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아픈 마음까지도
2007.02.27 02:42
한 사람의 아픈 마음까지도
자신이 보고 느끼는 것을 글로 표현 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무언가 좀 쓰고 싶은데 도무지 뜻대로 되지 않아 답답해하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곧잘 푸념을 늘어 논다. 그리곤 글 잘 쓰는 사람들이 제일 부럽다며 속내를 들어낸다. 솔직한 사람들이다.
글쓰는 사람의 입장에선 별 대수롭지 않은 말로 들리기 십상이다. 쓰면 되니까. 그게 뭐 그리 고민거리가 될까 이해를 못 한다. 그런 사람은 진정 축복 받은 사람들이다. 적어도 내가 글공부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나도 그런 부류의 사람이었으니까. 까짓 거 쓰면 되지 그게 뭐 걱정거리가 되려나 교만한 마음이었다.
막상 뭔가 좀 써 보려 시작을 해 보니, 아니 좀 쓰고 보니 절대로 그냥 써지질 않는다. 공부를 하면 할 수록 전혀 도달을 수 없는 불가능 한 일처럼 다가오곤 한다. 이제서야 글쓰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안타까운 심정을 같이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 마음을 위로하고 싶고 용기를 주고 싶다. 누구나 다 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알려 주고 싶다. 그 대신 공부하고 노력하면 이룰 수 있다고, 재주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반드시 해 낼 수 있다고 자신감을 주고 싶다.
이런 연고로 아픈 일이 생겼다. 동창 웹사이트에 아무 생각 없이 드나들며 꼬리말도 달고, 내 작품을 올려서 동창들에게 읽히곤 하던 것에 브레이크가 걸린 거다. 남녀가 한 울타리에서 공부를 했던 관계로 조금은 더 델리케이트한 면도 있다. 남자 동창들의 관심을 끄는 것도 못 마땅하고, 뭐 그리 잘 쓰는 글도 아니란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물론 극소수의 목소리지만 그런 불평이 들린 이상 계속 나 몰라라 할 수는 없다.
대부분은 다른 사이트에서 좋은 글이나 그림이나 음악을 퍼다 옮겨 놓아 동창들로 하여금 감상하게 하는데 이건 자신이 쓴 글을 올리니 심사가 뒤틀릴 수도 있다. 게다가 일반적으로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는 남학생들하고 각별한 인간 관계를 가진 양 써 대는 사건들이 꼴불견이었던 모양이다. 한 번은 한국 방문 시 면전에서 공격을 당하기도 했다. "야 너는 왜 우리 XX오빠 이름을 미국에 사는 애가 마구 불러대는 거냐?" 그 자리에선, 아직도 여자라고 질투를 하는 모습이 무척 이쁘다고 생각하고 농담으로 접수했던 일도 있다. 그래서 별 생각 없이 모든 동창 모임에 계속 참여했었는데.
결국 2006년 가을 회갑을 맞은 동창들의 추억 여행 당시, 남학생을 통해 다시 들은 일부 여학생들의 불평을 그냥 묵과할 수는 없었다. 함께 자리했던 동창들은 그게 뭐 들어 볼 가치가 있느냐고 그냥 무시하라고, 너답지 않게 뭘 그런 걸 신경 쓰느냐고, 만약 활동을 중단한다면 무지 실망 할거라고, 의견들을 말했지만, 난 아니다 라고 생각했다.
누구보다도 나 자신이 글을 쓰고 싶어했고, 글쓰는 일에 자신 만만했던 시절이 있었던 사람이다. 그 당시엔 웬만한 글엔 감동하지도 않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던 사람이다. 내가 쓰면 훨씬 더 잘 쓸 수 있을 거라고 고개가 빳빳했던 사람이다. 그랬던 내가 이런 상황을 이해 못 한다면 누가 그 아픈 마음을 알아 줄 것인가.
이렇게 깨닫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다. 처음엔 우선 성가신 마음이 들었다. 구태여 이런저런 소리 들어가며 동창사이트 드나들 필요 없다고 결정했다. 어떻게 생각하면 얻는 것 없이 시간만 죽이는 일에서 탈피하게 됐으니 오히려 잘 됐다고 자신을 위로했다. 세상은 어차피 내가 주인공인데 나 싫다는 곳에서 발 빼며 사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했다.
그렇게 아무런 불편 없이 몇 개월을 지냈는데 엊그제 문학서재에 방문한 친구의 말이다. 동창 사이트 사랑방에서 사라진 모습을 궁금해하며, 까르르하는 내 목소리 듣고 싶다고. 담담하게 내 모습 감추게 된 사연을 알리다가 불현듯 내게 불평을 하던 얼굴이 떠올랐다. 내 흔적이 사라진 지난 몇 개월 동안 그 동창은 마음이 편했을까. 앓던 이 빠진 것처럼 시원했을까. 그렇다. 비록 작은 숫자일지라도, 아니 단 한 사람일지라도 나로 인해 마음이 아프지 않도록 내가 처신하며 살아야 한다.
할 수만 있다면 마음 다치지 않고 살고 싶은 것이 내 소망이다. 그러니 어느 누구에게라도 나 때문에 마음 아플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한편으론 까르르 대는 나를 기다리는 친구도 있지만 그 기다림은 내 문학서재에서 해결이 된다. 누군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출입을 삼갔던 때는 지났다. 그 누군가의 마음을 편히 해 주고 싶어서 사랑방 출입을 계속 삼가야겠다. 사랑하는 마음이 생긴 것이다.
역시 글로 표현하는 일이 어렵긴 하다. 나를 마다하는 친구도 나를 기다리는 친구도 모두 다 행복하길 바라는 내 마음이 보였으면 좋겠다. 지금은 내 친구들 모두를 사랑하게 되었으니까.
