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130
                각자가 원하는 사랑표시의 다른 항목

                                                                                                                                    노기제


   사랑이라는 끈끈한 정으로 엮인 관계에서 가끔 일어나는 현상인가 싶다. 분명 사랑하는 사람인데, 메아리치듯 들려오는 소리가 골이 깊다. “ 아침은 뭐가 먹고 싶으냐고 왜 묻지 않느냐? 지난 며칠 동안 계속 내가 네게 물었으니 이젠 네가 내게 물어 봐야 공평하지 않느냐?” “내가 바빠서 내 강아지와 못 놀아 줬는데, 이제야 좀 함께 있는데 왜 데려 가느냐?”

   신경이 쓰이는 친구다. 평생을 공식적 솔로로 살고 있는 중학교 동창이다.  확실한 병명이 있어서 뭔가 도와줘야 할 것 같은 상태라는 것이, 내가 그를 자주 방문하는 이유다. 지금은 왕래를 끊은, 조카들이라도 있으니 나까지 넘치게 걱정 할 필요는 없었는데,

   수술도 할 수 없는 상태의 뇌종양. 게다가 우울증이 심해서 때론 죽은 듯,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하며 혼자 견디는 날들이 많다는 사실을 그냥 흘려듣고 말 수가 없었다. 내 방식대로 이해하고, 내가 도와야 된다는 생각으로 먼 길 마다않고 자주 방문 했다. 고교 졸업 후, 미국 와서 공부도 많이 했고, 그래서 아는 것도 많고, 똑 부러지는 성격에 씩씩하기까지 해서 환자인 걸 잊게 한다.

   1960년대 후반에 혼자 미국 땅으로 건너 와, 돈 벌며 공부해서 부모 형제 그 가족들 모두 초청 해 온 여자. 부모가 책임 질 수 없던 조카들, 뒷바라지해서 결혼까지 시킨 고모. 그랬지만 부모나 형제들이나 조카들의 반응에 마음이 얼고, 감정이 거칠어 진 피폐한 속을 날마다 내게 불평으로 쏟아낸다. 양쪽 이야기를 듣지 못해서, 식구들과의 관계를 확실하게 모르니 도울 방법이 없다.

   퍼 돌린 사랑을 조금이라도 돌려받고 싶은 베푼 자의 입장. 은혜를 입은 가족들이 어찌 그 받은 사랑을 모를까. 감사하는 마음을 표시하기도 전, 은혜를 모른다고 불평을 하면, 순간 고맙던 마음은 사라지고 어긋난 감정을 보일 수 있다고 짐작 된다.

   나와의 관계에서도 똑같은 현상이 일어났다. 나는 나대로 뭔가 돕고 싶어서, 기르는 강아지 목욕이라도 시키는 일로 그 애를 돕던지, 가족들에 대한 불평, 불만, 쌓인 분노를 터트릴 때 들어주기라도 하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했다. 언제 갑자기 증세가 악화 되어 혼자  꼼짝 못하게 될 수도 있다. 강아지 보고 싶다는 이유를 내세워 자주 드나들었다.

   갈 때마다 뭔가 내게 준다. 나 이거 필요 없는데 너 가질래? 난 싫증이 나서 버릴 건데. 아까운 생각이 들어 뭐든 들고 온다. 누군가 줄 사람이 있으면 주고, 내가 쓸 수 있으면 쓰고, 버릴 건 버려가면서. 특별히 나를 생각하고 장만해서 주는 선물이 아니니, 고맙단 생각은 안했다. 그게 그 애의 불평이 된 걸 나중에 알았다.

   먼 길 찾아가는 내 입장에선 번번이 매식하는 비용이 부담스럽다. 물론 그 애가 낸다. 가끔 한국 반찬을 들고 가기도 하고 밥 해 먹을 준비를 하곤 했지만 그런 정성보다는 돈으로 하는 계산에 무게를 두었던 모양이다. 내 생각대로 그 애에게 내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일찌거니 오고감을 끊었어야 하는걸.

   그러던 어느 날 웃지 못 할 일이 생겼다. 밤 9시가 지난 시각에 전화가 왔다. 황급한 목소리에 연결이 깨끗하지 않은 상태였다. 라스베가스에 사는 오빠가 죽었다며 같이 가잔다.    내가 어떤 상황인가 따질 겨를이 없다. 저 애를 혼자 운전해서 가게 할 순 없다고 판단. 가겠다고 했다. 강아지도 데리고 간다. 한 시간 후에 우리집에서 나를 태워 가기로 했다.

