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쪽팔리고 평생 후회 안하기

2005.07.04 07:09

노기제 조회 수:759 추천:108

070405                        잠깐 쪽 팔리고 평생 후회 안하기

                                                                                노 기제
        가끔 지나고 나면 아차, 그러지 말고 이렇게 할걸 하며 곧잘 후회하는 일이 있다. 생각을 조금 더 깊이 한 후 결정을 하면 훨씬 그 후회하는 일이 줄어든다. 결정하고 결심하고 행동에 옮기기 전 난 습관처럼 그 결정 이후를 생각 해 본다. 만약 내가 이렇게 하고 나면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 들일까. 또는 내 주위 사람들이 뭐라 반응 할까. 아니면 나 자신이 만족할까 등등 까지를 생각한 후에 행동에 옯겨도 늦지는 않을꺼란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때론 분초를 못참아 격앙된 모양새를 그대로 까발긴 후엔 영락없이 후회한다. 속을 끓이고, 땅을 치며 그 순간을 되 돌리고 싶어 한다.  그 때마다 숨을 고르며  다시는 후회 할 일 안 만든다고 다짐을 한다.
        내 나이 스물 여섯 때다. 아들 둘에 딸 하나 키우신 엄마는 나이 찬 딸래미 시집 못 보낼까봐 날마다 노심초사 내 눈치만 보셨다. 반대로 울 아빠는 여기저기서 괜찮은 신랑감을 맞선자리에 대령이시다.
        난 그저 느긋하니 대단치 않게 생각을 했지만 그 상태로 살던 시간들이 짜증스러웠다. 하고 싶은 것은 많은 데 돈은 없구, 취직을 하려해도 맘대로 안된다. 요즘 말로 방콕이다. 날마다 방에만 콕 박혀 있자니 뭐 살고 싶은 생각이 있었겠나. 영어회화나 배워 보겠다고 청량리 대왕코너에 적을 두고 시간을 죽이다가  학원에서 결성한 산악회를 따라 등산을 다니던 무렵이다.
        여자회원이 일곱명, 그중 내가 제일 연장자 이고 남자 회원이 다섯명 정도였나. 많은 숫자의 여자회원들을 데리고 바위타기를 시도하려던 회장이, 산에서 만나 모셔왔던 두사람의 바위꾼. 초보자들을  잘 이끌어서 무사히 암벽타기를 실행하려던 회장이 내 인생에 키를 잡아 준 것이다.
        초청되어 온 바위꾼 두 사람 다 맘에 든다. 한 사람은 키도 크고 얼굴이 눈에 띄게 핸섬하다. 우선 찍었다. 종로 5가에서 모였을 때 첫 눈에 그만 맘을 정하고 눈 여겨 봤다. 버스에 오르기도 전부터 입을 다물지를 않는다. 대단히 시끄러운 사람이다. 반면에 같이 온 다른 한 사람은 절대로 입을 열지 않는다. 묘한 조화속에 두사람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산에 가서는 남녀를 짝지워 책임지고 바위타기를 실행하도록 회장의 엄명이 있었다. 불행하게도 난 그 둘, 누구와도 짝이 되지 못 했다. 안타까웠다. 그러나 잠시도 그 둘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선두에 선 회장의 지시대로 여자대원 모두가  바위 꼭대기에 섰다. 그 때 이미 내 마음엔 둘 중 하나는 떼어 버렸다. 처음 찍었던 그 잘 생긴 사람은 끝내 입을 다물지 않아 실격이다. 나며지 한 사람에게 집중해 보니 벙어리처럼 말이 없지만 묻는 말에 곧잘 대답은 한다. 신뢰가 간다. 할 말만 하는 남자. 쓸데없는 말은 전혀 하지 않을 남자다. 됐다. 그런 남자라면 내 인생 한 번 맡겨 볼만 하다.
        그 남자의 짝인 김미례가 얄미웠다. 나이도 제일 어린데다  발랄해서 대쉬하는데도 능란하다. 그녀도 그 사람이 좋은가보다. 어쩐다? 바위에서 내려 걷기가 시작되었을 때 난 슬그머니 위치를 옮겼다. 그 사람 옆으로 갔다. 내 짝이었던 남자회원이 나를 따라 온다. 할수없다. 오른쪽에 짝의 팔장을 끼고 왼쪽 팔로 그 남자 팔짱을 끼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쑥맥 같은 남자는 그냥 묵묵히 따라 걷기만 한다. 노래도 모른단다. 조개 껍질 묶어 그녀의 목에 걸고….가사를 미리 일러 주고 따라 부르라고 했더니 곧잘 따라 한다.
        그 남자 짝이었던 김미례가 나를 흘끔거린다. 안된다. 여기서 기선제압에 실패하면 내겐 회복 불가능이다. 어디를 봐도 내가 김미례보다 나은 점이 없다. 지금 뺏지 않으면 대여섯살 아래인 저 애를 당해 낼 도리는 없다. 아직은 누구의 사 람도 아닌 실정이니 내가 빼앗는 것도 아니다. 시작을 먼저 할 따름이다.
        그 남자에게 나를 각인시키기 위해 난 평상시 안 하던 짓까지 했다. 생판 모르는 남자의 팔을 덥석 끼다니. 진짜 쪽 팔릴 일이다. 결과는 모른다. 그러나 이렇게 짧은 시간에  맘에 드는 남자가 언제 또 나타나겠는가. 그렇게 그날이 가고 영어학원엘 계속 다니면서 기회를 노렸다. 언제 다시 산행이 있을지 회장에게 재촉해 봐도 별 시원한 대답이 없다. 계속 쪽 팔리자.  그 사람 전화번호를 달라고 했다.
        달랑 이름만 알아 낸 상태에서 직장으로 전화를 한다는 사실이 쉬운 일은 아니다. 과연 나를 뭐라 말하나.  가슴 떨리는 순간이었다. 전화를 받은 여직원이 호락호락 바꿔 주질 않는다. 이름이 뭐냐. 어느 회사냐. 무슨 일이냐. 나중에 안 일이지만  전화 받던 여자도 그 남자에게 호감을 갖고 있었던 모양이다.
        기다리던 시간이 몇 시간은 되는 듯이 숨이 헉헉 막히던 건 역시 쪽 팔리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감수 해야 한다. 그 때가 1971년도 였으니 여자가 남자에게 먼저 전화 한다는 그 자체가 엄청 쪽 팔리는 일이였던 시대다.
        변변히 할 말도 없으니 가슴은 더 쿵쾅거렸고 이왕 시작한 짓이니 깔끔하게 진행해야 한다는 중압감으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마침내 그 남자 목소리가 들리고 무슨무슨 산악회의 아무개인데 산행을 함께 하자는 당당한 척하는 내 용건이 전달 되었다.
        그렇게 한 번 쪽 팔리고 얻은 내 남편, 평생 후회 없이 살고 있다. 살면서 불평이야 좀 있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 때 내가 한 짓은 정말 잘 한 짓이라고
지금도 안도의 숨을 쉬곤 한다.
        내겐 나를 보여 줄 시간이 필요 했었다. 얼굴이 받혀주나, 학벌이 있나, 집안이 뻑적지근 한가. 무엇하나 첫 눈에 띌 요소가 없으니 두고두고 차근차근 나를 보여야 했던거다. 그러려면 한 번쯤은 쪽 팔려야 한다는 사실을 진작에 터득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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