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마지막이길

2007.09.03 04:46

노기제 조회 수:715 추천:131



        8월 11일 안식일, 설교 예배 시작할 시간이다. 연세 드신 침례 반 학생 한 분이 교회 앞에서 몇 분과 말씀을 나누신다. 지나쳐 교회당으로 들어가려다 혹시라도 뭔가 도와드릴 일이 있나 싶어 참견을 했다.
        길을 묻는 낯선 사람. 영락교회 김 목사를 찾는단다. 우리 교회는 토랜스인데 여기서 영락교회를 찾는다면 나도 알 수 없는 일이니 그냥 지나치면 될 것을.  길을 묻는 사람이 한국 사람이 아닌 듯, 영어로 대답하는 것이 불편 하실 것 같아 내가 맡았다. 잘난 척 한 꼴이다.
        이스트 코스트에서 왔단다. 구체적으로 어디냐. 와싱톤 디시. 우린 안식일 교회라서 영락교회는 잘 모른다. 아? 에스디에이? 나 앤드류스 졸업했어요.
한국말도 한다. 연세대 나왔다나. 그러더니 한국말 잘 모른다고 영어로 자긴 일본말 중국말 다 한다기에 일본말로 응했더니 깜짝 놀란다.
        첨엔 디즈니랜드 간다고 하더니 오늘 안식일이라 안 되겠단다. 친구 김 목사를 찾아야 한다. 어디 머무는데? 한인타운. 메리옷호텔. 함께 예배보고 내가 안내하겠다니까 빨리 가야 한단다. 나쁜 일이 있어서 김 목사를 꼭 만나야 한단다. 무슨 일?  너무 자세히 알려 해서 심하게 다친 경우다.
        메리옷 호텔에서 차 트렁크에 둔 짐을 잃어 버렸단다. 현금 8500불, 크레딧 카드, 여권, 비행기 표 몽땅 없어졌단다.  일주일 전에 왔고, 어제까지 와싱톤 디시로 돌아갔어야 하는데 개스 값이 없어서 못가고 있단다. 부모는 홍콩에 있고, 자기네는 싱가폴에 살고, 피츠버그에 집을 샀고, 횡설수설, 비행기 표도 잃었다더니. 차로 왔느냐 물었다. 그렇단다. 셀폰 있느냐며 번호를 달라기에 줬다. 나도 달랬다. 703-562-8591. 자기 번호가 찍혔을 거라나. 차에 가서 내 전화기를 꺼내왔다. 703-677-1617이 찍혔다. 이름은 KO WATANABE.                     
        어쩌나? 내 지갑에 돈이 있나?  비상금을 꺼내고 지갑에 있는 돈도 꺼냈다. 동전만 남겼다. 아침에 빼 논 현금 생각이 간절했다. 있었 담 다 주었을 꺼다. 그러다 순간 머리를 스치는 의심. 아니겠지. 한 살, 세 살 되어 보이는 이쁜 딸 둘이 카 씨트에 앉아 있다. 방긋방긋 웃는다. 하이 하라는 아빠 말에 큰아이가 손을 흔들며 하이 한다. 구 십도로 허리를 굽히고 감사하단다. 와이프는 타이사람이라며 인사를 시킨다. 차에서 나와 공손히 고맙다고 인사를 한다.  집에 가서 꼭 부쳐 주겠단다. 이멜 주소도 달랬다. ICESSSAIYURI@MSN.COM
        내가 할 수 있으니까 하나님께서 너희를 내게 보내주셨나 보다. 그 돈 못 받더라도 오늘 이 일은 하나님께서 너와 내게 주신 특별한 기회라고 생각한다. 무엇을 위한 기회인가는 곰곰 생각해 봐야겠다.  
        예배 후 목사님께 말씀 드렸더니 아아, 그 사람 교회마다 찾아다니며 똑같은 수법으로 동정을 받고자 한단다. 3주 전쯤 다른 교회 목사님이 SDA라니 보낸다 해서 우리 목사님이 교회 주소를 주었단다. "집사님, 나한테 좀 물어 보고 하시지, 어찌 됐건 잘 하셨어요. 현금 빼 놓고 오시길 천만 다행이지.“  3주 전이라니. 일주일 전에 L.A. 에 왔다고 했는데.
        난 왜 이러나. 좋은 뜻에서 하는 일이지만 결국 씁쓸한 결과다. 주위에 일본인 교회가 있느냐기에 가까운 가디나 지역에 있다고 했으니 다음 타겟은 일본인 교회가 되겠구나. 주머니 털어 350불 다 건네주고 정말 기뻤는데. 어린 딸들 앞에서 연출 하는 부모 된 자신의 모습을 잠간이라도 생각했으면 좋으련만.  내가 마지막이면 좋겠다.
        집에 돌아와 셀폰에 저장된 메시지 열어 보니 지금 발스토우 지나, 워싱톤 디시로 가는 중이라며 전화가 뭔 문제가 있다며 끊어지는 척 끊겼다. 이젠 확실히 알겠다. 진실이 아니었음을. 그래도 기대 해 본다. 나 때문에 재미 붙어 속임수 반복하지 말기를. 내 진심이 전달되어 거짓 된 삶의 방법 버리길. 전화를 걸어 볼 필요도 없다. 시간이 흐른 뒤 깨끗한 마음 되어, 내게 전화 걸어 주길 기다리고 싶다.
        잠시였지만 너무 행복했다. 가슴이 기쁨으로 요동을 쳤다. 이쁜 두 아이의 웃는 얼굴이 자꾸 아른 거린다. 내겐 분명 축복의 순간이었다. 내게 있는 것 아깝다 생각 않고 털어 줄 수 있었던 풍족함이 감사하다. 그것이 내가 가진 것의 전부였다면? 소지 했던 것 전부였지, 소유의 전부는 아니었잖은가. 부족한 중에서도 남의 필요를 도울 수 있게 되고 싶다. 그러나 좋지 않은 습관을 키워주는 원인 제공은 삼가야 겠다.. 내가 잘난 척 한 것으로 이 사건이 끝나 버리면 안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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