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순 없지만, 동정이라도

2006.01.17 03:37

노기제 조회 수:879 추천:138

사랑할 순 없지만 동정이라도

                                                        노 기제
        “오늘도 페이 첵 없는거유?”
        “그냥 자.”
새해를 맞고 열흘이 되었는데 작년도 마지막 페이 첵이 감감 무소식이다.
산악인들 저녁 모임후 늦은 시각에 귀가한 남편에게 잊었나 싶어 그냥 던진 말인데 대답이 심상치 않다. 사태가 심각한 모양이다.
          남편이 오래동안 운영하던 약국을 정리 했다. 아직 은퇴 할 나이는 아니지만 산 오르기를 갈망하는 마음에 시간을 얻고자 내린 결단이다. 마침 약대 동창의 주선으로 한인타운으로 이주했다. 약국문을 닫는 순간부터 모든 실질적 권한이 그 동창에게로 이전 됐다. 한인타운의 새로운 장소를 정하는 일, 새 이름을 부치는 일, 도와 줄 사람들을 선택하는 일, 약국을 꾸미는 일, 필요한 물건을 들여 놓는 일등 무엇하나 남편이 관여한 부분이 없다.
           그 동창이 하는대로 따라가 준 것이다. 물론 변호사가 작성한 계약서에 서로가 사인을 했고, 3주안에 합의된 권리금도 우리에게 넘겨 주기로 되어 있다. 앞으로 10년 동안, 자기와 함께 일 해 달라는 사항은 내가 반대 해서 삭제 했다. 일 주일에 사흘만 일하자고 우리 부부가 원했다. 법적으로 명의가 이전 될 때 까지만 일하기로 했다. 한인타운의 실태가 남편이 사업하는 방향과는 엄청 다르다.  매스콤에 자주 거론되는, 메디케어 환자들과의, 진실보다는 거짓이 더 우세한 경영방침에 남편은 견뎌내질 못한다.
                  어리석은 얘기지만 동창이니 믿고 시작한 일이다.  그 동창의 면허증에 문제가 있단 소리를 나중에 들었다. 그것도 딴 사람에게서. 본인 뿐 아니라 그 동창 부인도 따로 약국을 경영하는 약사인데 부인의 면혀증도 일단 정지 상태 였단다. 무슨일로 그런 처벌을 받았는지는 자세히 알려하지 않았다. 이미 일은 벌어졌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렇기 때문에 우리 약국을 자신의 명의로 이전해가지 못하는 상황인 모양이다. 약속한 권리금도 주지 않는다. 새로 시작한 장소가 문제가 있다며 오픈하는 것을 미룬다. 가까이에 딴사람 이름 빌려 운영하고 있는 자신의 다른 약국에서 닷새 일하란다. 사흘을 고집해서 일하고 있었다. 장소를 이전한 후 오개월 동안이나 실제 기능이 마비되었던 새 약국을 새해부터 오픈 해보니  보혐회사들, 메디케어와의 모든 연결 번호들이  차단 되었다는 사실이다. 별로 놀랄 일이 아니다. 다섯 달을 잠잠하다가 이제 시작하겠다니 그 정도 문제는 예측했어야 했다.
                 그 동창에게 샹황을 알리자 버럭 화를 내며 한다는 소리가 “남는 것두 없구 그만 두자, 변호사 한테 연락하라구 할게.” 했단다. 내게 얘기하지 않으려 했었는데 그냥 말이 나왔다고 남편이 미안해 한다. 남는게 많을 줄 알구 일을 벌렸구 무슨 꿍꿍이 속셈인지 알 수는 없지만 혼자서 이랬다 저랬다 해오다가 이제와서 남는게 없다구 없던일로 하자며 월급도 안 주는 모양이다.
                  며칠째 밤잠을 설치는 남편을 보며 하늘을 본다. 어떤 기도를 드려야 하나. 내 맘 같아선 당장 그 동창 찾아가 따지고, 욕이라도 하고 싶은데, 남편이 말린다. 그냥 두고 보잔다. 그러면 어쩌자는 건가?.  또 믿고 기댜리자는 말인가?  어림없는 얘기다.  참고 기다리면 아주 바보멍청인 줄 알거다. 자기 멋대로 약속 따윈 지킬 생각도 안한다. 어떤 거짓으로 우리에게 올가미를 걸지도 모른다. 변호사? 그렇겠지. 이런일 한 두번 해 본 사람도 아닐테니 교묘하게 법을 이용하겠지.
                  내가 상대하면 아주 따끔하게 잘 처리 할 수 있는데. 남편이 막는다. 내가 모른척 해 주길 바란다. 그래서 나도 잠을 설친다. 퍼대지 못해서. 그런 사람을 사랑하라고 하신다. 두들겨 패주고 싶다. 욕바가지 펴 붓고 싶은데 어찌 사랑하라 하실까. 하나님두 참 이상하시다. 한 껏 양보해 보니 많이 불쌍하단 생각이 든다. 왜 그러구 살아야 할까. 예쁜 딸래미 까지 키우는 사람이 아이 앞에 무슨 보일 게 없어 그런 모습을 보이며 살까. 언제까지 살고 싶길래 그렇게 많은 돈이 필요 한걸까.
                  불쌍한 생각이 들긴 해도 난 역시 오늘밤 편한 잠을 이룰것 같진 않다. 왜 내가 이렇게 불편해야 되며, 왜 같은 방식으로 대응하지 말아야 하며, 왜 부아가 치미는데 말도 못하고, 내가 아프기까지 해야 하는 것일까. 남편은 날 사랑하지 않나보다. 그 동창은 그렇게 참고 기다리며 봐 주면서 왜 내겐 아는 척 말라고만 하는 건가. 언제까지 이렇게 평안을 빼앗긴 채 기다려야 하나? 이러다 내가 죽을 수도 있겠다. 숨이 막힌다. 그래도 나더러 가만 있으라고? 진짜 죽고 싶다.
                  오늘도 남편은 약국으로 출근 한다. 담당자 찾기도 힘든 보험회사들과 연락해서, 끊긴 번호 재생하려고 묵묵히 나간다. 그 동창은 변호사 통해, 장사할 수 없게 되었으니 거기에 따른 손해배상을 하란 편지를 보내왔다. 누구 때문에 일이 이지경이 되었는데. 맨 처음 약국을 옮긴 시점에선 모든것이 다 작동했고, 계속 오픈한 상태라면 이런 일은 결코 있지도 않았고, 있다 해도 곹 해결 할 수 있었던 문제가 아닌가.
     내가 죽고 싶은 건, 가까운 사람, 믿고 사는 사람에게서 받은 부조리한 대우로 상처가 깊기 때문이다. 그런 대우에도 묵묵히 견디는 남편이 답답하기 때문이다. 더 많이 그 동창이 불쌍하게 느껴지면 아마 난 숨을 쉴 수 있을거다.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2006,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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