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사랑 이루어지길

2007.02.06 08:59

노기제 조회 수:524 추천:119

         산행을 함께 하는 회원들에게 내가 말했다. 인간의 스침이 없는 순결한 첫눈을 밟으며 기원한 사랑은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12월 둘째 일요일이지만 아직 앞뜰의 단풍이 완전한 옷 갈이를 끝내지 않아 내 집 앞은 가을이다. 그러나 어젯밤 가을의 꼬리를 물고 나타난 초겨울 비가 제법 사납게 가을을 밀쳐 내는 듯 했다.
        밤새 바람을 동반한 세찬 빗소리를 들으며 이튿날의 산행을 거의 포기했었다. 더구나 다음날까지 이어진다는 비 예고가 회원들 마음에 확실한 산행 결심을 주지 못했던 실정이다. 회원들이 새벽부터 주고받던  확인 전화 후에 반짝 개인 하늘이 우리 마음을 부른다. 넉넉히 웃어주는 밝은 해가 내 얼굴 믿고 산으로 가라고 확신을 준다.
        등산로 입구까지는 차로 한 시간 정도 걸린다. 이동하던 중 살짝 얼어버린 도로에서 한 두 번 미끌, 뱅그르 돌면서 아찔한 순간을 당했다. 순간 유월에 있었던 차 사고를 상기했다. 아니 또? 이건 아니다. 다시는 그런 끔찍한 교통사고는 안 당할 거다. 막무가내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싫다고. 절대로 안 된다고. 운전대를 잡은 남편의 빠른 손놀림으로 차는 다시 제 길로 들어섰다.
        비 온 뒤 산에 쌓인 첫눈을 밟게 된 기쁨으로 산행에 동참한 회원들이 나이에 상관없이 환호성이다. 비 맞을 각오하고 산에 오른 것은 축복이라며 한마디씩 보태어 행복을 빚는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순결한 첫눈을 밟으며 기원한 사랑은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부인을 동반한 60대 회원이 얼른 동참한다. 자기 사랑이 꼭 이루어져야 한다고.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이루어지길 기원하는 사랑을 가진 그 자체가 아름다운 것이니까.  
          제한 된 인간 관계로는 사랑을 하며 살수가 없다. 사랑할 만 한 사람을 사랑하는 건 사랑이 아닐 수도 있다. 사랑할 수 없는 사람, 사랑하기 싫은 사람, 그런 사람들을 끌어안을 수 있는 사랑을 해야 한다. 그게 내가 이루고 싶은 사랑이다.
        그 동안 내 삶 속에서 내 맘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내게서 내침을 받았던 사람들을 기억해 본다. 앞으론 그들에게도 따뜻하게 웃어 주고 싶다. 내가 싫어하던 어떤 면을 감싸보자. 이해하려 않던 내 생각을 바꾸자. 누가 뭐라 해도 옳다고 생각한 내 판단의 기준을 지워버리자. 백지로 남겨 두고 하나씩 포용해보자. 과연 해 낼 수 있을지 자신은 없다.
        내가 사랑할 만 하진 않아도 누구나 한 두 가지 좋은 면을 가진 사람들이다. 내 눈에 띄지 않던 그들의 좋은 점들을 찾아야 한다. 그리곤 그들을 사랑하는 거다. 그래야 내가 푸근히 넉넉한 사람이 된다. 그러면 누구보다 내가 편안해진다. 내가 사랑하지 않아도 그들은 아무 상관이 없다. 다만 내가 불편했을 뿐이다. 평안하지 못했다. 결국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은 결과가 되었다.
        앞에선 친구였는데 뒤에서 가명을 쓰며 헐뜯던 사람을 모임에서 만났다. 그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본다. 그의 가족도 동행했다. 아는 척 할까? 말까? 난 네가 내게 한 짓을 다 알고 있다고 빈정대고 싶었다. 가족 앞에서 망신을 줄까? 그렇게 하면 내 속이 시원할까? 나와 눈을 맞추지 못하는 그 모습에 측은한 맘이 든다. 억지스레 나를 헐뜯던 때엔 뭔가 심사가 뒤틀렸던 모양이라고 덮어주자. 이왕 모임에서 만났으니 유쾌하게 분위기 조성하며 그와 팀웍을 이루어 우리가 되어 보았다.         
        사랑하는 사람을 가지지 말라. 미운 사람도 가지지 말라. 사랑하는 사람 못 만나 괴롭고, 미운 사람 만나서 괴로우니라. 법구경에서 읽은 구절이 내겐 실행할 수 없는 것으로 느껴진다. 사랑하는 사람도 마음껏 가지고 미운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으로 바꾸고자 마음만 고쳐먹으면 어렵지 않게 사랑하게 되는 것을 경험한다.
        세상에 어찌 모든 사람에게 사랑 받을 만한 사람으로 살 수 있을까. 더러는 내가 싫다고 욕을 할 수도 있고, 또 더러는 내가 못 마땅해서 가위표를 줄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자. 굳이 빈정대며 나를 깍아 내리고 싶다면 그렇게 하라고 허락해주자. 구태여 아니라고 반박할 필요가 뭐 있겠는가. 억울하고, 분이 나고, 창자가 뒤틀리더라도 잠깐만 시간을 보내면 다시 측은한 마음이 생겨날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내 마음이 평화로와 진다면 난 얼마든지 미운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잊어버리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자꾸 기억해 내며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보면 결국은 이해하게 되고, 껴안을 수 있게 되겠지.
        죽을 뻔한 사고를 당해 보니 그 어느 것도 내 목숨과 바꿀 만큼 중요한 건 없다. 그깟 욕 좀 하면 먹어주자. 행여 내가 속해 있는 어느 단체의 회원 중에 그 동안 합당치 못하게 내게 내침을 당했던 회원들 있었다면 이 순간부터라도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꾸자. 나만이 아는 이런저런 이유가 머리를 스친다. 그러나 내 목숨과 바꿀 수 있을 만큼 누구를 미워 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오늘 하루 내게 신설을 밟게 해 준 산을 다시 돌아본다 . 내 마음이 하얗게 표백되었다.
2007/0206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들러주시고 글 읽어 주시는 분들께 [2] 노기제 2022.12.01 42
120 어여쁜 아이, 그의 고민 노기제 2007.04.09 644
119 마음 노기제 2007.04.08 502
118 인내하는 시간 노기제 2007.04.06 567
117 밤 산책길 노기제 2007.04.03 521
116 전화 노기제 2007.04.03 502
115 독한 남자들 노기제 2007.03.31 807
114 눈밭에서의 봄꿈 노기제 2007.03.31 469
113 성난 비바람 노기제 2007.03.28 445
112 지금 이 눈물의 의미 노기제 2007.03.24 495
111 캠퍼스 커플을 꿈꾸다 노기제 2007.03.21 714
110 늦은 깨달음 노기제 2007.03.19 513
109 기다릴텐데 노기제 2007.03.19 478
108 사회자로 데뷰하던날 노기제 2007.03.04 572
107 한 사람의 아픈 마음까지도 노기제 2007.02.27 721
106 우린 지금 열 일곱 노기제 2007.02.27 675
105 지나가는 고난 노기제 2007.02.19 519
» 내사랑 이루어지길 노기제 2007.02.06 524
103 스물 일곱 노기제 2007.02.05 490
102 쎅스폰 부는 가슴 노기제 2007.01.16 1477
101 누군가의 첫사랑 노기제 2007.01.08 531

회원:
0
새 글:
0
등록일:
2015.03.19

오늘:
0
어제:
0
전체:
96,6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