2007년 2월 27일 오전 10시 30분
자신이 보고 느끼는 것을 글로 표현 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무언가 좀 쓰고 싶은데 도무지 뜻대로 되지 않아 답답해하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곧잘 푸념을 늘어 논다. 그리곤 글 잘 쓰는 사람들이 제일 부럽다며 속내를 들어낸다. 솔직한 사람들이다.
글쓰는 사람의 입장에선 별 대수롭지 않은 말로 들리기 십상이다. 쓰면 되니까. 그게 뭐 그리 고민거리가 될까 이해를 못 한다. 그런 사람은 진정 축복 받은 사람들이다. 적어도 내가 글공부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나도 그런 부류의 사람이었으니까. 까짓 거 쓰면 되지 그게 뭐 걱정거리가 되려나 교만한 마음이었다.
막상 뭔가 좀 써 보려 시작을 해 보니, 아니 좀 쓰고 보니 절대로 그냥 써지질 않는다. 공부를 하면 할 수록 전혀 도달을 수 없는 불가능 한 일처럼 다가오곤 한다. 이제서야 글쓰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안타까운 심정을 같이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 마음을 위로하고 싶고 용기를 주고 싶다. 누구나 다 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알려 주고 싶다. 그 대신 공부하고 노력하면 이룰 수 있다고, 재주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반드시 해 낼 수 있다고 자신감을 주고 싶다.
이런 연고로 아픈 일이 생겼다. 동창 웹사이트에 아무 생각 없이 드나들며 꼬리말도 달고, 내 작품을 올려서 동창들에게 읽히곤 하던 것에 브레이크가 걸린 거다. 남녀가 한 울타리에서 공부를 했던 관계로 조금은 더 델리케이트한 면도 있다. 남자 동창들의 관심을 끄는 것도 못 마땅하고, 뭐 그리 잘 쓰는 글도 아니란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물론 극소수의 목소리지만 그런 불평이 들린 이상 계속 나 몰라라 할 수는 없다.
대부분은 다른 사이트에서 좋은 글이나 그림이나 음악을 퍼다 옮겨 놓아 동창들로 하여금 감상하게 하는데 이건 자신이 쓴 글을 올리니 심사가 뒤틀릴 수도 있다. 게다가 일반적으로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는 남학생들하고 각별한 인간 관계를 가진 양 써 대는 사건들이 꼴불견이었던 모양이다. 한 번은 한국 방문 시 면전에서 공격을 당하기도 했다. "야 너는 왜 우리 XX오빠 이름을 미국에 사는 애가 마구 불러대는 거냐?" 그 자리에선, 아직도 여자라고 질투를 하는 모습이 무척 이쁘다고 생각하고 농담으로 접수했던 일도 있다. 그래서 별 생각 없이 모든 동창 모임에 계속 참여했었는데.
결국 2006년 가을 회갑을 맞은 동창들의 추억 여행 당시, 남학생을 통해 다시 들은 일부 여학생들의 불평을 그냥 묵과할 수는 없었다. 함께 자리했던 동창들은 그게 뭐 들어 볼 가치가 있느냐고 그냥 무시하라고, 너답지 않게 뭘 그런 걸 신경 쓰느냐고, 만약 활동을 중단한다면 무지 실망 할거라고, 의견들을 말했지만, 난 아니다 라고 생각했다.
누구보다도 나 자신이 글을 쓰고 싶어했고, 글쓰는 일에 자신 만만했던 시절이 있었던 사람이다. 그 당시엔 웬만한 글엔 감동하지도 않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던 사람이다. 내가 쓰면 훨씬 더 잘 쓸 수 있을 거라고 고개가 빳빳했던 사람이다. 그랬던 내가 이런 상황을 이해 못 한다면 누가 그 아픈 마음을 알아 줄 것인가.
이렇게 깨닫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다. 처음엔 우선 성가신 마음이 들었다. 구태여 이런저런 소리 들어가며 동창사이트 드나들 필요 없다고 결정했다. 어떻게 생각하면 얻는 것 없이 시간만 죽이는 일에서 탈피하게 됐으니 오히려 잘 됐다고 자신을 위로했다. 세상은 어차피 내가 주인공인데 나 싫다는 곳에서 발 빼며 사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했다.
그렇게 아무런 불편 없이 몇 개월을 지냈는데 엊그제 문학서재에 방문한 친구의 말이다. 동창 사이트 사랑방에서 사라진 모습을 궁금해하며, 까르르하는 내 목소리 듣고 싶다고. 담담하게 내 모습 감추게 된 사연을 알리다가 불현듯 내게 불평을 하던 얼굴이 떠올랐다. 내 흔적이 사라진 지난 몇 개월 동안 그 동창은 마음이 편했을까. 앓던 이 빠진 것처럼 시원했을까. 그렇다. 비록 작은 숫자일지라도, 아니 단 한 사람일지라도 나로 인해 마음이 아프지 않도록 내가 처신하며 살아야 한다.
할 수만 있다면 마음 다치지 않고 살고 싶은 것이 내 소망이다. 그러니 어느 누구에게라도 나 때문에 마음 아플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한편으론 까르르 대는 나를 기다리는 친구도 있지만 그 기다림은 내 문학서재에서 해결이 된다. 누군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출입을 삼갔던 때는 지났다. 그 누군가의 마음을 편히 해 주고 싶어서 사랑방 출입을 계속 삼가야겠다. 사랑하는 마음이 생긴 것이다.
역시 글로 표현하는 일이 어렵긴 하다. 나를 마다하는 친구도 나를 기다리는 친구도 모두 다 행복하길 바라는 내 마음이 보였으면 좋겠다. 지금은 내 친구들 모두를 사랑하게 되었으니까.
2007년 2월 27일 오전 10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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