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질러 가다가

by 박경숙 posted May 16,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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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햇빛 속에 무심히 도시를 가로지르다
붉은 신호에 걸려 멈춘 자동차
건너편 텅 빈 길에 넝마가 떨어져 있다.
잿빛 뭉치에서 풀려나온 몇 가닥 붉은 실들·······

잠시 후 근시 선글라스 내 눈에 명확해진
그 넝마는
강아지 인지 고양이 인지  
살아 있던 것의 해진 몸뚱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그 위를 지나는 자동차들 무게에
그것은 자꾸만 납작해진다.

나도 숨을 멈추면 저것과 다름없을 허무한 몸뚱이
왜 그리 애면글면 산다는 것 뒤척였나.
길 위에서 길에 합쳐지는 것과
땅속에서 땅과 합쳐지는 것 뭐가 다르다고

5월에 피는 꽃들 뒤에
저렇게 죽어서도 아픔을 당하는 것 있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가지마다에
분홍빛으로 터진 저 꽃송이들
신의 열꽃이었나.
할말 다 못하고 떠나야 했던
생명 있던 것들 남모르는 절규  
바람으로 날리다
저리 붉게 응축 되었나.
오늘은 꽃이 꽃이 아니다.

분명 살아서 길에 뛰어 들었을 저 잿빛 뭉치
너덜너덜 해지는 것을 보며
열꽃 피우던 내 입술
꽃빛 띠우던 내 뺨
5월 가지 끝에 매달아 놓는다.

창백한 낯빛으로 가로질러가는
이 도시 한 가운데
꿈틀대며
내 안에 살아나는 것들
냉정히 밟고 지나가 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