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 50 주년 재상봉 소고

2015.07.31 07:43

노 기제 조회 수:296




20150622                        졸업 50 주년 재상봉 소고


   여고 졸업 50주년 재상봉 이란 잔치 초청장이 세계 각국으로 발송 되면서 미국 엘에이에 사는 나도 한 장 받게 되었다. 시큰둥한 표정으로 봉투를 뜯었다. 작은 꽃 둘림으로 꾸며진 예쁜 기도문이 잔잔하게 가슴을 파고든다.


   70 년 인생 살면서 누구하나 대단하게 나를 기억 해 주는 사람 있었던가? 내가 어디에 사는지,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고 있는지 물어 주는 사람 있었다는 기억이 없다. 나 스스로 찾아가 섞이고, 누군가를 기억 해 내고, 한 발 앞서 먼저 허둥대던 패턴에 외로움이 깃드는 시기였다.


   나를 찾아 준다. 나를 불러 준다. 여행에 초청을 한다. 호텔로 모신다. 나의 건강과 나의 안전과 내 가정의 평안을 위해 기도해준다. 이건 한 번도 멈춘 적이 없는 절대적 돌보심이란 생각이 나를 일깨운다. 어릴 적 이화동산에서 시작 된 이래 나의 어떠함에 상관없이 줄곧 이어져 온 따사한 손길, 바로 그것임을 느끼게 된 것이다.


   분명, 나와 똑 같은 만큼의 조건들을 갖춘 친구들이 몇 모여서 시작한 일이다. 그들의 마음을 뜨겁게 하고, 뜻을 모으고, 계획을 세우던 짧지 않은 시간들이다. 그들의 열정이 유지되고 급기야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었던 것은, 특별한 도우심이 있었음을 이제 우리 모두는 알아버렸다.


   이름 하여 회장단, 운영진이라지만, 그들이 모이면 기도가 시작되고, 모임 마치기 전 다시 기도가 하늘로 올려 졌으니 어찌 실패가 그들을 막을 수 있었겠나. 함께 모여 두 손을 모았을 그들의 얼굴 하나하나 떠 올려 보며 나도 그들의 건강과, 그들 가정의 평안과, 그들의 안전을 위해 온 정성을 다하여 기도 하고, 또 하고, 더 하리라.


   65 이화 여자 중고등학교 동창회. 2014년 12월, 재상봉에 맞춰 발간 된 수첩이다. 칠순을 바라보는 최근의 모습을 모으고, 주소 확인을 하면서 얼마나 많은 전화를 걸었을까. 얼마나 많은 이메일을 보냈을까. 얼마나 많은 날들을 기다림으로 잠을 설쳤을까. 대답도 없는 친구들. 회신도 안 하는 친구들. 찾을 수도 없는 행방불명인 친구들. 타계한 친구들. 날짜는 다가오는데 태평세월 묵묵부답인 친구들은 오죽 많았을까.

수년 동안 받아 본 수첩과는 달리 페이지 수가 많이 늘었다. 수첩이 두꺼워 진 이유가 감동이다. 이화여중 때, 처음 만나 첫정으로 친구가 되어 3년을 함께 했던 친구들 가운데 가까운 예고로 배움의 터를 옮긴 친구들을 찾아서 함께 모은 까닭이다.


   돌이켜 생각하니, 부끄럽고, 미안하고, 많이 죄스럽다. 건강이 따라주지 않아 끝까지 일선에 남지 못하고, 빛도 없이 투병중인 김경완을 위한 간절한 기도가 필요하다. 힘든 치료를 받으면서 불평 없이 묵묵히 혼신을 다 해 무거운 짐들 나누고, 싸고, 풀고, 옮기던 김채룡을 위한 특별한 기도를 해야겠다. 누군들 우리 나이에 힘이 남아돌아가겠나. 가정 일에 소홀했고, 식구들에게 미안하고, 자신도 피곤해서 날마다 얼굴이 밝지 못했을 친구들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갚을 수 없는 은혜를 받고 인사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했음을 이제사 깨닫게 됨이 안타깝다.


