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신호 선생님, 그 큰별

2005.10.27 08:38

노기제 조회 수:738 추천:106

102605                강 신호 선생님, 그 큰 별
                                                                박 기순

        소문이 났다. 기순이가  강 신호선생님을 좋아 한다고. 모이기만 하면 수근덕 대는 반 아이들의 삐죽대는 모습에서 부러워 하는 표정을 읽었다. 세대가 세대인 만큼 무리와 맞지 않게 조숙했던 아이 하나의 일거수 일투족이 소문거리가 된 것이다.  1959년 서울 사대부중에 입학했던 당시의 사건이다.
        입학 성적으로 반장이 되고 아직 아이들끼리 얼굴도 익히지 못한 첫 번째 지리 시간이다. 차렷 경례의 구령이 끝나고 자신을 소개하시는 선생님의 핸섬한 모습에 우리 모두는 술렁대고 있었다. 이어지는 말씀, 선생님은 말에요 전쟁에 참전 했던 군인이었구 전쟁에서 팔 하나를 잃었어요. 그래서 지리 선생님은 앞으로 계속 왼쪽 팔을 양복 주머니에 넣고 다니실 꺼에요.
        말씀이 끝나자 우르르 일어나는 아이들, 선생님의 왼 팔이 진짜로 양복 주머니에 들어가 있는지 각기 제 눈으로 확인하려고 어수선 해 졌다. 다시 차렷 소리가 났다. 아이들을 진정 시키고자 생각해 낸 반장의 순발력이다.
        이어지는 수업에 4번 일어나. 엄한 음성으로 바뀌신 호출에 벌떡 일어선 나. 반장에게 꾸지람을 하시려나 생각 되던 순간이다. 4페이지 읽어. 얼떨결에 책을 펴니 첫 페이지가 바로 4페이지다.
        무슨 내용이었나는 기억나지 않는다. 두 서너 페이지 정도 읽었나 모르겠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아 마치 라디오 방송을 들은 것 같다. 선생님의 말씀에 난  부끄러워 그만 고개를 숙였다. 벅차 오르는 희열이 얼굴을 달궜다. 무슨 영문인지 모르는 아이들은 그저 잠잠했다. 그만큼 잘 읽었단 말이다.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서야 겨우 알아차린 아이들이지만, 첫 마디에 그 뜻을 알아차린 난 세상에 태어나서 맨 처음으로 아주 엄청난 칭찬을 받았던 것이다.
        그 순간에 내 가슴엔 커다란 별하나 숨겨 놓게 되었다. 별이 되어 내 가슴에 살기 시작한 강 신호 선생님. 어찌 그 커다란 행복이 꽁꽁 숨어 있을 수가 있겠는가.
시도 때도 없이 삐죽삐죽 얼굴을 내미는 통에 같은 반 아이들은 물론 선생님들 사이에도 커다란 골칫거리로 자리매김을 했던 모양이다.
        그 당시에 내가 생각 했던 선생님을 향한 마음이나 나이 육순이 된 지금의 마음이나  변함이 없다. 나를 인정해 주신 분, 나의 가치를 알아 주신 분, 이 얼마나 내게 소중한 분인가. 좋아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그 마음이 보여지는 것이다.
        그게 뭐 그리 큰 일이라고 중학 3년 동안 선생님들 사이에 회의 안건이 되고, 담임을 누가 해야 할지 걱정들을 하셨다는 뒷 소리에 난 그저 평온 했었다. 어른들이 어른 답지 못하단 생각까지 했었다면 누구 믿을 사람 있을까. 그 때 난 이미 나이 찬  어른의 생각을 하고 살았던 거다. 그 이후로 더 성숙하지도, 키가 더 크지도 않은 채 오늘의 내가 있다. 그래서 때론 철부지의 모습이 나타나는가 보다.
        다른 한 분, 공민을 가르치시던 태 성옥 선생님이 우리 반에만 들어 오시면 예외 없이 내게 책을 읽으라셨다. 아무 말씀 없으시다. 그냥 책을 읽게 하신다.  읽기가 끝나면 아주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따뜻한 미소를 내게 보내시곤 하셨다. 아이들 어느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한 일이다. 그러나 난 알았다. 말씀으로 표현되지 않은 칭찬이란 것을. 그래도 태 성옥 선생님이 강 신호 선생님처럼 좋아지지 않았다. 소리 내어 칭찬해 주시지 않은 탓이리라. 아니면 첫 번째가 아닌 때문일까.
        제일 먼저 알아주는 사람, 제일 먼저 칭찬하는 사람, 계속 곱게 봐 주는 사람, 바로 이런 조건들이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염두에 두어야 할 사항임을 뒤 늦게 깨달았다. 어릴 때 한 번 해준 칭찬이 그 아이 일생을 꼴 짓는 데 커다란 역할을 담당한다. 물론 정서적으로도 안전성을 키워주는 요소다. 칭찬듣고 자란 아이는 결코 곁길로 빠지지 않는다. 따뜻한 아이로 성장한다.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이 남 다르다. 많이 베풀며 살 줄 안다. 받은게 넉넉하니까.
        계속 갈고 닦을 기회는 없었지만 작은 일에 사용하고 있다. 하늘이 주신 특기이니 선교방송을 맡아 말씀을 전한다. 말씀을 낭독하면, 듣는 이들의 마음에 파고 들어, 꼼짝 못하게 하는 어떤 힘을 느끼게 한다는 후평을 듣는다.  문학인들 모임에서도 내 낭독을 선호하는 이들이 있다. 그냥 듣고 있노라면  평온 해 지고, 취해서  마음을 온통 빼앗기는 그런 느낌이라고.
        이런 칭찬들에도 내 마음은 여전히 강 신호 선생님께만 향하고 있다. 그 어린 마음에 기쁨을 주셨던 칭찬. 아직도  빛나는 커다란 별, 내 가슴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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