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마음 설레게 하는 에너지

2005.11.01 09:11

노기제 조회 수:712 추천:123

102405                남의 마음 설레게  하는 에너지

                                                                        노 기제

        목이 마르다. 나만이 느끼는 증상은 아니다. 내가 아는 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이 심한 갈증으로 애 쓰고 있다. 나의 이 어떠한 면을 알아주길 바라는 목마름. 내가 가진 아주 특별한 어떤 점을 기억 해 주길 바라는 목마름. 내가 한 행동의 역사를 외워 주길 바라는 목마름. 내가 처해 있는 지금 이 순간의 상황을 아주 상세히 눈여겨 보아 주길 원하는 목마름.
        나와 똑같은 용량의 가슴을 가진 타인에게 이렇듯 엄청난 기대를 품고 살기에 우리 인간은 항상 외로울 수 밖에 없나보다. 누군가 나를 알아주지 않는가 바라기에 앞서, 내가 자진해서 저들에게 그리 해 보자. 그리하면 저들 모두는 나를 끔찍하게 사랑하고, 아주 중요한 사람으로 언제나 기억할 것이다.
        2004년 8월, 미주 문인협회에서 주최하는 문학캠프에서다.  초청 되어 오신 교수님 한 분이 내 가슴에 콱 꽂혔다. 행사장에 도착해서 등록을 하는 동안 곁에  계신 한 분의 모습이 낯 설다. 새로 등단 한 문인인가 생각했다. 깔끔한 인상에 내 또래가 아닌 한 층 젊어 뵈는 모습이 우선 관심을 두게 된 동기다. 스치는 듯 눈 인사만 하곤 돌아섰지만, 뒤 통수를 끌어 당기는 힘을 어쩌지 못해 저녁시간 내내 먼 발치서 눈으로 그 분을 따라 다녔다.
        내 가슴에 붙여 진 명찰을 유심히 보신다. 그리곤 배부된 강의용 발행물을 뒤적인다. 내게 관심을 쏟고 계신 걸 직감했다. 무슨 일일까? 우리 미주 문인 협회엔 나보다 훨 젊고 예쁜 작가들이 제법 있는데, 내게 관심을 둘 이유는 전혀 없는 상황이다. 착각하지 말자. 흔들리지 않으려 굳게 마음을 다지면서도 나의 온 신경은 그 분의 주위를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어수선한 내 맘이 집중을 못하면서 70여명 함께 한 저녁 식사가 끝났다. 초청되어 오신 강사님들의 강의가 시작 되었다. 앞에 앉으신 두 분의 강사님을 뵙고서야  그 분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소설가 이시며, 문학 평론가이신 김 종회 교수님 이시다. 나 혼자 느끼고, 나 혼자 설레고, 나 혼자 가슴 부풀어 했던 순간들이 멋적어  빙그레 웃으며 난 그냥 행복했다.
        차례가 되어 강단에 서신 교수님의 넉넉한 표정이 나의 착각을 아주 온화하게 감싸 주실 느낌이다. 앞자리에 앉은 내게 느닷없이 “이런 사람 있어요” 란 글을 쓰신 노 기제씨 라며 호명을 하신다. 봄호에 실린  내 글을 끄집어 내어 강의실을 채운 사람들에게 나를 아는척하시니 그런 상황에 황홀해 하지 않을 사람 있겠는가. 생전 처음 보는 사람에게서 이런 관심을 받고 보면  갑자기 세상은 아름다워지고, 살맛나는 세상이라고 찬사가 쏟아져 나오기 마련이다.  그 때 내 마음이 그랬다  