   이제는 내 삶으로 돌아 와, 우리의 재상봉 하루하루를 돌아본다. 어느 순서 하나 허투루 짜여 진 것이 없다. 모임 첫 날, 첫 시간에 이화교회에서 하나님과 대면하며 시작한 일정이다. 우리들 모두를 안온하게 무사하게 지켜주심을 확신하면서 친구들과 반가운 인사를 나눈다. 교회 마당에서의 점심시간. 예전에 없이 추억 앨범 만들기로 동행하게 된 프로 사진사, 첫날 박기순 선생님과 눈이 맞았다던 이지훈 오빠와의 만남도 재미있다. 특별한 달란트를 받아 십분 실력 발휘를 한 친구들의 작품 전시회장 관람도 놀라움을 안겨준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축복을 받으며 살았는가를 확인 시키는 좋은 증거인 셈이다.


   어디를 갔었는가? 전혀 중요한 주제가 아니다. 누구와 갔었는가? 바로 행복을 가늠할 수 있는 제목이다. 우린 그렇게 어깨를 나란히 정다운 친구들과 서울에서 시작해서 남해 바다까지 헤집고 다녔다. 아쉽게도 여섯 대의 버스로 나뉘었던 까닭에 아직도 얼굴 익히지 못한 친구도 있고, 이름 한 번 불러보지 못한 친구도 있다.


   그중에도 예고를 졸업한 친구들과 한 테이블에서 밥 한 끼 먹을 수 있는 기회를 잡은 행운도 있었다. 내게는 완전 새로운 경험이다. 이화여중이 아닌 곳에서 3년을 보내고 이화여고로 옮겨 온 나와 예고로 간 친구들과는 처음 만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김현실, 홍태기, 오상혜. 특별한 연유 없이 눈길이 몇 번 마주쳤고 기억에 남는 이름이 된 친구들이다.


   이번 큰 잔치를 진행한 이은숙 회장단과 그에 따른 운영진들의 노고에 감사를 드린다. 또한 그들의 뜨거운 가슴이 빚어 낸 4박 5일간의 향연을, 참가 했던 우리 모두의 마음이 오래 기억 할 것이다. 아울러 그들이 손을 모아 도움을 청했던 기도소리가 우리 생활에 영원히 울려 퍼질 것이다. 큰 사랑 나눔 잔치를 위한 그들의 기도를 옮겨 본다.

하나님 아버지

이화 동산을 떠난 지 50년이 되었습니다.

어릴 적 이화 동산에서 배운 기도를 따라

이 잔치를 앞두고 주님의 도우심을 구합니다

세계 각처에서 이 축제를 위해

모국을 찾아오는 친구들의

건강과 안전과 가정의 평안을 지켜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화의 마음을 잠시 잊은 것 있으면 용서하여 주시고

기쁨으로 주님과 이화 안에서 만나게 하여 주십시오

이때까지 이 땅에서 받고 누린 많은 축복을

후배와 모교의 발전을 위해서 베풀 수 있는

넉넉한 마음도 허락하여 주십시오

이 행사를 위해 애쓰는 임원들에게

지혜와 건강과 여유론 환경을 허락하시어

전념할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이렇게 하늘의 도움을 구하는 기도로 시작해서 마치는 감사기도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302명이 참가해서 5억 1천 2백 7만 6천원이란 천문학적 숫자의 장학금 모금이 이화 역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다시 한 번 기적을 구하는 기도를 하자. 투병중인 경완이와 채룡이의 건강을 하나님 손에 놓아 드리자. 우린 손가락 하나 까닥 할 힘도 없으니 온전히 하늘의 도우심으로 두 친구가 완전히 회복할 수 있도록 떼를 쓰자. 함께 힘을 모은 기도에는 기적이 따르기 마련이다. 우린 다시 각자의 처소로 흩어져 떠나 있어도 기도의 힘은 기적을 초래한다는 걸 믿는다. 마음을 합하여 뜨거운 기도를 쉬지 말고 하늘로 올려 드리자.


   경완이가 건강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설 수 있는 그 날까지 뜨거운 마음과 정성을 모으자. 채룡이의 완쾌 소식을 두 손 모은 채 기다려 보자. 행사를 위해 불철주야 혼을 불태운 친구들의 안녕을 우선순위로 마음 바쳐 기도 한다. 그리고 이화의 딸임을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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