   밤 운전을 감정 굴곡 없이 잘한다. 자주 쉬며 밤참을 먹기도 한다. 내 생활 습관이 아닌 밤참. 전혀 생각 없는 내게 자꾸 묻는다. 뭐 먹을래? 내 대답에 상관없이 먹으란다. 먹고 싶지도 않고, 대답하기도 싫은데. 호텔에 도착하면 새벽3시가 넘는단다. 근데 웬 호텔? 오빠가 죽었으면 올케가 있으니 오빠네로 가야 되는 것 아닌가?

   조심스레 물었다. 뭐라구? 오빠네가 기르던 개가 죽어서 지금 정신들 없이 울고불고 야단이라 집으로 갈 수가 없단다. 50년 가까운 미국 생활에 거의 잊은 한국말로 어눌하게 하던 말이라 해도 어찌 그렇게 다른 얘기로 들렸단 말인가. 지금 안 가겠다고 하기엔 너무 멀리 왔다. 오빠가 죽었으면 내가 이렇게 밤 운전해서 가지도 않는다나?

   그렇게 해서 졸지에 라스베가스 호텔 생활을 경험하게 됐다. 오빠네 부부 불편 할테니 난 호텔에서 머문다. 그 앤, 개 장례준비로 낮엔 바쁘다. 간혹 뭐 먹겠느냐며 전화가 오기도 한다. 한국마켓에 들러 오빠네 장 봐주는데 내가 원하는 걸 사 오겠단다.

   그 즈음 난 입맛을 잃고 하루 세끼를 두끼로 줄이고, 한국음식을 도리질을 할 때다. 그러니 성의 없는 대답뿐. 먹는 것 자체가 끔찍하게 느껴지는 입맛 잃은 사람과 며칠을 같이 하는 그 애가 불만이 쌓여 폭팔을 한다. 어쩜 단 한 번도 무얼 먹겠느냐고 물어 주질 않느냐고. 나더러 냉혈인간이란다. 아차. 그 애가 사랑 받고 있음을 느끼는 항목을 내가 한 번도 건들지 않았구나. 낭패다.

   저녁 후, 도박판으로 이끈다. 난 아무것도 할 줄 모른다. 가르쳐 준다. 돈도 대 준다. 그러나 잘 할리 없다. 불호령이다. 아니, 내가 언제 도박한다고 했니? 이 향목도 그 앤, 내게 사랑을 보이는 항목이지만, 나는 전혀 아니다. 혼자 즐기다 오라고 강아지 안고 방으로 돌아와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시간 보내다 잠이 들었다.

   새벽녘에 돌아와선 지금 당장 일어나 컴퓨터 켜서 이메일 열어 보란다. 생일 카드 보냈으니 빨리 열어 보라고. 난 잘래. 날 밝으면 확인 할게. 또 한바탕 질책이다. 한동안 큰소리로 날 나무라더니 잠이 든 모양이다. 살며시 일어나 머리맡에서 잠든 강아지를, 내 침대로 옮겨 왔다. 강아지가 바스락대면 깰까봐 조용히 잘 자라고, 귀찮지만 내 곁으로 데려왔는데.

   늦은 아침나절 부스스 일어나더니, 종일 오빠네 일 처리하고, 밤에 도박하느라 강아지를 오래 못 봤는데, 데리고 갔다고 이기적이란다. 내 생일날 아침이다. 원치도 않는 벼락같은 여행에 매사 틀린 항목의 사랑 표시로 항의가 빗발친다. 너는 나를 구박만 하는 우리 엄마 보다 더 지독한 냉혈인간이라며 침대에 엎뎌 분을 뿜는다. 용서하라고 내가 미처 생각을 못 했노라고 측은한 마음으로 사과하며 달래줬다.

    우선 잘 마무리 하고 무사히 돌아가야 한다. 92세인 그 애 엄마는 지난 여행 때 지팡이도 챙기지 않고, 혼자 호텔을 나와 그레이하운드 타고 엘에이로 돌아오신 후 왕래를 끊었다더니, 이번엔 내 차례인가보다. 이런 식으로 차례차례 주위 사람들과 등을 돌리고 만, 저 애를 나도 그만 버리고 싶다.

사랑을 갈망하는 모습이 가엾지만, 내 능력으로 어찌 해 볼 여지가 없다. 하나님께서 직접 달래주시길 떠맡기고, 그냥 호텔방을 뛰쳐나가고 싶다. 92세 된 엄마도 못 견딘 딸의 요구사항들. 그러나 참자. 이 순간을 현명하게 넘기도록 지혜를 구하며 기도한다. 뭐 먹겠느냐고 제발 물어 보지 말아주길 아울러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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