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꿔주고 싶은 개팔자

2007.04.12 10:59

노기제 조회 수:781 추천:127

040907                                바꿔주고 싶은 개 팔자
        난 유난히 강아지를 좋아한다. 천진스런 눈망울, 해 맑은 미소, 순진한 얼굴 표정 등은 내 맘을 기쁨으로 흔들리게 한다. 보는 순간 즉시 호들갑을 떨며 마음을 앗긴다. 그리곤 곁에 머물고자 말을 건다. 가능하면 만지려 하고 사랑을 전한다. 조심스레 접근하며 물리지 않으려 애를 쓰기도 한다.
      언제, 어디서, 누구와 함께 있던 상관이 없다. 귀여운 강아지를 보면 저절로 기쁨의 고성이 터진다. 얼굴은 가장 행복한 표정이 되고, 빛이 난다. 그리곤 계속 강아지 곁에 함께 있고자 한다. 주인에게 양해를 구하곤 반드시 품에 안아 본다.
        이런 대책 없는 행동 때문에 주인이 내치는 강아지를 덥석 받아 안고 오길 몇 번짼가. 집 장만하고 강아지 키울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초장부터  강아지 안고 오기가 시작 됐다. 예쁘다고, 불쌍하다고, 들여다 놓곤 제대로 키우진 못한다. 먹이고, 깎이고, 씻기고, 치우고 등 온갖 일거리는 남편 몫이다. 잠깐 다니러 오신 엄마에게 안겨드린 강아지 두 마리 땐, 병든 어미 고생시키는 방법도 여러 가지라고 엄마에게 푸념을 듣기도 했다.
        지난 삼월 말일. 교회에서 개 짖는 소리로 잠시 어수선했다. 사연을 들으니 네 번째 집에서 내침을 받은 강아지란다. 그 소리에 난 벌써 가슴이 짠해졌다. 슬그머니 강아지가 있는 곳으로 갔다. 귀엽다. 영락없는 내 강아지다. 장난기 가득한 얼굴이며, 반짝이는 두 눈에, 다가가는 내게 예쁜 미소 한바가지 쏟아 놓는다. 내 품에 안기겠다고 두 발 뻗쳐 뛰어 오른다. 내가 지 엄마로 보였던 걸까.
        당장에 데려 오기로 맘먹었다. 문제는 남편이다. 분명 고개 저으며 안 좋은 표정 지을텐데. 떼를 쓰자. 저 불쌍한 걸 어쩌란 말인가. 교회 안으로 들어가 살며시 남편을 손짓 해 불러냈다. 의아해 하는 표정으로 따라 나온다. 강아지를 가리키며 얼굴을 마주 봐도 무슨 뜻인지 모른다. 말로 설명을 했다. 불쌍하니까 우리가 데려 가야 한다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아주 조용하게 안 된다고 짧게 말한다. 얼굴을 찡그린다. 안 된다는 강한 표현이다. 갈 데가 없는 강아지라는데 불쌍하지 않느냐고 계속 남편 얼굴만 본다. 일 저지르는 내 고집을 남편은 아주 잘 안다.
        결국 품에 안고 집으로 왔다. 윈디가 싫어 할 건 예상했었다. 두 달째부터 데려다 아홉 살이 된 슈나우저 암놈이다. 우리 부부와 셋이 살아온 9년 동안 저도 사람이라 착각하고 살던 윈디에겐 낯선 강아지의 출현이 달갑지 않다. 뭐든 다 자기가 차지했던 것들을 나눠야 하는 상황이 불만이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 저도 혼자 외로웠을 텐데.
        우선 잠자리가 문제다. 우리 세 식구 한 침대서 잤는데 돌이 녀석까지 넷은 좀 무리다. 게다가 네 살 된 돌이 녀석은 털북숭이 요크셔 테리어다. 두 놈 다 13파운드로 같은 크기다. 털이 많은 녀석이라 같이 자는 것이 내키지 않아 침대 곁에 잠자리를 마련하고 재우기 시작했다. 약간 미안했지만 길들이기 나름이라 생각했다.
        밤새 기회만 있으면 침대위로 뛰어 오를 태세다. 돌이는 안돼요. 거기서 그냥 자야돼요. 착하지? 번번이 달래주며 사정을 하면 자기 자리로 얌전히 돌아간다. 제법 말귀를 알아듣는다. 침대에서 자는 윈디를 멍하니 바라본다. 무척 부러운 눈치다. 마음이 아파진다. 이렇게 차별대우를 해야 한다는 건 생각지 못했었다.
