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쪽같이 나를 숨기고

2006.05.23 04:48

노기제 조회 수:693 추천:128

06/0522                        감쪽같이 가려진 모습

                                                                        노 기제

        빠르게 변하는 시대를 따라가느라 콤퓨터를 배웠다. 전문적인 일을 할 땐 바로 그 분야에서만 콤퓨터를 사용했으니 별 불편함이 없었다. 그러나 여가로 즐기는 동창 사이트나 문우들의 총집합 사이트에 들어가면  각종 기술이 부족해서 좋은 음악도, 멋진 그림도, 뛰어난 글모음도 퍼다 나르지 못해서 사이트를 꾸미는 데 일조하지 못하고 있다.
         누군가 콤퓨터에 뛰어난 실력을 가진 친구가 희생정신을 발휘해서 어렵사리 우리들만의 사이트를 마련하고 동창들에게 활짝 문을 열어 초청을 한다. 그 초청을 받아들이는 것도 만만치 않다. 안내문을 읽고 그대로 따라 하면 회원이 되건만, 그 조차도 쉽게 입문하지 못하는 동창이 많다. 새로운 것을 배우기가 귀찮기도 하고, 회원 가입이 아주 쉬운  절차가  아닌 만큼 회원 되기를 중도에 포기하는 친구들도 있다. 자신의 이모저모를 다 입력해야 드디어 회원으로서 허락을 받게 된다.
        그런 사이트를 만들려면 콤퓨터 실력도 필요하지만, 시간도 엄청 희생해야 한다. 물론 비용이 들기도 한다. 그래도 어릴 적 친구들을 모아  한 방에서 오순도순 얘기 할 수 있는 특권을 나눠주고 싶어서 기꺼이 희생을 자처하는 친구가 있다.
        그러나 자리 마련해준 친구의 성의를 왜곡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어떤 이는 입을 삐죽이며 우리나이에 별난 짓들 다한다는 표정을 보이기도 한다. 혹자는 할 일도 없냐는 듯, 개인 정보를 시시콜콜 다 알리는 일에 동의하지 않고 그냥 빠져나가기도 한다. 일절 참여하지 않는 것도 그런 생각을 하는 동창들이 아닐까  추측된다.
        허기사 쉽게 참여 할 수 없는 이른바 콤맹도 간혹 있다. 그래도 그들은 마음으로 응원하고 언젠가는 콤퓨터를 정복해서 기필코 참여하리라 다짐을 하기도 한다. 또 어떤 이들은 자신이 걸친 수많은 껍데기를 하나도 벗고 싶지 않아서 계속 살금살금 뒤꿈치 들고 들락날락 하고 있다. 들어가 보니 낯익은 이름들이 이런 말 저런 말로 옛 어릴 적 추억들을 하나씩  들춰낸다. 무지 재미있다. 더러는 생소한 자기들만의 추억도 엿보게 된다. 그들의 벌거벗는 모습에 감동도 받는다.
        그러나 언제나 참여하는 친구들은 정해져 있다. 그런 좋은 자리를 마련해 준 친구가 고마운 마음에, 또는 내가 열심히 참여해서 본을 보이면 다른 친구들이 따라 참여 해 줄 것 같아 기를 쓰고 댓글을 달아 준다. 페이지 전체를 차지 할 만한 실력이 없기도 하지만 벌거벗기 싫어서 그냥 다른 친구가 장식해 논 페이지 끝에 꼬리말을 달아 응원이라도 보내는 것이다.
        그렇게 내 딴에는, 아까운 시간 희생해서 참여하는 모든 친구들 응원하며, 바람을 잡는다. 한 동창이라도 더 참가하게 하고픈 욕심이다. 물론 나 스스로가 즐기면서 하는 짓이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화들짝 놀라는 일도 있다. 과연 내 모습은 무얼 말하는 걸까? 잘난 척 나서는 일은 아닐까.  적당히 맛보기로만 보여 줄 것이지 그렇게까지 하나도 안 거르고 다 나서 대니 들락날락만 하는  무리들에게 미움께나 받겠단 생각이 들었다.
        주춤 한 걸음 물러서며 본래의 누더기 다시 걸쳐 입고, 어느 누구도 나를 알아 볼 사람이 없는 사이트에 가입을 했다. 영화도, 드라마도, 음악도 무료로 다운로드 받아서 언제나 내가 원하는 시간에 콤퓨터로 재생해서 보고들을 수 있는 클럽이다. 꼬리말도 젊은 세대 투를 흉내 내서  올린다. 오가는 대화의 주제도 지금까지의 나답지 않은 신세대 맞춤형을 택한다. 짜릿하니 젊은 피가 수혈된다.           

        완전하게 나를 숨겨 놓으니  사뭇 새로 만들어 진 나의 존재를 인식한다. 지금의 난 십대로 인식 될 수도 있다. 혹은 이십대 일 수도 있다. 그들의 언어를 따라 해 본다. 그들이 속아 준다. 쉽게 대화가 통하니 같은 또래라고 믿어 버린다. 꼬리가 길어 들키지 않으려면 너무 자주 내 모습을 보여 선 안 된다. 아주 조금씩 맛만 보여 준다. 자신만만한 그들은 자신들의 사진도 서너 장씩 올려놓는다. 모두 이쁘다. 생기발랄하다. 대부분 학생들이다. 직장 초짜들도 있다. 군 입대를 앞둔 청년도 있다.
        매일 십여명의 사람들이 지구촌 각처에서 페이지를 장식 해 논다. 좋은 음악을 올리기도 하고, 좋은 글을 퍼다 옮겨 놓기도 한다. 또는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기도 한다. 그러면 그 글을 읽고 느낌을 써 주기도 하고, 음악을 듣고 감상문을 간단히 올려놓기도 한다.  때론 인생 상담을 필요로 하는 글이 올라온다. 같은 종류의 고민을 하는 같은 또래인 척 가려운 곳 시원히 긁어 주는 도움말을 준다. 내 나이를 속이려는 생각은 없지만,  구태여 홀딱 벗고 나설 필욘, 더더구나  없다. 내가 그 또래 적에 생각했던 삶을 떠올리면 쉽게 대답이 나오게 된다.
        난 지금 타임머신을 타고 여행중이다. 내 나이 몇이란 숫자를  감쪽같이 숨겨 놓고, 10대와 20대, 많게는 30대 사이를 훨훨 날아다니는 신나는 여행이다. 이왕이면 칭찬으로 격려 해주고, 아름다운 마음 가꾸는 언어만 써 주면서 신명나는 시간들을 즐기도록 돕고 싶기 때문이다.

                                                        06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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