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는 고난

2007.02.19 07:27

노기제 조회 수:519 추천:120

        내가 할 수 있는 건 무얼까. 봄이 오려는지 날씨가 몸살을 앓는다. 어제는 90도 가까이 여름 날씨이더니, 오늘은 60도를 가까스로 올라섰다. 아직 겨울인 것이다. 밤새 빗소리를 참아가며 잠을 설치게 하더니만 태양은 아예 얼굴을 숨겼다. 난 따스한 태양을 기다리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요즘 확실치 않은 일기모양 내 삶에 연결 된 사람들의 생활이 마구 흔들린다. 몇 번째인지 장사 밑천을 마련해 주고 작은아버지 생활비를 책임지라 했던 조카아인 또 밑천만 날린 모양이다. 고모에게 미안해서 죽어버리고 싶은 심정으로 산다는 소식이다. 게을렀던 탓도 아니다. 열심히 해 보려고 장사를 벌렸는데 그게 전혀 뜻대로 돌아가질 않았던 거다.
        형제라곤 달랑 오빠 하나 있는데 그 일생이 기가 막힌다. 언젠가 자신의 힘으로 일어서겠지 믿고 몰라라 했지만 결국 환갑이 지난지도 일곱 해다. 기거할 집도 절도 없다. 자기 쓸 것 챙기지 않고 그냥 다 퍼낸다. 누군가 자신에게 있는 것을 원한다면 그 자리에서 내어 준다. 내일 양식이 없어도 오늘 있는 것 함께 나누어 먹어야 한다. 그러니 마누라가 견뎌 낼 수가 없다. 난 줄곧 오빠가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 쓸 것 남겨 놓은 후에 남을 돕는 것이 정상인의 생활이라 믿기 때문이다.
        답답한 맘에 한국에 계신 목사님께 오빠를 부탁하며 말씀 드렸더니 진짜 예수 믿는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분명 하나님께 칭찬 받는 사람이니 걱정 말라 신다. 내가 보기엔 병이다. 그렇다고 예수를 철저하게 믿는 사람도 아니다. 자기는 아직 죄를 지으며 살기 때문에 교회를 갈 수가 없다고 괴변을 늘어놓는다. 내 힘으로 뭘 어찌 해야 하나.
        내 능력 안에서 경제적으로 돕기 시작했는데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그래도 오빤 천성이 낙천적이라 비관도 낙망도 없이 그저 만족하며 산다. 언제나 현재 상황에 만족하며 감사하는 마음이다. 도와 줄 때도 한 달치 한꺼번에 보내지 말란다. 돈 관리 못해서 있으면 있는 대로 다 써버리니 일주일에 한 번씩 보내 달란다. 자신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편이다. 그렇게 하라고 목돈을 조카아이 주고 장사해서 작은아버지 생활비 공급하라고 했더니 또 이지경이 됐다. 내가 어떻게 해야 되는지 정말 모르겠다.
        이럴 땐 기도한다는 그 자체가 혼란스럽다.  무얼 어떻게 기도해야 하나. 하나님께 맡긴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 아직도 내가 가진 재산이 있으니 그걸 오빠나 조카와 바닥날 때까지 나누며 사는 것이 옳은 일인지. 아니면 그들을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고 손을 떼야 하는 건지.
        답답한 가슴으로 멍하니 하늘을 본다. 태양이 따스한 빛을 내게 주려 나타났다. 내가 그렇게 원하던 햇빛이다. 전화벨이 울린다. 넋 놓고 있던 힘  없는 목소리에 웬일이냐고 다그쳐 묻는 친구 음성에 눈물부터 쏟는다.
        믿음 안에서 참사랑을 나누는 친구다. 집도 없다. 정부에서 주택 보조금 받아 바닥까지 내려간 삶을 경험하며 사는 친구다. 일자리도 없다. 부당한 이유로 믿는 사람들 업체에서 내침을 당했다. 억울한 일이다. 뭘 어찌 따져 볼 힘도 없는 친구다. 따로 배운 것 없고 선교방송만 천직으로 알고 봉사하며 살아왔다. 더 이상 어디 쫓아다니며 선교방송 시간 얻으려 하지 않는다. 자신이 운영하겠다는 당찬 포부를 품고 기도 중에 있는 친구다.
        그 친구에 비하면 난 부족한 것 없이 다 가진 자다. 내가 무얼 그 친구 앞에서 불평할 수 있나. 그럼에도 오빠생각, 조카생각에 가슴아파 눈물부터 앞세워 징징대니 미안한 생각이 든다. 그래도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 뜻대로 순종하며 사는 삶인지 의논 할 수 있는 믿음의 친구다. 그 동안의 내 삶을 보아 온 친구의 충고다. 하나님께서 이 친구를 내게 보내시어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실 수도 있다.
        언제까지 잘난척하며 네 자신의 힘으로 해결하려 할 것이냐. 왜 그들을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지 못하느냐. 도와주지 않고 몰라라 한 것 아니고, 몇 번이고 반복해서 돕지 않았나. 언제까지 그럴 것인가. 왜 그들이 직접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도록 기회를 주지 않느냐. 도와 줄 형편이 안 된다고 생각하라. 없다면 못 도와 줄 것 아니냐. 이번엔 제발 내 말 좀 들어라. 울지 말고 그들을 하나님께 맡기는 기도나 해라. 고모에게 미안해서 나쁜 맘  먹는다면 그것도 그 조카 운명이다. 그렇게까지 독하게 맘먹고 더 이상은 그들을 망치지 마라. 자꾸 의존하게 한다면 결국은 그들을 망치는 결과뿐이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음성일까. 난 아직 가진 게 있는데 모른척하라고. 내게 의존해서가 아니다. 요즘 한국 실정이 도무지 살아 갈 수가 없는 상태다. 이제 사십 갓 넘긴 조카아인 아무리 일자리를 찾아 다녀도 구할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장사를 힘겹게 시작해도 버티지 못하고 문 닫는 사례가 부지기수다. 조카를 탓하며 열심히 안 살았다고 비난할 수는 없다. 그러면 어찌해야 하나. 제발 생을 포기할 생각만은 말아 주면 좋겠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그들이 나처럼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께 매사를 의논하며 전적으로 맡긴다면 내가 안심할 수가 있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어렵다고들 한다. 우선은 자기 힘으로 살아 보려 발버둥을 친다. 지금 어떤 결론도 내리지 못하고, 답답한 마음으로 울고만 있는 나도 바로 내 힘으로 해결하려 발버둥치는 모습은 아닌지.
        시도 때도 없이 닥쳐오는 고난. 어떻게 지나가야 하나. 어떤 이에겐 평생이 고난의 연속이다. 그래도 그 본인은 그것을 고난이라 생각지 않고 산다. 그 고난 자체를 받아 포용하는 자세다. 그냥 감싸 안아버리면 그런 대로  그것이 인생인 것이다. 우리 오빠처럼 자신의 어떠함을 인정하고 살면 편안하게 산다. 내게는 재난처럼 느껴지는 오빠의 생활을 오빠는 어쩔 수 없는 운명이라고 받아들인다. 자신이 생각해도 참 한심한 인생인데 고칠 수가 없단다. 여전히 야, 걱정하지마. 어떻게 되겠지. 여지껏두 살았는데 뭐.
        그렇다. 이 어려운 순간은 곧 나를 지나 사라질 것이다. 밤새 잠을 설치게 한 비도, 아침내 해를 가리웠던 구름도 다 지나가고 밝은 햇살이 내 마음을 달래주듯이 그렇게 다가왔던 고난들은 곧 지나갈 것이다.

                                                        2007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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