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상과 거짓서류

2004.08.09 05:36

노기제 조회 수:591 추천:119

080404                        수입상과  거짓 서류

                                                                        노 기제(전 통관사)
        거짓말! 누군들 진실하게 살고 싶지 않을까. 사실대로 다 말 해 버리면 그것을 이용해서 내게 불이익을 던져주는 세상이다. 그렇게 살면 똑 떨어져 혼자가 되기 쉽다. 무어 그리 생기는 것이 많아서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니다. 즉 이익이 엄청나게 많이 남으니까, 거짓서류로 꾸미면서까지 금지 된 물품을 들여 오는 건 아니라는 뜻이다. 그들의 변명을 들어 보면 고개가 끄덕여 진다. 이해 할 수가 있다. 동정도 간다.
        얼마전 주요 일간지에 대문짝 만한 기사가 실렸다. 고기가 함유된 품목을 김치볼로 표기 된 거짓 서류를 작성 해서 제출 했다가 농무성에 발각이 되었다는 기사다. 회사 사장과 그 부인은 체포 되었단다. 부인은 전무란 직책으로 일 했기 때문이다. 나와 관련이 있는 기사이니 먼저 읽은 남편이 내게 신문을 건넨다. 걱정스러운 표정이다. 또 여기저기 불려 다닐 것 아니냐며.
        1999년도의 일이라면 지금 부터 5년 전의 일이다. 바로 내가 당했던 일이다. 내 손님이었던 그 회사는 그 일 이후 화사 이름을 바꾸고 통관사도 바꿨다. 그 당시 농무성에서 인스펙터가 내 회사에 찾아 왔다. 그 시점을 기준으로 지난 4년 동안의 통관 서류 전부를 복사 해서 제출 하라는 통고와 함께 법원 출두를 준비 하고 있으라는 지시였다. 이유를 물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니 이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린가 싶어 따지고 들었다.
        문제의 그 수입업체가 들여 온 물품 중에 고기가 함유 되어 있다는 것을 넌 몰랐단 말이냐고 내게 반문 했다. 그럴리 없다. 서류는 내가 받아서 내가 분류 했고 내가 세관과 식약청과 농무성에 제출 했지만 전혀 그런 물품은 없었다. 모든 수입상들의 서류는 내가 직접 분류 작성 하고, 타이핑이나 정리 같은 잡무는 사원에게 시키는 것이 내 방침이다.  서류 전체를 언제나 내가 직접 했으니 그만 큼 자신이 있었다. 수입상들이 내게 가져 왔던 모든 서류가 진실이었다는 확신 아래 난 큰소릴 치고 따져 물었던거다.
        서류상 문제 없이 통관이 되고, 시중 마켓에 물건이 나가고 소비자에게 유통이 되는 과정에서 식약청이나 농무성에선 가끔 검시관이 나간다. 마켓에 진열 된 물품을 직접 확인 하는거다. 물론 모든 물건이 다 검사를 당하는 건 아니다. 용케도 피해가는 수입자가 있다. 전혀 검사 당하지 않는 물품도 있다. 그걸 운이라고 말 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그렇게 해서 내겐 피할 수 없이 부과 된 쓸데 없는 일이 생겼다. 일의 종류가 정말 하찮은 일이다. 통관이 됐던 서류를 그 수입상 것만을 골라 냈다. 한 서류 철에 보통 20여 장이 된다. 4 년치 양이면 종이 매수로 몇 천장이 된다. 조심스러워 사원을 시킬 수도 없다. 자칫 실수로 또 어떤 불이익을 당햐게 될지도 모른다. 그냥 다 팽개치고 주저 앉고 싶었다.
        
        결국 일에 대한 애정도 식고, 의욕도 상실하고, 사람에 대한 믿음도 사라지고 농무성에서
원하는 일을 다 해 주기도 전 난 그만 마음부터 지쳐버렸다. 새로 들어오는 물건을 통관해야 하는데 도무지 자신이 없다. 혹시 이 수입상은 뭘 또 숨겨 들여 오나? 서류에 어느 부분이 거짓말 일까. 가슴은 뛰고 일의 속도는 느려진다. 자부심을 갖고 재미 있게 하던 내 일이 무서워 진 것이다.
        이미 다 잊을 만한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이제서야 구금 조치가 내려지고 사람이 다치고 있다. 이런 사실이 신문지상에 노출되자 많은 사람들이 훔칠 놀라는 모습이다. 수입하면서 거짓서류 한 번 안 꾸민 사람 있음 나와 보라구 해.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세상인 데 재수 없이 아무개가 걸린 거지. 주머니 털어 먼지 안 날 사람이 어딨게?
        미국 정부가 하는 일엔 시간이 걸린다. 대충 넘어 갔으려니 생각 했었는데 꾸준히 조사하고, 지켜보고, 경고를 주고 또 기다려 준다. 그 일이 있은 후에  다른 수입상이 같은 수법으로 또 걸렸다. 내게 찾아와 시키는대로, 정직하겠다고 맹세하며, 통관을 맡아 줄 것을 사정사정 하던 사람이다. 배신을 당한다는 느낌이 뭔지도 배웠다. 그러나 그들의 입장에 서 보면 어쩔 도리가 없는 것도 알았다. 소비자들이 찾으니까. 구색을 맞춰 물건을 들여와야 팔 수가 있단다. 경쟁업체가 들여 오는데, 자기만 안 들여 오면 경쟁에서 탈락 된다. 그래서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단다. 내가 휩쓸려 살지 않으려면 그 일에서 손을 떼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지금은 일손 놓고 편히 사는 내 생활이 억울하단 생각이 드는 참인데 5년 전의 일로 구금까지 된 그 부부때문에 가슴이 아프다. 다행히 더이상은 나를 끌여 들여 귀찮게 굴지는 않지만, 그들에겐 아이가 셋이나 있다. 잠시라도 부모의 부재로 아이들이 받을 타격이 걱정이다. 회사는 또 어찌 굴러 갈 것인가. 내가 뭔가 도와야 하지 않을까 생각만 한다. 어딘가 적혀 있을 전화 번호도 찾아야 하는데. 생각처럼 몸이 잘 따라주지 않는다.


2004년 8월 6일자 미주 중앙일보에 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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