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게 남겨진 유산

2004.03.25 02:53

노기제 조회 수:539 추천:98

032803 보이지 않게 남겨진 유산
노 기제
장례식은 끝났다. 흙을 삽에 담아 관 위에 뿌리며 친구 K의 언닌 중얼거렸다. 그래 잘 가요. 내 걱정일랑 하지 마세요. 혼자서도 잘 살게요. 언니 곁에 섰던 나는 강제로 언니를 차로 데려 왔다. 아직도 형부에게 할 말이 있다고 고집을 피운다. 할 말이야 앞으로 살면서 하나씩 하면 되고 형부는 언니 가슴에 있으니 구태여 여기서 다 말해버릴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이렇게 해서 언닌 37년의 결혼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언니가 열 살 위의 형부와 맞선을 보고 교제를 시작했을 때 친구 K와 난 여고생이었다. 친구 K의 집에 드나들면서 언니의 시작을 보았다. 언니의 결혼식도 보았다. 신혼집에도 갔었다. 그리고 미국 이민 와서는 같은 아파트에서 이웃으로 5년이나 살았다. 친구는 한국에서, 혹은 뉴욕에서 언니와 멀리 살 때도 난 항상 언니와 가까이 있었다.
언니 부부에겐 아이가 없다. 언니 쪽에 결함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형부는 아무 내색이 없다. 언니와 가까이 살 때도 집안이 시끄럽던 일을 본 일이 없다. 아이 못 낳는 일로 형부가 바람을 핀다거나, 시댁 식구들한테 언니가 구박을 받는다거나 하는 잡음은 들리지 않았다. 며느리의 결함으로 아이를 생산하지 못한다면 어느 시집 식구들이 잠잠할까? 곁에서 지켜보는 친정 쪽 식구들은 항상 죄인인양 송구스런 마음들이다. 나도 친구 K를 끈으로 친정 쪽이 되는 셈이니 공연히 형부 보기도 조심스런 입장이었다.
얼마 전 형부가 위암 진단을 받고 재산을 정리할 때였다. 모든 상속자를 형부네 조카들 앞으로 했다고 들었다. 얘기를 전하던 친구 K는 형부의 결정에 불만이었다. 그래도 미국 와서는 언니가 더 많이 일하고 벌었는데. 언니네 조카가 없는 것도 아니고. 나도 거들며 불평을 했다. 그리고 평생 언니 뜻대로 돈 한푼 못쓰게 하던 형부가 과연 마지막을 어떻게 정리했는지 궁금했다. 혹시라도 조의금을 포함한 모든 유산 때문에 형부 형제들이 언니를 울리지나 않을까 염려도 했다.
친구 K의 말은 의외였다. 의식을 잃기 전에 형제들 모인 자리에서 유언을 하셨단다. 집이나 재산이나 조의금이나 모든 것을 집사람 뜻대로 하도록 해주라고. 덧붙여 들린 소리는 결혼 첫 해에 형부는 자기 가족들에게 거짓 고백을 했단다. 아마 언니의 불임 사실을 알고 난 직후리라. 자신이 군대에 있을 때 야전병원에 입원했던 사실을 상기시키며 그 때 이미 자신은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진단을 받았었노라고. 언니를 안전하게 보호할 든든한 벽을 이미 쌓아 놓은 것이다.
부부사이에 아이가 없다면 둘 다에게 결함이 있다고 보고 싶다. 어느 한 쪽에만 화살이 향하면 분명 그 가정은 깨지는 것이 보통이다. 그래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방패막이가 되어 준다면 그 가정은 무사히 꾸려질 수가 있다.
매사에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는 잔소리꾼의 모습이던 형부가 새삼 커 보인다. 그건 모두가 언니를 사랑함에서 기인했던 것이란 걸 이제 알 것 같다. 가장 큰 줄기의 위험을 막아주는 버팀목이, 필요에 의해서 이리 저리로 내 뻗는 잔가지 같은 간섭이며 잔소리다.
단 한번의 잔소리도 난 듣기 싫다. 내가 다 알아서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토록 듣기 싫어하는 잔소리를 계속하는 남편을 본다. 따지고 보면 나의 약점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토록 잔소리가 심한 거다. 누가 나를 위해 미움받기를 마다 않고 잔소리를 해줄까. 고맙게 받자. 잔소리하면 수긍하고 들어두자. 그렇게 잔소리를 하더라도 오래도록 내 곁에 있어주면 좋겠다.
친구 K 형부의 장례식은 끝났다. 그러나 그 형부가 내게 남겨 준 유산이 있다. 누구나 다 볼 수 있는 형태는 아니지만 분명 내 가슴엔 형부에게 받은 유산이 들어있다. 누가 받은 유산보다도 값진 것이다. 그저 귀를 막고 싶기만 하던 남편의 잔소리에 슬그머니 귀를 열어둔다. 072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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