        김 교수님의 남 알아주기 성품에 마음을 뺏긴 사람이 나 하나 뿐이 아니다. 수 편의 시를 줄줄 외워 청중을 매료시키는 멋진 교수님이어서가 아니다. 똑 부러지게 칼날을 세운 작품평이 정곡을 찌르는 신랄함 때문도 아니다. 상대를 중요한 위치에 놓고 정성을 다해 시간을 할애 하신다. 뭉텅이 단체가 아닌, 오직 한 사람에게  개인 지도 하시듯, 눈을 맞추고 마음을 맞춰 주는 성품 때문이다.
    친구의 위치도 아닌, 동료의 위치도 아닌, 글잡이 교수님이다. 좀 더 좋은 글을 쓰도록 우리 미주 문인들을 이끌어 주시려 일 년에 한 번씩 두 번, 초청되어 오신 문학 평론가다.  무조건 아부성 발언으로 칭찬을 하시는 분이 아니다.  작가와 작품을 떠나 인간의 존재, 한 사람의 중요한 가치를 부담 없이 애정어린 보살핌으로 느끼게 해 준다. 급기야는 아하 나도 괜찮은 존재로구나를 자신있게 인정할 수 있게 해 주는 특별한 재주가 있는 분. 그래서 난 그분을 사모하는 상태로 일 년을 지냈다.  금년에 다시 오신 문학캠프에서  다른 일 년을 살아갈 넉넉한 에너지를 충전 받기도 했다.
    교수님이 갖추신 위엄을 파괴하지 않는 정도의 유머에 모두의 가슴은 열린다. 별빛아래  펼쳐지는 엉성한 노래잔치에도 누가 어떤 노래를 부르다 머뭇거려도,  완벽하게 노랫말을 일러 준다. 분명 우리에겐 안 보이던 가라오께를 교수님만 보고 계신 듯, 착각하게 한다. 어느 한 순간도 소홀함이 없이 자신의 모든 것을 동원해 다른 사람에게 퍼 준다. 그로 인해 사랑 받고 있다고 느끼게 해 준다. 관심을 기울여 너를 바라보고 있다고 말해 준다.   해박함에 어우러진 따스한 말의 율동이 그 자리에 함께한 모든 이들에게 전해 진다.
   차가운 밤 바람이 그 곳을 비껴 간다.  어느 틈새로도 한기가 침범 할 수 없다. 새벽이 되며 흐터지는 무리는 해가 솟아  모습을 달굴 때 이별을 감당해야 한다.  그리곤 기다려야 한다. 어쩌면 기다림이 힘겨워 빠른 만남을 주선 할 지도 모른다. 나도 함께할 수 있는 만남이면 좋으련만.
   앞 서거니 뒤 서거니 교수님 태운 차를 따라 옆 레인에서 달릴 때 차창에 바짝 얼굴 보이시며 멈추지 않고 흔들어 주시던 두 손. 동그라미를 그리며 바람되어 내게로 스며 들어 온다. 그리곤 속삭인다. 넌 중요한 사람이야. 좋은 글을 쓰고 있잖아.  이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이지. 내가 지켜 볼게. 다음 작품 기대 한다.
   김 종회교수님 한 분의 힘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전 할 수  있을까. 누구든 김 교수님의 사랑을 느낀 사람은 똑 같이 그렇게 살면 된다. 문학캠프에 모였던 70여명이 또 다른 70명에게  그 다음 다시 그렇게. 당신은 중요한 사람이야. 이 세상엔 당신이 꼭 있어줘야  하거든. 당신은 지금 사랑 받고 있다는 거 느낄 수 있지?
   며칠 전 신문에서 김 교수님의 기사를 읽었다. 기다림이 힘겨워 아름다운 만남을 꾸며 낸 몇 분의 소설가들이 있다. 멀리 콜로라도에서 문학캠프에 참석 했던 소설가 한 분이 흔쾌히 자택을 개방 했다. 태평양 건너 계신 김 교수님 모셔다 이름하여 소설가들의 재 충전 교실이었나 보다. 이별한지 두 달도 채 안되었는데. 그들의 김 교수님 사모하는 마음이 백일하에 들어났다. 몇 소설가들의 각종 갈증이 해갈  되었을 부러운 모임 얘기다. 나도 진작에 소설에  입문 해 둘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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