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에 관하여

by 박경숙 posted Apr 24,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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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은 운명이다. 그러나 그 만남을 어떤 만남으로 조정하는가는 인간의 의지에 달려있다."

이 말은 김우종 씨의 수필집에서 기억에 남는 구절 중의 하나이다.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 속에서 우리는 기쁨과 허무의 감정이 교차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어느 날 나는 창밖을 보고 있다가 그 만남의 허무감에 이런 시를 한편 지었다.

날마다 같은 자리에 앉아 바라보는 창밖이지만
단 한 번도 똑같은 느낌을 받아 본 적이 없다

산빛은 늘 변했고
하늘빛 또한 변했으니까

산 밑의 작은 들판 풀섶은 어느새 파랗게 몸을 세웠다
어느 땐 그 풀섶에
스쳐간 누군가의 얼굴을 포개어 보았다
허무.......

인간사 만남과 헤어짐의 허무가 초록이 되어 창을 메웠다

하늘이 파랗고
들판은 베이지 빛을 발하던 날이 있었다
그 때
내 창엔 뜻밖의 평화가 찾아 들었다
허무와 희망이 뒤섞여
무채색이 되어버린 산등성이,
그곳엔 아무의 얼굴도 없었다

세상의 모든 일에 우연이란 없다고 한다. 알고 보면 섬세한 필연의 운명 안에서 사람들은 만나게 된다. 그러나 헤어짐은 너무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요즘의 세태가 아닌가 한다. 그 필연적인 만남의 아무런 성과도 없이 만남은 휴지처럼 내팽개쳐져 허무의 바람으로 우리 주위에 풀풀 날린다.

어차피 만남 안에는 헤어짐이 잉태되어 있다. 아무리 고귀한 만남이라도 헤어짐이 없는 만남이란 있을 수가 없다. 사람이 태어나면서 언젠가는 죽을 것을 예비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예비 된 헤어짐 때문에 만남의 시작부터 슬퍼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언젠가는 죽을 것을 알면서도 살아있는 동안 행복한 삶을 영위하려는 것처럼 주어진 만남 안에서 진실 된 인간애의 흔적을 남기려 노력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 될 것이다.

그 만남 안에는 나를 슬프게 하는 만남, 나를 괴롭히는 만남도 있을 수 있다. 우리는 그러한 만남들 안에서 자기를 성찰할 수 있는 지혜를 지녀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 만남은 자신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분노하는 사람을 보면서 내 안에 분노가 있음을 느끼고, 사랑하는 사람을 보면서 내 안에 사랑이 숨 쉬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만남 자체의 소중함을 안다면 그것을 가벼운 헤어짐의 허무로 처리해 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만남의 운명성을 느낀다면 어떤 만남에서건 만남의 소산을 끌어낼 일이다. 비록 그 만남이 슬픈 만남, 괴로운 만남일지라도 말이다.

우리를 슬프게 하는 만남일지라도 그래서 가슴을 뜯는 아픔을 겪을지라도, 어쩌면 그 만남은 사람의 둔탁한 영혼을 닦아줄 그런 것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괴로운 만남 일지라도 그래서 못 견디는 고통 속에서 나를 찌들게 할지라도, 어쩌면 그 만남은 내게 인내의 한계점을 연장시켜주는 내적 성장의 빌미를 제공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오늘 내게 허락된 만남이 어떠한 것이건 그 만남에 충실하고 싶다. 왜냐하면 만남은 언제나 새로운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삶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나를 둘러싼 수많은 만남들은 아프게, 슬프게 어느 땐 마치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내게 의미 지워진다. 그러나 고요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있으면 아픈 만남 안에 숨어있는 한 줄기 괴로움이 내 모난 마음을 깎아내고 있음을 느낀다. 슬픈 만남 안에서 흘러내리는 한 줄기의 눈물이 내 영혼을 씻고 있음을, 의미가 없어 보이는 만남 안에서 무의미가 깊은 의미가 되어 감을 느낀다.

어쩌면 만남은 인간의 본질을 정제하는 제련소와 같이 고통의 불길에 자기를 맡여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한 줌의 순수한 자기를 걸러낼 수 있다면, 그 만남은 비록 헤어짐이 되어버렸다 하더라도 순수로 걸러진 한줌의 내 안에 오래도록 남아있을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는 헤어짐이란 이름으로 변해 버릴 만남의 겉모습에만 열중한다면 그 만남은 금방 덧없는 허무가 되어버리고 만다.

내 가슴속에서 영원히 살아남을 만남의 소산을 위하여 오늘의 슬픈 만남을 껴안아 본다. 가시로 내 가슴에 찔려오는 괴로운 만남도 껴안아 본다. 그리고 지금은 기쁨으로 다가온 만남이지만 언젠가는 헤어짐이 되고 말 걱정에 벌써 아픔이 되어버린 만남도 껴안아 본다.

언제 또 하늘빛 변해가는 창가에 앉아 무채색의 산등성이를 바라보며 '그곳엔 아무의 얼굴도 없었다'는 읊조림 속에 침잠된 평화를 갈구할지라도 오늘의 만남은 나를 살게 하고 나를 자라게 한다.

                                                                                               (1997년 미주가톨릭다이제스트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