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준 죄인

2004.05.02 09:47

노기제 조회 수:548 추천:114

20040216                                빚 준 죄인

   성경공부 시간이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라고 한다. 노력은 하는데 정말 잘 안된다며 고개들을 흔든다. 어찌 나를 해하는 사람을 사랑하며 용서할 수 있느냐. 처음엔 사랑으로 시작을 했어도 너무 싸가지 없이 구는 꼴을 보면 그만 똑 같이 미워하게 되더라며 열띤 토론이 전개된다.
 

   제일 힘든 것이 돈이 관련됐을 때다. 조금만 도와주면 금새 일어설 수 있고 빌렸던 돈도 곧 갚을 수 있다며 사정사정 해서 불쌍한 맘에 계산 없이 도와주고 보면 결과는 누구에게나 똑 같이 온다. 없어서 못 갚는 것이 아니고 배짱으로 안 갚겠다는 심사룰 뻔히 들어내는 모습때문에 도와준 사람은 혈압이 오르고 배신감에 몸을 떨게된다.

   그런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으로 감싸라고?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린가. 이론은 그럴듯하지만 막상 당하고 보면 어렵다. 우리 힘으론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음성을 높이던 A씨와 함께 점심을 들면서 내 경험을 얘기했다.

   아이 학비때문에, 교통사고가 나서, 아파트비 못내서, 이런저런 이유로 죽는소리 하길래 도와줬더니 이젠 내 배 째라로 나오던걸. 차라리 없어서 못 값으니 미안하다고 하면 동정이라도 가지. 이건 저 쓸건 다 쓰면서 안 값으려 뱃장이니 속에서 열불이 안 나겠어요.
 

   맞아요. 나도 그렇게 됐어요. 요리핑계 조리핑계 거짓말만 해대고 피하는데 어떻게 그런 사람을 사랑하란 말에요? 그것도 목사님 아들이란 작자가 말에요. 난 가진 돈도 없어서 카드 긁어서 빌려줬단 말에요. 그 생각만 하면 혈압이 오르고 몸이 통통 부어 올라요. 지금도 그 빚 값느라고 힘들구요.
 

   A씨의 화난 모습을 지켜보다가 내가 터득한 비법을 알려 줬다. 우선 돈주고 내몸 병들게 놔둘순 없으니 입장을 바꿔서 생각했다. 하나님께서 내게 아주 많은 걸 빌려 주셨는데 난 펑펑 내 멋대로 쓰며 쌀 한 톨도 하나님께 갚을 생각은 안하며 산다. 그러는 날 보시며 하나님 속은 얼마나 타실까. 그렇다고 뭐 내가 미안한 기색이나 하나. 전혀 아니다. 아주 당연한 듯 내것으로 여긴다. 잘난척 써댄다. 내 재물인양.
 

   그리 생각하고 나니 내 돈 안갚는 사람들이 밉지가 않다. 나도 당장 하나님께 갚을 수가 없는 처지이니 그들도 내게 갚을 처지가 못 되려니 이해하면 된다. 내가 그들에게 내 돈 갚으라고 눈에 힘이라도 준다면 하나님도 곧 내게 그렇게 하실것 같다. 그건 바로 내 것이 아닌 하나님 것을 그들에게 준 것이었으니 받아도 하나님이 받으실 것이다.
 

   억울하고 분하고 돈이 궁할 때마다 생각이 나서 괴씸해지지만 곧 하나님의 입장을 생각하면 그저 고개만 숙여질 뿐이다. 진짜주인이 아뭇소리 안 하는데 왜 내가 열을 내며 큰소린가 말이다.
 

   얼마후 다시 만난 A씨가 환하게 웃으며 다가온다. 말씀하신대로 했더니 훨씬 편해졌어요. 혈압도 정상이구요. 우선 내가 살아야 하니까요. 병나서 죽으면 나만 억울하죠 뭐. 잊게 될것 같아요. 쉽지는 않아요. 시간도 필요하구요.

   그러나 논리를 따지고 자꾸 생각해보니 조금씩 이해가 가더군요. 나와 하나님. 내 재물과 하나님 소유. 많이 헷갈리는 이론이지만 차근차근 나 자신을 교육하다보니 고개가 끄덕여지네요. 가끔씩 불쑥 억울한 생각도 치밀지만 편하게 되는 방법을 택하기로 했어요.
 

   나도 함께 편하게 웃어줬다. 결코 편할 수 없는 상황인데도 편해지는 경험을 하면서 우리안에 역사하시는 신비한 힘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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