비틀어진 문틀에 다시 걸리지 않도록 조심스레 문을 밀어 닫고 어머니 옆에 살며시 누워 잠을 청해보았다. 아무리 눈을 감고 있어도 시차 때문인지 영 잠이 오지가 않았다. 웅크린 채 코를 골다가 무심결에 몸을 뒤채는 어머니에게서 좀약냄새 같은 것이 풍겨왔다. 봄이면 겨우내 입던 털 스웨터들을 세탁하여 옷장서랍에 넣을 때 신문지에 싸서 옷 사이에 집어넣던 그 박하덩어리 같던 좀약의 내음....... 섬유를 갉아먹는 미생물을 죽이기 위한 약과 황폐해지는 어머니의 육신에서 풍기는 냄새가 비슷하다는 것이 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사람의 육신은 허물어지면서도 살아남고 싶은 욕망에 스스로 삶을 지탱할 어떤 화학물질을 스스로 생성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낡아지는 육신과 끊일 줄 모르는 삶에 대한 애착 사이에서 생겨나는 이상한 체내의 화학반응으로 어머니는 저렇게 좀약냄새를 풍기며 코를 골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니 외할머니에게서도 항상 저런 체취가 풍겨왔던 것 같았다. 삶과 죽음 사이의 내음.....    
누비이불이 말려 올라간 사이로 어머니의 메마른 종아리가 가느다란 막대기에 아무렇게나 말아놓은 누더기처럼 어둠 속에서 초라했다. 어머니는 그 볼품없는 다리로 두어 번 허공에 대고 발길질을 하는 시늉을 하더니 돌아누웠다. 꿈을 꾸고 있는지, 아니면 잠결에 다리가 저린 까닭인지도 몰랐다. 갑자기 갈색 털이 북슬거리는 마이클의 단단한 종아리가 떠올랐다. 그의 머리칼은 금발에 가까운 밝은 갈빛이었으나 가슴과 다리엔 검은 색에 가까운 털들이 무성하였다. 어머니의 초라한 종아리와 마이클의 유혹적인 다리 사이....... 이 옛집에서 태어나고 자라 이 집에서 결혼의 운명이 지어지던 나와 미국의 마이클 사이에는 땅의 거리와 세월로는  가늠할 수 없는 아득함이 놓여있다. 그 거리를 잴 수 없는 아득함 사이에서 불쑥 외할머니의 얼굴이 나타났다. 기름한 얼굴에 거의 백발이 된 머리를 은비녀로 쪽 지어 얹고 얇은 입술을 꼭 다문 모습, 오랜 세월 전에 삶의 피안 저쪽으로 옮겨가 버린 할머니의 모습이 이 옛집과 내 삶의 아득함 사이에서 서 있었다.
몸을 웅크리고 잠이 든 어머니의 체취..... 삶과 죽음 사이, 어머니의 초라함과 마이클의 유혹적임, 옛집과 미국, 하얀 목련과 상처, 내 삶과 외할머니...... 내 상념은 쉬지 않고 펼쳐졌다.
왜 그런지 머릿속이 뒤죽박죽이 되는 듯 하며 어지러움이 밀려왔다. 슬픔이 밀려오는 것인지 졸음이 밀려오는 것인지 분명치 않은데 심신은 더없이 피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