        또 한가지 큰 문제가 생겼다. 윈디는 잠자기 전 뒤뜰에 나가 볼일을 보면 이튿날 늦은 아침까지 잘 잔다. 돌이는 밤새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볼일 볼 장소를 물색해서 적당히 일을 본다. 신문을 깔아주면 그곳이 바로 전용 화장실이다. 집안에서 냄새가 진동한다. 지네 둘만 있는 낮 시간엔 집안을 온통 아수라장을 만들어 논다. 쓰레기통도 뒤진다. 의자위로, 밥상위로, 올라 다닌 발자국 천지다. 우리가 있을 땐 텃세가 심한 윈디 눈치를 보며 슬슬 피해 다닌다. 성격도 무던해서 좀처럼 대꾸는 안 하지만 어쩌다 윈디가 먼저 시비를 걸면 획 돌아서 악을 쓰며 윈디의 접근을 불허한다.
        가장 큰 문제는 내가 두 놈을 다 잘 기를 수가 없다는 거다. 남편이 두 놈 데리고 운동하고 돌아와 한꺼번에 목욕을 시키면 뒤처리는 내차지다. 너무 힘이 든다. 끝없이 묻어나는 돌이 녀석 털, 털, 털..... 결국 내가 먼저 기권하고 먼저 주인에게 보내기로 했다. 남편에게 좀 창피하지만 변덕쟁이 마누라 뜻에 말없이 따라준다. 나이 들며 귀찮은 것이 많아지고 일이 싫어진 나를 계산 못한 내 탓이다.
        돌이를 처음 데려간 주인은 젊은 새댁이었나 보다. 첫 아기를 생산하며 돌이를 내쳤다. 두 번째로 과수원이 넓은 장로님 댁. 삼 년여를 잘 살다가 과수원지기로 온 진돗개에게 힘으로 밀려났단다. 심하게 물려 피를 쏟고 피해간 곳이 딸 둘 있는 젊은 목사님 댁. 어린아이들이 이쁘다고 주물러대니 귀찮다고 물었다가 쫓겨났다. 두 주일 있었단다. 그 담엔 사내아이만 둘인 목사님 댁엔 안에서 키울 수 없는 처지. 내가 다섯 번째로 엄마 하려다 기권이다. 역시 이 삼 주씩만 머물렀다.
        네 살 박이 돌이가 가장 오래 살았던 과수원 장로님 댁으로 우선 돌아가서 진돗개 눈치를 보다가 그 다음 거취가 결정되어야 한다. 데려다 주려 차에 태우니 그 순간부터 이상한 소리로 내게 말을 한다. 엄마, 잘못했어요. 나 그냥 엄마랑 살게 해줘요. 윈디 누나랑 싸움도 안 하구요. 오줌똥도 밖에다 눌게요. 나 좀 있게 해줘요. 털 많이 빠지는 게 싫으면 윈디 누나처럼 다 밀어 주세요. 침대에서 안 자도 좋아요. 아빠 품 차지한 윈디 누나자리 넘보지 않을게요. 난 엄마가 좋아요. 가기 싫어요. 안 갈래요. 네? 엄마.
        난 그만 큰소리로 울음을 터트렸다. 어쩌면 좋으니 돌이야. 엄마가 너 잘 기를 자신이 없어. 눈물 때문에 엄마 운전 못하겠다. 이러다 또 사고 날라. 너 데려다 주고 학교가야 하는 데. 돌이야 괜찮을 꺼야. 가서 진돗개한테 덤비지 말고 슬슬 피해 다니면 돼. 울지마 돌이야. 엄마 너무 속상해. 만약 정말로 못 살겠으면 그 땐 엄마가 다시 데려 올게. 응? 그러니 울지마.
        장로님 댁 가시는 목사님께 돌이가 들어간 가방을 건네며 "돌이가 오는 내내 울었어요. 어떡해요?" "에이, 상관없어요. 가면 괜찮아요. 어? 집사님 우세요? 학교 가신다며 늦겠어요. 어여 가세요."
        돌이도 울고, 나도 울고, 학교에서 내내 돌이 생각만 했다. 돌이 팔자가 왜 이럴까. 우리 윈디처럼 방에서 살고, 침대에서 같이 자고, 사람인양 착각하게 듬뿍 사랑 받으며 살면 좋겠는데. 일 접고 취미생활로 택한 두 과목 네 시간 하루수업은 다 망쳤다. 자꾸 눈물만 나고, 눈은 부었는지 갑갑하고, 머리까지 지끈거린다. 아무하고도 어떤 말도 하고 싶지 않다. 어떻게든 돌이가 행복하게 살아야 하는데. 무슨 수가 없을까. 이명처럼 들리는 돌이 울음소리에 가슴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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