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춤, 머뭇거려지는 순간

2006.09.06 04:47

노기제 조회 수:674 추천:116

090606                주춤, 머뭇거려지는 순간
                                                                        

        여행을 간다는 생각만 해도 가슴이 시원해져 옵니다.  그것도, 세상이 마냥 말갛게  고운줄만 알았던 시기를 함께 지낸,  중고교 동창들과의 여행이라면 관광회사 따라 타인과 합류하는 여행에 비교 할 수 없이 마음이 순수 해 진답니다. 보통 우리들 마음은 그 때 , 그 시절의 수학여행 쯤으로 착각을 하기 마련이니까요.
        한국에 있는 동창들이 주축이 되어 마련하는 이번 여행은 이름하여 추억여행 입니다.  나이가 훤히 보이는 회갑여행 보다는 훨씬 풍기는 맛이 젊다는 자평입니다. 어느새 우린 회갑이란 나이를 내 세우기  싫은 중년?이 되었단 증거입니다.
        여행이란 언제나와 같이 일상을 떠날 수 있어서 매력적입니다. 여자의 경운 밥 안 하고, 빨래 안 하고, 남편과 식구들 수하에서 훌쩍 빠져 나갈 수 있다는 자유함. 그리고 남자는 무조건 혼자가 되어 보는 귀중한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추억 여행에 참여하기를 결정했습니다. 남편의 하루 세끼 식사가 걱정 되기도 하고, 좀처럼 혼자 떨어져 있지 않으려는 이쁜 강아지 윈디 걱정이랑, 걸리는 조건이 없는 건 아닙니다.  모른 척 하기로 했습니다. 자꾸 생각하면 떠나지 못 하니까요. 그리곤 참석 못 한다는 친구를 졸라대기 시작했습니다.
        젖먹는 어린애가 딸렷나, 돈어 없나, 이런 기회가 밤 낮 주어지는 것도 아닌데, 뭣 때문에 안가겠다는 거냐고 사뭇 큰소리까지 내면서 손을 잡아 끌고 있습니다. 역시 일하는 남편 혼자 두고 가기가 미안 하기도 하고, 그게 뭐 그리 재미 있겠느냐고 반문합니다. 우리 나이 숫자가  육공이다 보니 벌써 모든게 귀찮아 진 거죠. 어디에서도 재미를 찾을 수 없고, 꼼짝 하기도 싫고, 만나고 싶은 사람은 더더욱 없는 나이 인가 봅니다. 내일 일을 알 수 없이 밤새 안녕이란 인사가 그리 먼 이야기 같지 않기 때문에, 바로 그러니까 다 떨치고 가자고 막무가내 욱박지르고 있습니다.
        그러다 주춤 머뭇거립니다. 막상 여행에 참가하고 싶어도 경제가 허락하지 않아  얼굴 내밀지 못하는 친구가 있기 때문입니다. 같은 해 졸업생이라면 누구나 들어와 즐길 수 있는 웹 사이트에도 이름 석자 내 걸지 못하고 들락날락 발꿈치 들고 걷는 사람 있을것입니다. 건강이 허락해서 함께 이런 얘기 저런 얘기 주거니 받거니 하던 친구중에도 점점 나빠진 건강으로 무리에서 빠져 나간 친구도 있습니다.
        깊은 호흡 한 번으로 배속을 채웠습니다. 그리곤 멈춰 봅니다. 병상에서 암울하게 지내는 친구의 얼굴이 아른거립니다. 명예 퇴직이니, 조기 은퇴니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일자리 놓친 남자 동창들의 확실하지 않은 모습들이 다가섭니다. 그중엔 다행스럽게도, 몇 년 더 간신히 턱걸이로 매달려 있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그러니 직장을 빠져나와 한가롭게 동창들과 여행이라니, 언감생심 꿈도 못 꾸는 친구도 있을겁니다.
        중학교 3학년 때, 부여로 갔던  수학여행에 참석하지 못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 당시 우리집 형편은 정규적으로 돈을 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가장인 아버지는 전혀 집안 살림에 신경을 쓰지 않는 듯 했고, 엄마는 밤낮 친정으로 다니며 우리들 학비랑 생활비를 얻어 오시는 듯 했습니다. 먹는 것은 언제나 풍족 했고, 입는 것도 걱정은 없었는데, 먹고 입고를 떠난 그 외의 생활은 감히 엄두도 내지 못했던 걸로 기억이 됩니다.
        수학여행, 어찌 가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생각 없이 그 말을 할 수가 없었던 거죠. 그렇담 엄마가 또 친정으로 가셔야 합니다.  싫은 소리 듣더라도 마련해  주실 테니  모른척 말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난 그러지 못하고 아무일도 없는 양, 다들 수학여행을 떠난 학교에 날마다 등교하곤 했답니다.
        물론 나 혼자만 못 간 것이 아니고 한 반에 대 여섯명씩 있던 걸로 압니다.  그 때 혜령이가 바로 전학을 와서 함께 얼굴 익히던 날들이 생각납니다. 똑 같이 수학여행에 참여하지 않고 남아서 수업을 받았어도 혜령이의 마음과 내 마음은 하늘과 땅 차이였을 겁니다.
        그 나이, 그 친구들, 그 좋은 기회가 내 인생에 다시 찾아 오지 않는다는 걸 확실하게 알아 차렸다면, 무리를 해서라도 엄마를 졸라 수학여행을 갈 걸. 지금은 후회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내가 이모양으로 극성을 떨고 있답니다.
        이런 기회가 언제 다시 올는지? 내일 어떤 일이 닥칠는지? 조건이 웬만하면 그냥  함께 가자는 겁니다. 마음 같아선, 여의치 않은 친구  몇 명쯤 함께 가도록 마음들을 모아 보고픈 심정입니다.                                        2006,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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