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신고 좀 해주세요

2021.08.16 20:43

노기제 조회 수:9

 

HIT_5010.jpg

20201111                                              혼인신고 좀 해주세요

                                                                                                                 설촌

 

 

   “노선생님, 제가 영어를 못해서 그러는데 좀 도와주세요.” 내 영어도 시원찮은데 뭘 도와달라는 건가 되 물었다. 혼인신고를 하려고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는데 아직 확실하게 나서지 않는 남편의 태도에 자신이 하려고 결심을 했다는 얘기다.

   오랜 돌싱 생활로 중년을 훌쩍 넘긴 지인이다. 변호사에게 맡겨도 보고, 영어가 잘 되는 지인에게 부탁도 해 봤지만, COVID 19 때문에 관련 청이 모든 방문 업무를 중단한 관계로 인터넷을 통해야 한다. 그나저나 내 영어실력이나 인테넷 사용 실력이 누구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다. 그럼에도 도와 달라는 부탁을 받고 괜스레 어깨가 으쓱, 입이 벌어지게 신이 나더니 이어 고마운 마음이 뜨겁게 몰려옴은 뭔 상황인지 알 수 없었다.

   “이 나이에 재혼은 비지네스에요. 남편이 나를 원할 땐 사업상 필수인 중국어를 내가 감당할 수 있어서였고, 저는 렌트비, 생활비 걱정 없이 편히 여생을 살 수 있음에 재혼을 결정했어요. 남편은 하루하루의 사업 일정에 내 실력을 편히 사용하고 있으니 혼인신고가 급한 상황은 아니죠. 이미 살림은 합친 상태이고 사별한 전처랑 살던 집에 내가 들어갔으니 남편에게 혼인신고란 날마다 찾아오는 내일로 미루는 과제일 뿐이죠. 남편이 해결하겠다고 했으니 이제나저제나 눈치만 보면서 벌써 3년이 흘렀어요.”

   나 역시 혼인신고 마치고 결혼식 하고 사는 줄 알고 있었는데 아직 이라니, 똑 부러지게 야물딱진 사람이 어쩌다 이리 끌려다니고 있나 싶어, 선 듯 돕겠다고 나섰다. 변호사에게 의뢰는 했었단다. 남편이 사업상 중요한 일을 맡기며 곁다리로 부탁했다는데 처음 시작 단계는 접수해서 번호까지 받은 상태란다.

   접수 번호와 해당 관청 전화번호를 받고 지인의 사무실에서 오전 9시에 만나기로 했다. 내게는 전혀 경험이 없는 일이다. 차근차근 과정을 나열하고 물어야 할 사향들을 메모하고 해당 질문에 정확하게 맞출 대답도 준비한다.

   필요한 신청서를 받기 위해 여기저기 클릭클릭 하면서 더듬어 간다. 관계자에게 계속 전화하면서 오류가 생기지 않게 찾아가는 길이 만만치 않다. 어느 부서든 관공서에 전화 통화하기가 어렵다. 인내심을 요구한다. 대부분 기계가 응답하는 걸 잘 알아듣고 한 걸음씩 옮겨야 한다. 기다리는 시간이 보통 304050분 끝도 없다. 연결이 안 된 줄 알고 한숨 짓기 일쑤다. 아하, 이런 작업이니까 변호사들이 중단했던 걸까. 시간당 charge를 해야 하니 단골고객에게 민망한 일이겠다.

 

 

   세 시간가량 찐한 참을성으로 끝을 냈다. 일주 후로 받은 혼인신고 날짜를 남편의 싸인을 기다리는 도중에 속히 달려오지 않은 남편을 기다리다 화면을 날렸다. 다시 같은 과정을 차분히 밟아가며 3주 후에 둘이 직접 가서 필요한 과정을 거치면 법적으로 부부가 된다.

   펄쩍펄쩍 뛰며 좋아하는 지인을 보니 내가 더 기쁘다. 무엇인가 아주 중요한 일로, 필요로 하는 사람을 도와준 쓸모 있는 사람이 된 기분이다. 나를 믿고 의지하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부탁해 준 지인에게 두꺼운 감사를 보낸다.


회원:
0
새 글:
0
등록일:
2015.03.19

오늘:
0
어제:
0
전체:
96,6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